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내가 살던 동네엔 어떤 갈등이...김시덕의 ‘갈등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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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내가 살던 동네엔 어떤 갈등이...김시덕의 ‘갈등 도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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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반포에서 10~20대 보낸 서울 토박이 문헌학자
부제 '시민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생명이 있는 유기체 같은 서울, 너무나 빨리 변한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구조물만이 서울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해방교회 머릿돌. 사진='갈등도시' 유튜브
거대하고 아름다운 구조물만이 서울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해방교회 머릿돌. 사진='갈등도시' 유튜브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내가 어릴 때 살던 서울 북한산 아래 수유리를 찾고 싶어졌다. 지금도 내가 살던 집이 그대로 있는지, 아니면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이 세워졌는지 궁금하다. 우리 집 앞 골목을 벗어나면 다른 골목이 나왔고, 그 골목을 지나 좀만 더 가면 내가 다니던 유치원이 보였다. 그곳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직접 걸어 다니며 확인하고 싶어졌다.

몇 년 전 김시덕의 ‘서울 선언’을 읽은 즈음 든 생각이었다. 그 책은 서울을 직접 걸어서 답사한 기록이다. 사대문 안의 잘 정돈된 건축물과 유물 중심으로 견학하는 것이 아닌 삼국 시대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흔적이 뒤섞여 있는 서울을 뚜벅뚜벅 걷는다. 지금 존재하는 건물과 길 아래에는 오래전에 살았던 이름 없는 백성들과 그들 삶의 흔적이 묻혀 있다고 알려준 책이다.

‘갈등 도시’는 ‘서울 선언’의 후속편이다. 앞에 낸 책에서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에서 서울로 편입된 주요 지역을 답사했다면, ‘갈등 도시’에서는 서울의 외곽 지역과 그 외곽의 외곽인 경기도의 도시들까지 샅샅이 훑는다. 저자는 확장된 서울이 도시계획에 의해 변화되거나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갈등 도시'. 열린책들 펴냄.
'갈등 도시'. 열린책들 펴냄.

김시덕은 문헌학자다. “문헌학은 종이·돌·나무·금속판 등에 적혀 있는 글자를 해석해서 그 뜻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그 문헌을 남긴 사람의 “개인적인 심리에서부터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의 특징, 뒷시대의 사람들이 그 문헌을 어떻게 읽고 다시 베꼈는지 등을 살피는” 학문이기도 하다.

문헌학의 연구 방법을 “도시 답사와 연구에 적용하는 것을 ‘도시 문헌학’”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옛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거나 건축물이나 간판의 변화를 연구하는 게 그 대표적 방법이다. 김시덕은 도시 문헌학을 설명하며 ‘도시 화석’이라는 개념도 도입한다.

화석은 오래전 ‘퇴적암 안에 퇴적물과 함께 퇴적된 동식물의 유해나 흔적’이다. 여러 학문에서 그것을 토대로 당시를 유추해서 연구한다. 저자에 의하면 ‘도시 화석’은 “도시에 남겨진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을 말한다. “건물의 머릿돌, 가게의 간판, 그리고 다양한 비석을 도시 화석”으로 볼 수 있다.

김시덕은 서울 곳곳에서 도시 화석을 발굴하고, 문헌학의 방법으로 연구하며, 도시 문헌학을 완성해 가고 있다. 그런 그는 기존의 도시 답사 안내서가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위대한 조선 왕조를” 찬양하거나, “현대 한국의 ‘찬란한 발전상’을 상징하는 건물들을” 소개하거나, “우리 구(區)에 살던 충신 효자의 자취를” 밝히거나 하는 그런 안내서 말이다.

