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⑪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를 완성하다 -그를 추모하며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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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⑪ 엔니오 모리꼬네, 영화를 완성하다 -그를 추모하며 (전편)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0.07.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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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남아메리카의 오지. 한 선교사가 정글을 헤치고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긴다. 주변에는 원주민들이 자신의 영토임을 경고하는 죽음의 표식들이 가득하다.

접근하는 자는 누구든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죽음의 경고. 자신을 둘러싼 인기척과 죽음의 살기를 느낀 선교사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짐 속에서 오보에를 꺼낸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부르기 시작하자 정적만이 가득하던 정글 속에 오보에의 아름다운 선율이 퍼져 나간다. 

그 소리를 듣고 근처에 숨어 그의 목숨을 노리던 원주민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가까이 다가온 그들의 소리에 놀란 선교사가 연주를 멈추자, 원주민들은 연주를 계속 하라는 몸짓을 한다. 날카로운 독이 발라진 화살을 겨눈 채. 다시 떨리는 연주를 계속하는 선교사 옆을 원주민들이 하나 둘 둘러싼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적대감과 경계심이 가득했던 그들의 표정은 점차 누그러져가고, 적의 심장을 노리던 활과 화살도 어느새 땅을 향하고 있다. 1986년 개봉한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The Mission)’의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가 지난 6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연합뉴스.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가 지난 6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연합뉴스.

어린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가끔 학교 선생님의 인솔 하에 영화 단체 관람을 가곤 했는데, 그 때 본 영화 중 하나가 ‘미션’이라는 영화였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영화를 본 그 때 당시의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지금도 이 영화를 볼 때 마다 이 장면과 함께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선율에 머리가 쭈뼛거리던 그 감각은 아마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문득 생각해본다. 만일 이 곡이 전혀 다른 곡이었다면, 그리고 이 영화의 음악 작곡자가 그가 아니었다면 그런 경험을 받을 수 있었고, 이 장면이 40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을 수 있을지 말이다.

            [영화 미션에서 원주민 앞에서 주인공인 선교사가 오보에를 꺼내 연주하는 장면. 출처=유튜브.]

얼마전 7월 6일. ‘그’가 영면했다. 20세기의 영화 음악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작곡자 ‘엔니오 모리꼬네’의 이야기다. 영화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 등 많은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을 만든 그의 일대기는 20세기의 영화 음악의 역사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앞서 언급한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도 그렇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누들스 패거리의 꼬마가 도망치다 등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유명한 그 장면에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시네마 천국’ 프롤로그에 하얀 커튼이 휘날리며 보이던 지중해를 배경으로 흐르던 OST ‘씨네마 파라디소(Cinema Paradiso)’가 없다면 지금 우리는 시네마천국의 어떤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거장’이라는 이름만이 아닌 ‘역사’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영화를 만들지 않았지만, 영화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잠시 영화 음악의 탄생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위에서 부터 원스어픈어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 천국, 러브 어페어. 엔니오 모리꼬네의 대표적 작품. 출처=유튜브.] 

초기 영화 산업의 영화와 음악

이제 막 125년이 넘는 영화 산업의 역사에 있어 영화 음악은 영화의 메인은 아니지만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충실한 조력자의 역할을 해왔다. 특히 배우의 대사나 효과음이 없었던 초기 무성 영화 시절의 영화 음악은 영상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을 맡았다. 

영상에 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각 시퀀스의 상황이나 분위기를 전달하거나 열차 소리나 총성같은 효과음을 넣기 위해 음악을 사용한 것이다. 

무성 영화 시절 당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는 흔히 변사라 부르는 나레이터와 함께 피아노나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들을 고용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조금 큰 대도시의 큰 극장들은 작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극장에 상주하는 이들은 악보나 때로는 즉흥 연주를 통해 영화를 보다 실감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곡이나 다른 유명한 곡들을 영상에 어울리게 연주했다. 그러다보니 같은 영화라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오기도 하는 등 이 시기의 영화 음악은 영화의 부속품이 아닌 극장의 부속품같은 느낌이 강했다. 

