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⑪ 가성비 뛰어난 아식스와 오니츠카 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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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⑪ 가성비 뛰어난 아식스와 오니츠카 타이거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7.11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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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런칭 도운 아식스의 전신, 오니츠카 타이거
마라토너들이 인정한 러닝화로 세계적 명성 얻어
오니츠카 타이거 부활시켜 글로벌 패션리더들 공략
아식스 2017년 광고 캠페인
아식스 2017년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호평 받으며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버텨온 ‘아식스(Asics)’.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일찍이 올림픽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아식스는 하지만 미국 진출을 위한 협력업체에 불과했던 ‘나이키(Nike)’가 오히려 앞질러 달아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그래도 러닝화 분야에서 꾸준히 선전하며 자리를 지킨 아식스는 오리지널 브랜드네임 ‘오니츠카 타이거’로 프리미엄 라인도 성공적으로 전개하면서 매니아들을 다시 불러모으고 있다.

 

오니츠카 타이거, 마라토너와 함께 달리다

제2차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전체가 무력감에 빠진 가운데 31세의 오니츠카 기하치로(鬼塚喜八郞)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며 성장할 수 있도록 운동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1949년 고베 지역에 ‘오니츠카 상회’를 설립했다.

기존 신발 업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경기용 슈즈에 포커스를 맞춘 오니츠카는 그 중에서도 손이 많이 가는 농구화를 첫 제품으로 정했다. 스포츠 전문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선점하면 대중적 인기는 자연스레 따라오리라고 판단한 것.

선수와 감독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농구화의 품질을 보완한 끝에 고교 운동부로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한 오니츠카는 자신의 이름에 호랑이의 기운을 넣어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로 브랜드네임을 정하고, 호랑이 그림의 인장으로 용맹스러운 이미지를 어필하면서 이름을 알려갔다.

이후 문어의 빨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잘 미끄러지지 않는 깔창을 개발하고, 농구 외 다른 종목으로 제품들을 확대하며 경쟁 기업들을 따돌린 오니츠카 타이거는 1956년엔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하는 일본 선수단에 스포츠화를 제공하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물집으로 고생하는 마라토너들에겐 기존 운동화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 결과 1959년 오니츠카 타이거는 통풍이 잘 되도록 신발 옆 부분에 공기 구멍을 낸 러닝화 ‘매직 러너(Magic Runner)’를 완성했고, 1963년 벳부 마라톤 대회에서 매직 러너를 신고 달린 테라사와 토루(寺沢徹)는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다음해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자, 마라톤과 레슬링, 체조, 배구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에게 스포츠화를 제공하며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오니츠카 타이거.

특히 ‘맨발의 마라토너’로 유명했던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선수,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에 주목한 오니츠카 타이거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일본에 온 그에게 특별히 제작한 가벼운 러닝화를 적극적으로 권했고, 제안을 받아들인 비킬라는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열릴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며 오니츠카 타이거는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았는데, 바로 현재 브랜드를 대표하고 있는 모델, ‘멕시코 66(Mexico 66)’였다. 서로 다른 방향의 4선이 슈즈의 옆면을 장식하는, 아식스 브랜드를 상징하는 줄무늬가 처음 등장한 슈즈.

후속작으로 도톰한 밑창의 ‘타이거 코르세어(Tiger Corsair)’를 선보이며 인기를 더해가던 오니츠카 타이거는 미국 판매를 맡아 보겠다고 찾아온 한 방문객을 맞았다. 그는 향후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과 함께 나이키를 공동 창립하는 필 나이트(Phil Knight.).

오니츠카 타이거를 수입 판매하면서 운동화 사업에 자신감을 얻은 필 나이트는 이후 1971년 독자 브랜드 ‘나이키’를 탄생시켰다.

오니츠카 타이거를 수입 판매했던 나이키의 전신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의 초창기 광고 캠페인
오니츠카 타이거를 수입 판매했던 나이키의 전신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의 초창기 광고 캠페인

인수합병으로 힘 키워 아식스로 새 출발

1970년대에 들어서며 축구화, 야구화를 추가 제작하고, 독일 뒤셀도르프에 유럽 지사를 세우면서 영역을 확장해간 오니츠카 타이거는 스포츠 의류와 용품을 생산하던 ‘GTO’사, 니트 제품을 생산하던 ‘제렝크(Jelenk)’사와의 인수 합병을 추진해 1977년 ‘아식스(ASICS)’로 새롭게 태어났다.

브랜드네임 ‘아식스’는 고대 로마 시인 데키무스 유니우스 유베날리스(라틴어 Decimus lunius luvenalis)가 남긴 유명한 시 구절 ‘Anima Sana In Corpore Sano(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의 앞 글자들을 따와서 만든 이름.