김시덕은 빛나는 자취도 좋지만 그 아래 묻혀 있는 흔적도, 도시의 변경과 외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도시 갈등’에서 권력과 부가 집중된 중심부가 아닌 중심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살았던 주변부에 주목한다. 이 책은 그곳의 과거와 지금을 기록했다. 도시 문헌학에서는 아름다운 것, 재미있는 것만이 아닌 도시의 모든 것이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제목에서 ‘갈등’을 언급한 것은 도시 개발 자체가 갈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 찬성과 반대 사이의, 살던 곳을 지키려는 자와 허물겠다는 자 사이의, 원래 살던 사람들과 새로 들어온 사람들 사이의 갈등 등. 서울의 많은 지역은 이런 갈등 속에서 옛것을 부수고 새것을 지어 들어섰다. 우리나라에서 도시 개발이란 옛것을 허물고 새것을 세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김시덕은 ‘갈등 도시’에서 서울을 두고 ‘삼문화(三文化) 광장’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서울에서 여러 시간의 지층과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전 책 ‘서울 선언’에서도 이 개념을 썼다.

‘삼문화 광장’은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틀라텔롤코(Tlatelolco) 광장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에 서면 아스텍 시대,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 그리고 현대의 건축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에 ‘세 문화의 광장(Plaza de las Tres Culturas)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울 선언‘ 49쪽)

당시 김시덕은 풍납동 지역을 답사하며 백제 시대의 왕성, 조선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서민 동네, 현대의 고층 아파트 등 세 개의 시대가 한 곳에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삼문화 광장’을 떠올렸다.

그는 특히 서울 여러 지역이 “식민지 시대인 20세기 전기, 광복 이후부터 20세기 후기, 21세기 전기” 등 서로 다른 세 가지 시대의 시간적 지층, 즉 ‘시층’으로 겹쳐진 ‘삼문화 광장’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그 대표 지역으로 ‘해방촌’을 꼽았다. 식민지 시대의 신사 흔적과 전쟁 이후에 세운 교회들 그리고 최근 지은 신축 건물들이 뒤섞여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종로나 을지로, 동작이나 영등포 등도 삼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지역으로 꼽았다.

 

문헌학자이자 서울답사가인 김시덕 교수. 사진=열린책들
문헌학자이자 서울답사가인 김시덕 교수. 사진=열린책들

저자는 도시 개발 계획에 대한 ‘행정의 연속성’이 여러 곳에 보인다고도 이야기한다. 도시계획 마련과 진행은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조선 시대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일본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 한국에까지 이어진 사례들이 여럿 있었다는 걸 밝힌다.

‘경인 운하’를 예로 들면 “조선 시대부터 논의하기 시작해서 식민지 당국이 이를 이어받고, 현대 한국 정부가 ‘2011년에 경인 아라뱃길’로 마침내 실현”했다는 것이다. 금천구의 한 공군 부대도 비슷한 사례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군 훈련소 부지였다가 해방 후 미군 병참 부대가 들어섰고, 그 후에 한국군이 자리하고 있다.

저는 이 책에서 경인 운하 및 식민지 시대의 택지 조성 사업을 예로 들어 조선 왕조-조선 총독부-한국 정부로 이어지는 행정의 연속성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일본군-미군-한국군으로 이어지는 군부대 자리 역시 민족 감정 등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행정의 연속성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183쪽)

김시덕은 ‘갈등 도시’에서 서울의 외곽과 그 외곽을 감싸고 들어선 경기도 지역까지 답사한다. 서울의 서남부와 서북부, 고양과 파주, 서울의 동북부와 의정부, 남양주를 거쳐 강남, 분당, 용인 까지. 그는 서울을 감싸고 있는 경기도의 도시들도 확장된 서울, ‘대서울’의 연장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갈등 도시’에서 답사한 지역 어디에선가 나도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평화롭게 살았던 그 지역들이 사실은 원래 살던 주민 혹은 도시 빈민의 터전을 허물고 들어섰다는 것을 다시 기억나게 했다. 어쩌면 그 어디에선가는 지금도 내몰고 허물려는 물밑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들이 더욱 걷고 싶어졌다.

‘갈등 도시’에 의하면 생명이 있는 유기체와도 같은 서울은 너무나 빨리 변한다고 한다. 옛것을 아무 고민 없이 막 허문다는 것이다. 오늘 무사한 건물이라 하더라도 내일 가면 커다란 공사 가림막이 처져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옛 동네에 가더라도 나 어릴 때 살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나마도 없어지기 전에 빨리 확인하고 싶어지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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