[차현진 칼럼] 부동산본위제, 금융당국이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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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부동산본위제, 금융당국이 해결해야 한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0.07.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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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 '금융- 부동산 분리' 주장, 일리 있어
'부동산본위제'와 같은 대출관행, 영국·프랑스 실패 사례 닮아
한국은행, 통화정책 대신 '신용정책'으로 부동산 안정 역할해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장관 한 마디의 여파가 크다. 보름 전 추미애 법무장관이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대출관행을 두고 ‘부동산본위제’라고 부르며 ‘금부분리(금융과 부동산의 분리)’를 주장하자 금융계가 술렁였다. ‘설익은 제안’이니 ‘공산주의적 발상’이니 하는 혹평도 터졌다.

추 장관 말이 틀렸을까? 이 글에서는 금융의 역사와 이론 차원에서 추미애 장관의 제안을 돌아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미애 장관의 문제제기는 비록 거칠고 과장된 면은 있지만, 정당하다. 부동산본위제는 과거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한 시스템이다. 공산주의와는 상관없다. 부동산 담보대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금융기관 대출관행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영국에서는 부자들이 부동산본위제도를 반대

명예혁명 이후 영국 정부는 재정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상인(부자)들이 설립한 은행에서 150만 파운드를 차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차입의 대가는 그 은행에 발행독점권을 주는 것이었다. 그런 배경을 갖고 탄생한 은행이 오늘날의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이다.

영란은행의 주주 중에는 당시 집권 세력인 휘그파가 많았다. 그래서 야당인 토리파는 맞불작전을 폈다. 영란은행과 더불어 토지은행(Land Bank)을 설립하고 발권특허를 2개 은행에 나눠주자고 제안했다.

토지은행은 문자 그대로 은행권을 발행하여 토지에만 투자하는 은행이다. 땅은 귀금속처럼 닳지 않으므로 토지은행의 은행권이 영란은행이 발행하는 은행권보다 더 안전하다. 영란은행은 연8%의 고금리로 정부에 대출하지만, 토지은행의 대출금리는 그 보다 낮다. 정부로서는 토지은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토지은행은 정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설립허가신청은 훨씬 빨랐으나 설립(1696년)은 영란은행(1694년)보다 늦었고, 발권특허는 거절되었다. 그 바람에 몇 년 간 영업하다가 흐지부지 해체되었다.

토지은행이 영란은행에 밀린 것은 로비력 때문이었다. 토지은행 설립을 제안하고 주도한 사람은 휴 체임벌레인(Hugh Chamberlain)이라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그는 오늘날의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런던에서 페스트가 창궐할 때 질병퇴치 활동을 주도한 국민적 영웅이었다. 그러나 금융 문제에서는 발언권이 약했다.

반면, 영란은행 편에는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가 있었다. 그는 윌리엄과 메리 부부와 네덜란드 시절부터 교류하다가 명예혁명 이후 함께 귀국한 왕실의 최측근이었다. 그 영향력을 이용하여 영란은행 설립 여론을 주도하고 나중에는 주주가 되었다.

로크와 다른 주주들은 영란은행의 잠재적 경쟁자인 토지은행의 등장을 방해했다. 그 은행이 금방 부실해질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 말을 들은 정부는 영란은행에서만 차입하기로 하고 토지은행에는 별다른 특혜를 주지 않았다. 결국 부동산본위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부동산본위제도를 끝장내

부동산본위제가 영국에서는 시들했지만, 프랑스에서는 그 반대였다. 토지은행의 영업을 지켜 본 스코틀랜드 출신의 도박꾼 존 로(John Law)가 프랑스로 건너가 이를 전파하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존 로는 프랑스 왕실이 소유했던 왕실은행(Banque Royale)과 자신이 세운 부동산 개발회사(Mississippi Company)를 묶었다. 부동산 개발회사가 북아메리가 식민지 땅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왕실은행이 대출했다.

한동안 잘 나가던 존 로의 사업은 3년 만에 막을 내렸다. 존 로의 회사가 투자한 곳이 쓸모없는 모래땅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왕실은행으로 몰렸다. 예금인출 소동과 함께 왕실은행은 파산했다. 이 은행의 은행권은 휴지조각이 되고, 사람들은 도탄에 빠졌다. 이것이 그 유명한 미시시피 버블(1720년)이다. 인류 최초의 금융공황이며, 프랑스 경제를 심하게 망가뜨려 훗날 대혁명의 원인이 된 사건이다.

