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신화적 상상력으로 채운 시간과 공간...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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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신화적 상상력으로 채운 시간과 공간...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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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와 '단'의 장수 태우고 전장 누비며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 두 마리의 말이 주인공
작가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
기자로 출발, 40대 후반에 소설가로 데뷔...비정규직 노동자 위한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 활동도
작가 김훈. 사진=파람북 블로그
작가 김훈. 사진=파람북 블로그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좋아하는 작가가 새로 낸 책을 서점에서 만나면 난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의 이전 작품들이 떠오르고 인상 깊었던 대목들이 영상처럼 펼쳐지곤 한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봤을 때는 그가 쓴 유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그는 이 문장의 조사 선택 때문에 오랜 시간 고민했다. 작가는 ‘꽃이 피었다’라고 객관적으로 말할지, ‘꽃은 피었다’라고 주관적 정서를 개입할지 고뇌했다. 작가의 그러한 문학적 엄격성이 새 작품에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궁금했다.

새로 나온 김훈의 소설은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다. 푸른 붓글씨로 쓰인 제목이 강렬하다. 책을 몇 장 넘기면 작품의 무대인 대륙의 지도가 나오고 등장인물 소개가 나온다. 지도에는 큰 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두 나라가 있고, 동쪽으로는 백산(白山) 서쪽으로는 바다가 나온다. 등장인물은 정확히는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과 말”이다.

그렇다. 말(馬)이 중요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사람과 눈이 맞는 말(馬)도 나온다. 시작 전부터 이 소설은 신화의 세계를 다룬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말(馬)이 자신의 등에 사람이 올라타는 걸 허락한 즈음이다. 하지만 김훈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 배경”이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야기는 큰 강을 두고 마주한 두 나라 소개로 시작한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은 나하(奈河).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북으로는 '초(草)', 남으로는 '단(旦)'이라는 나라가 소수부족들을 통합해 지배 세력을 형성한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펴냄.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펴냄.

'초'는 초원에서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 집단이다. 문명의 부산물들은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므로 문명을 등진 채 육체의 힘에 기대어 야생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성을 쌓지 않고 신전과 무덤이 없으며, 문자를 배격한다.

반면, '단'은 땅에 들러붙어 소출에 기대어 사는 농경 집단이다. 문자를 숭상하며 거대한 왕궁을 짓고 전각을 세운다.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두 세력 사이에 전쟁과 일상은 구분되지 않는다. 전쟁은 숙명과도 같고 잔혹하다.

전쟁은 김훈의 소설에 여러 번 등장했다. 신라의 가야정벌을 다룬 ‘현의 노래’, 임진왜란을 다룬 ‘칼의 노래’,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 등. 이 작품들에서 작가는 마치 칼을 벼리듯 문장들을 예리하게 배치했다. 비릿한 피 냄새를 맡는 듯할 정도로.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도 전쟁은 매우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수평적 세계관과 수직적 세계관으로 상징되는 유목과 농경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야만과 문명의 화합할 수 없는 이념이 부딪치는 처절함 속에서 세상과 인간은 공허한 민낯을 드러낸다. 역시 칼을 벼린 듯 예리한 문장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초군과 단군의 싸움도 해 뜰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지평선에 아침 해가 오를 때쯤 고함이 잦아들었다. 싸움은 불이 스스로 꺼지듯이 잦아들었다. 아침햇살에 초원이 드러났다. 시체가 초원에 깔렸고 덜 죽은 자들이 꿈틀거리며 신음했으며 주인 없는 개들이 웅덩이로 몰려가서 헐떡이며 물을 먹었다. (124쪽)

그 한 가운데에 두 마리의 말(馬)이 등장한다. 초승달을 향해 밤새도록 달리던 신월마(新月馬) 혈통의 토하(吐霞)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飛血馬) 혈통의 야백(夜白)이다. 두 마리 말은 각기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인간의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을 목격한다.

말을 타고 달릴 때 말이 몰고 가는 모든 힘은 말 탄 자의 창끝에 한 점으로 집중되었다. 집중은 빛나고 강력했다. 닥쳐오는 힘이 지나간 힘을 끌어당겼고, 지나간 힘은 닥쳐올 힘과 합쳐지는 순간에 다시 살아나서 창끝의 힘은 늘 살아 있는 현재였다. (196쪽)

사람들에게 태어난 나라가 다르다는 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적대감은 말들에게까지 해당하는 건 아니었다. 비록 전장에 나서지만 말들은 그저 사람을 태울 뿐이었고 입에 채운 재갈이 이끄는 대로 발을 옮길 뿐이었다. 토하와 야백, 적국의 말들은 전쟁이 끝난 폐허에서 만나 서로에게 끌린다. 그리고 짧은 만남 후 그들은 헤어진다.

김훈은 한 인터뷰에서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에서 말에게 말 중심의 사고 능력을 주었다. 인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의 이치 혹은 세상의 이치와도 닿는 그것으로 말은 사람을 보았고 전쟁을 보았다.

그래서 야백과 토하는 사람 사는 곳을 떠난다. 아니 탈출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들은 각기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는 머나먼 백산(白山)으로 향한다.

 

김훈은 한 인터뷰에서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진=pixabay
김훈은 한 인터뷰에서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진=pixabay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의 마지막은 김훈의 어떤 바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세상, 인간들끼리 적대하는 이런 세상을 좀 지워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그런 소망 말이다. 혹은 야만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을 그리고 싶었을까.

그런 면에서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김훈의 이전 소설과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는 아예 ‘판타지 소설’이라고 홍보한다. 그의 많은 소설이 역사 속의 존재들을 다루고 있음에 비추면 틀린 말은 아니다. “고유하고 확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김훈으로서는 파격적 시도이며 어쩌면 문학적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훈은 젊은 시절 기자였고 40대 후반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때론 수필을 쓰기도 한다. 평생 글을 붙잡고 있는 그의 관심사는 세상이다. 그는 “소득 3만 불의 대한민국은 야만 국가”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곤 한다. 김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시민 단체의 공동 대표이기도 하다.

기득권자, 힘이나 돈을 가진 자들만의 세상이 되어가는 모습이 김훈의 눈에는 야만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었을까. 작가는 ‘뒤에’라는 에필로그에서 “(변하는 세상을 보며)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고 했고,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라고 했다.

역사를 보면 세상은 옛것이라는 핑계로 계속 지워져 왔고, 그 빈자리를 새것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세상이 차지해 왔다. 작가의 말처럼 그 빈자리를 완전히 “지우개로 뭉갤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김훈은 소설 속에서 태워진, 불로 지워진 세상을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하는 이들을 그리고 싶었을까.

김훈의 역사를 다룬 소설에는 ‘일러두기’가 있다. ‘칼의 노래’에는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 ‘현의 노래’에는 “이 책은 다만 소설이다”, ‘남한산성’에는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그렇다. 그의 소설은 '오직 소설'이고 '다만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일 뿐이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소설’을 쓴 (나이로는) 노작가, 혹은 (등단 20년이 좀 넘은) 중견 작가의 변화가 독자로서는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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