초기 영화관의 오케스트라. 당시 대형 극장에선 무성영화에 오케스트라가 곡을 입히는 방식으로 영화가 상영됐다. 출처=시카고 사일런트 필름 소사이어티 홈페이지 캡쳐.
초기 영화관의 오케스트라. 당시 대형 극장에선 무성영화에 오케스트라가 곡을 입히는 방식으로 영화가 상영됐다. 출처=시카고 사일런트 필름 소사이어티 홈페이지 캡쳐.

1920년대에 들어 사운드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성 영화 (Sound Film)들이 등장하기 위한 기반이 조성됐으나, 신기술에 대한 영화계의 신뢰부족으로 여전히 유성 영화가 등장하지 못했다. 1927년에 들어서야 워너브라더스 사가 제작한 ‘재즈 싱어’라는 첫 유성 영화가 등장한다. 

재즈싱어 포스터. 사진=위키피디아.
재즈싱어 포스터. 사진=위키피디아.

‘재즈 싱어’는 첫 유성 영화이자 본격적인 뮤지컬 영화로 1950년대까지 이어지는 뮤지컬 영화의 전성 시대를 연 첫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리를 가진 첫 영화가 뮤지컬 영화였다는 것은 영화와 음악이 가지는 상생관계를 잘 말해준다. 

 황야의 무법자와 함께 온 거장

20년 넘게 이어져 오던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가 끝나고 1960년대에 들어 서부극이라 불리던 웨스턴 무비가 헐리우드와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쓸던 시절, 세르조 레오네라는 한 이탈리아 감독이 스파게티 웨스턴 (이탈리아식 웨스턴 무비를 일컫는 말)을 들고 미국 시장을 노크한다. 

세르조 감독은 당시 TV 드라마에서만 알려진 미국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이탈리아로 데려와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그의 대학 동창이자 이탈리아에서 영화음악 작곡자로 활동하던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음악을 부탁한다. 이렇게 웨스턴 무비 영화음악을 개척한 ‘황야의 무법자’ OST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하게 된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음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접했던 엔니오는 6살에 처음 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동안 힘든 10대를 보낸 엔니오는 전쟁이 끝나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전문 연주자였던 아버지와 미군들을 위해 트럼펫을 불며 미국의 재즈라는 새로운 문화에 흠뻑 빠진다. 1946년 트럼펫 연주 전공으로 학위를 따 음악원을 졸업한 그였지만,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산타 세실리아 음악원에 입학한다. 

작곡으로 두번째 학위를 딴 엔니오는 1953년에 라디오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맡으며, 본격적인 작곡자의 커리어에 접어든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파트너, 세르조 레오네 감독. 출처=위키피디아.
엔니오 모리꼬네의 파트너, 세르조 레오네 감독. 출처=위키피디아.

디오 배경음악을 맡으며, 엔니오는 정통 클래식 외에도 굴러다니는 캔 소리들을 타악기의 선율에 믹싱하는 등 클래식과 비음악적 소리들을 결합한 나름의 효과음을 만들어내며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많은 영화 음악을 만들 때 독창적인 그 만의 기법으로 녹아들어가게 된다. 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54년부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명 고스트라이터 (유명 작곡자들의 이름으로 곡을 쓰는 작곡자)로 영화 쪽의  배경음악들도 맡게 된다. 

이 시기 엔니오가 작곡한 곡은 수백편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유명 작곡자 밑에서 그들을 대신해 일하는 일명 ‘니그로(흑인을 비하하는 말)’라 불렸던 고스트라이터였던 탓에 활약에 비해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1960년대에 들어 그는 산타 세실리아 음악원의 동창생이었던 영화 감독 세르조 레오네의 연락을 받게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TV 스타를 데려와 스파게티 웨스턴 무비를 찍을 예정이니 음악을 맡아달라는 그의 제안을 엔니오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 영화가 바로 영화 음악가로서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영화 ‘황야의 무법자(원제: A Fistful of Dollars>였다. [후편에 계속]

                     [엔니코 모리꼬네의 황야의 무법자 OST. 듣기만 해도 황량한 서부 한복판에 서있는 느낌이 든다 – 출처 : 유튜브]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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