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빨간불 켜진 '공직자' 성폭력 예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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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빨간불 켜진 '공직자' 성폭력 예방교육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7.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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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여성인권 보호에 제 역할못한다는 비판 자초
서울시 조직원들의 성인지감수성 부족 현상 '심각'
다양한 '2차 가해', 공무원과 여당정치인, 언론인 앞장서
여성가족부, 공직자들 성폭력 예방교육 철저히 시키고 단속해야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교수] 여성가족부가 곤경에 빠졌다.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 성폭력의혹사건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여성가족부에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이런 비난여론은 여성가족부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결국 지난 7월 16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여성가족부 폐지 촉구 청원이 올라왔고, 나흘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국민동의 청원인은 그 취지에서 “원래의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여성 인권 보호조치도 최근의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들에서 수준 이하의 대처와 일 처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제대로 여성 인권 보호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청원까지 올라와

어쩌다가 여성가족부가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아마도 최근 박원순 시장 성폭력의혹사건을 대처하는 데 담당 주무부서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의 거센 불만과 저항의 결과로 해석된다. 여성가족부의 무능함과 위기가 드러난 만큼, 이후 책임있는 자성과 함께 실효적인 반전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서울시 내부 실태에 대한 현장 점검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고통호소를 무시한 서울시 직원들의 침묵, 묵인, 방조 의혹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 함께 직장내 성평등을 위협하면서 성폭력범죄를 허용하는 위계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책 제시가 필요하다.

현장 점검에서는 양성평등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서울시가 성희롱과 성폭력 방지 조치를 제대로 이행했는지와 성폭력 예방교육의 내용과 직원 참여, 2차 피해 상황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박원순 시장이 직접 임명한 정무라인에 있었던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늘공(늘 공무원)에 비해 성폭력예방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실태점검이 필수적이다.

2차 피해에 대한 정확한 인식 필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정치권과 방송 및 SNS 상에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2차 가해범죄가 도를 넘어 횡행한 만큼, 이에 대한 책임규명과 보완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동안 여성가족부가 여성계와 시민사회와 함께 성공적으로 추진해온 성폭력예방교육의 효과에 대해 빨간 불이 켜진 만큼, 이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2차 피해’에 대한 개념을 ‘성폭력 피해로 발생하는 직접적인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이외에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의해 피해생존자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피해생존자 스스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런 ‘2차 피해’의 개념은 2019년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3조에도 명시되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성폭력 2차 피해를 방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대부분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에서 기인한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명시된 ‘2차 피해’ 개념을 존중한다면,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의원 등 여당 정치인이 ‘피해자’대신 ‘피해 호소인’ 혹은 ‘피해 고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부적절하다. 사과표명과 함께 ‘피해자’로 정정될 필요가 있다.

또한 “피고소인(박 전 시장)은 인생이 끝났는데 숨어서 뭐 하는 것인가”라고 발언한 YTN에 출연하고 있는 이동형 작가의 언행이나 “4년 동안 도대체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런 식인가”라고 언급한 TBS에 출연한 박지희 아나운서의 언행도 2차 가해에 해당된다. 사과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 필요하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피해자에게 비난이나 욕설을 가하는 행위, 피해자에게 무죄추정원칙을 이야기하는 것, 신상털이, ‘박 전 시장 죽음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일 등도 ‘2차 가해’에 해당된다. ‘박원순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박원순은 맑은 사람이야’라고 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것도, 피해자 증언의 신뢰성을 약화시킬 목적이 있으므로 2차 가해에 해당된다.

아울러 서울시 직장내 동료 공직자들의 침묵, 묵인, 방조에 따른 공동범죄의혹도 성폭력범죄의 범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을 고소한 전직 비서 A씨는 지난 7월 22일 두 번째 기자회견장에서 대리인을 통해 4년간 서울시 인사 담당자 등 20명에게 피해 사실을 호소했지만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시, 권력형 성범죄 방치한 셈  

즉, 피해자가 4년 넘게 20명의 전·현직 비서관과 인사담당자에게 피해를 호소하고 인사이동을 요청했지만 “예뻐서 그랬겠지”, “시장에게 허락 받아라”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언행들이 사실이라면, 묵살과 방조로서 전형적인 공동범죄에 해당된다.

피해자를 돕고 있는 윤석희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7월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서울시청은 성폭력 사건이 벌어져도 묻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피해자는 4년 동안 서울시청에서 비서로 근무하면서 7번의 전보 요청을 했다. 전보 요청을 할 때마다 고충을 토로했다”며 “평상시에도 박 전 시장이 보낸 텔레그램상에 불편한 내용이나 속옷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고통을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하도록 해 줄테니 다시 비서로 와라’ 등의 표현을 했다”며 “서울시 자체적으로 모범적인 성희롱·성폭력 메뉴얼을 가지고 있더라도 직원들 내부에서는 전혀 이러한 정책이 스며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회장은 “서울시청은 전형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었다”며 “가해자의 행동을 범죄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사실관계를 축소하고 피해자의 입을 다물게 하고 2차 가해까지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조직 내에서 피해자는 가장 약자일 수밖에 없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호소했더라도 묻힐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의혹을 가장 먼저 보고한 인물로 알려진 임순영 서울시 젠더 특보를 향해서는 “잘못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희롱·성폭력 매뉴얼상에 보면 가장 기초적인 조치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도 작동되지 않은 상태로 운영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감독자 자체가 잘못된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이상으로 드러난 피해자 A씨와 윤석희 회장의 증언들은 서울시 공무원들과 서울시 직장내 조직문화가 피해여성의 호소를 사실상 묵인, 방조하여 2차 가해까지 저질렀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보여준다. 피해자 측 주장대로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은 주변의 방조와 묵인 속에 4년간 일상적으로 지속돼온 권력형 성범죄에 해당된다.

서울시 직원 20명의 묵인과 방조는, 남녀고용평등법상 관련 규정으로 직장내 성희롱과 성폭력 예방을 위해 연 1회 성폭력예방교육을 하라고 사업주와 기관장 책임을 엄히 묻고 있으며, 고충상담원을 지정하여 문제가 발생시 접수, 조사, 심의, 종결처리 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직원들의 대변기구인 서울시청 노동조합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가 해야 할 제 역할

남녀고용평등법은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해 ‘행위자와의 업무·공간 분리, 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피해자 치료지원, 행위자에 대한 인사조치 등을 통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피해자의 근로권, 학습권을 보호’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성희롱 고충사안을 최초로 접한 부서에서 적절히 규정대로 처리했는지 면밀하게 따져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여성가족부가 책임있게 실태를 파악하고 순발력있게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관련법상 기관장과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예방교육 실시의무를 위반할 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어 있었음에도 이런 사태가 장기간 지속적으로 벌어진 것에 대해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관련법은 국가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성희롱 방지조치의 실시 결과를 다음년도 2월말까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만큼, 여성가족부장관이 책임의식을 갖고 실태파악과 대안제시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장관이 여가부내 직원들, 정부 내 공직자들, 정당내 당직자들, 국회내 국회의원들, 지자체 내 공무원들이 성폭력예방교육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는 데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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