미시시피 버블 당시의 상황을 그린 풍속화. 왼쪽 건물 2층 창문 밖으로 존 로가 얼굴을 내밀고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미시시피 버블 당시의 상황을 그린 풍속화. 왼쪽 건물 2층 창문 밖으로 존 로가 얼굴을 내밀고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부동산본위제는 프랑스대혁명 직후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식민지가 아닌 본토의 부동산이 대상이었다. 혁명 직후 출범한 국민공회는 구체제 시절의 귀족과 교회에서 토지를 압수한 뒤 이를 담보로 ‘아시냐(Assignat)’라는 화폐를 발행했다. 모든 은행권에 부동산 소유권이 실제로 할당(assign)되어 있어 존 로의 모래땅과는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시냐는 불안한 정치체제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루이16세의 처형 문제를 두고 자코뱅파와 지롱드파가 극렬히 대립하면서 공포정치와 쿠데타가 거듭되었다. 시민들은 국민공회 체제와 아시냐의 운명을 불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도 아시냐를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와 권력을 잡았다. 그는 국민공회를 해체하고 아시냐는 퇴출시켰다. 대신 프랑스은행(오늘날의 중앙은행)을 통해 금본위제로 복귀했다. 프랑스의 부동산본위제 실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부동산본위제는 경제시스템을 불안케 해

프랑스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부동산본위제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 담보물의 명목가치가 커져서 신용창출(은행대출)도 늘어난다. 그 결과 부동산시장이 더 과열된다. 부동산시장이 수축할 때는 그 반대다.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그런 것을 두고 자동안정화장치(automatic stabilizer)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위험은 오늘날의 금리중시형 통화정책에도 똑같이 잠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금리를 결정하면 화폐공급 곡선이 그 수준에서 수평선을 이룬다. 그리고 민간의 화폐수요 곡선과 그 수평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통화량(신용)이 결정된다. 따라서 민간의 자금수요가 어떤 이유로 출렁이면, 통화량과 신용창출이 함께 춤춘다.

결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선제적으로 자주 조절하는 것이 경기 진폭을 낮추는 데 필수적이다. ‘테일러 준칙’이라는 금리조절 방정식이 자동안정화장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금리조절이 여의치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정책당국이 민간으로의 자금흐름에 개입해야 한다.

18세기의 영란은행은 72년 동안(1746~1822년) 총재가 4명이나 바뀌는데도 금리를 조절하지 않았다. 19세기의 프랑스은행은 27년 동안(1820~1847년) 금리를 동결했다. 그 대신 여신조건을 통해서 신용창출 속도를 조절했다. 이를 신용정책(credit policy)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위기로 당분간 금리조절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신용정책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신대상 분야를 조절하고 만기와 금리를 차별화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저금리로 무차별하게 공급된 유동성은 고용과 투자를 늘리기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만 올려놓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추미애 장관의 걱정 그대로다.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하자며 금부분리를 주장해 금융계에 파장을 일으킨 추미애 법무장관. 사진= 연합뉴스
금융과 부동산을 분리하자며 금부분리를 주장해 금융계에 파장을 일으킨 추미애 법무장관. 사진= 연합뉴스

해답은 신용정책에 있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신용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상업은행들은 기업들의 전년도 매출액을 기준으로 운전자금 한도를 설정한 뒤 담보만 챙기고, 그 운전자금이 실제 어떻게 쓰였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따라서 지방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수도권의 아파트를 담보로 운전자금을 대출받아 자식의 유학비로 쓰더라도 대출한 은행이 잘 모른다. 한국은행에는 그런 대출이 ‘지방중소기업 지원대출’로 보고된다. 한국은행은 서류만 보고 그 대출자금의 일부를 아주 낮은 금리로 지원한다.

신용카드사는 그렇지 않다. 어떤 고객이 단 돈 만원을 쓰더라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썼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신용을 제공한다. 그 돈은 개인 소비와 물품 구매와 직결되기 때문에 부동산경기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은행과 상업은행들은 대출자격과 담보물의 가치만 따질 것이 아니라 신용카드사처럼 자금수요의 원인행위를 챙겨야 한다. 그래야만 실물경제를 향한 통화정책의 실효성도 높아진다. 부동산이 거액의 돈을 빌리는 만능열쇠가 되는 한, 소위 ‘똘똘한 집 한 채’에 대한 가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추미애 장관의 지적은 정당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은행 빚으로 부동산을 사고,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또 오르는 존 로의 부동산본위제가 작동 중이다.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은 법무부가 아닌, 한국은행의 일이다.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방치해 왔던 신용정책을 벼리고, 금융위원회와 함께 금융기관들의 여신업무 수행방식을 다듬어야 한다.

* 한국은행의 신용정책만으로 집값이 당장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신용정책은 부동산시장 안정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정책은 중앙은행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분야다. 한국은행 안에서 신용정책의 중요성은 김중수 총재 시절 잠깐 강조되는듯하다가 그 뒤 잠잠해졌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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