아식스는 1970년대 후반에 불어 닥친 조깅 트렌드에 맞춰 러닝화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서는 한편, 1978년 새로운 배구화를 발표하며 유니폼을 함께 공개해 토털 스포츠웨어 브랜드로서의 출발을 알렸다.

1983년 첫 선을 보인 워킹화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1985년 고베 포트 아일랜드에 새 사옥을 건립하고 그 곁에 스포츠 공학 연구소를 마련한 아식스.

이 스포츠 공학 연구소로부터 이끌어낸 결과물 중 하나가 ‘젤 쿠셔닝 시스템’이다.

실리콘 타입의 젤, ‘알파젤(αGEL)’을 이용해 혁신적인 쿠셔닝 소재를 개발한 아식스는 이후 이 소재를 브랜드의 핵심 기술로 키워가면서 여러 제품의 밑창에 적용했다.

꾸준히 퀄리티를 업그레이드시키며 해외 곳곳으로 지사를 늘려가던 아식스는 하지만 점차 ‘나이키’, ‘아디다스(Adidas)’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식스의 러닝화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라 하더라도 나이키, 아디다스의 공격적인 투자, 트렌디한 마케팅은 따라잡기 어려운 것이 사실.

게다가 수제 마라톤화를 만들어내던 장인마저 아디다스에 스카우트되면서 아식스는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었는데, 하지만 프로선수에서 일반 소비자까지 다양한 사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여가며 아식스만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일본의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도 아식스의 오랜 고객.

그는 일본 프로야구 시절부터 아식스의 스파이크만을 고집했으며,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일본 출신 선수인 다르빗슈 유(ダルビッシュ ), 오타니 쇼헤이(大谷 翔平) 역시 아식스의 슈즈와 글러브 등을 사용하고 있다.

육상과 럭비, 배구 종목에서도 활약 중인 아식스는 가성비 좋은 실용적인 브랜드로 손꼽히며 국내 체육 전공 학생들이나 체력시험을 앞둔 입시생들로부터도 환영 받고 있다.

아식스 2014년 광고 캠페인
아식스 2014년 광고 캠페인

잠자던 오니츠카 호랑이, 최전방 공격수로

1977년 세 기업들간의 인수 합병으로 아식스가 출범하면서 이와 동시에 잊혀져 간 이름, ‘오니츠카 타이거’.

아식스의 역사 속에서 잠자고 있던 오니츠카 타이거는 2000년대 초반 아식스의 기세가 꺾이던 무렵, 다시 부름을 받게 되었다.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다시 찾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아식스의 경영진이 호랑이의 존재를 떠올린 것.

2002년에 되살아난 아식스의 옛 이름, 오니츠카 타이거는 기존 아식스와 차별화된 독자적인 라인으로 꾸며졌다.

대표 상품은 당연히 아식스 스트라이프가 처음으로 놓여졌던 ‘멕시코 66’.

오랜 기억 속의 오리지널 스타일을 재현하며 빈티지의 매력을 어필한 오니츠카 타이거는 기능적인 스포츠화 위주의 아식스와 달리 패션 브랜드에 가까운 노선을 택하면서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오니츠카 타이거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려준 일등공신이 있었으니,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2003년 영화 ‘킬 빌(Kill Bill)’이었다.

영화 속에서 ‘더 브라이드’를 연기한 우마 서먼(Uma Thurman)이 노란색 트레이닝에 맞춰 신었던 노란색 슈즈가 오니츠카 타이거의 ‘타이치(Taichi)’였던 것.

브라이드의 이 시그니처 룩은 사실 액션 영화의 레전드인 브루스 리(Bruce Lee)의 오마주였는데, 실제 브루스 리도 그의 1978년 유작인 ‘사망유희(Game of Death)’에서 오니츠카 타이거를 신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2015년 브루스 리의 탄생 75주년을 맞아 미국의 편집샵 ‘베이트(BAIT)’와 함께 리미티드 에디션을 발표하며 경의를 표하기도.

두 액션 스타 덕분에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며 인기를 더해간 오니츠카 타이거는 클래식 디자인들을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내놓으며 글로벌 매니아들을 늘려갔고, 슈즈와 함께 의류, 액세서리로 토털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모양을 갖추면서 도쿄에 첫 단독 매장을 연 데 이어 파리, 런던 등 세계 패션도시에 매장을 세웠다.

2007년 창립자 오니츠카 기하치로를 떠나 보낸 후에도 스트리트 패션 시장을 공략하며 성장을 멈추지 않은 오니츠카 타이거는 아식스와 구분되면서도 아식스 브랜드의 가치를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영화 ‘킬 빌’에서 오니츠카 타이거 타이치를 신고 등장한 우마 서먼
영화 ‘킬 빌’에서 오니츠카 타이거 타이치를 신고 등장한 우마 서먼

아식스는 2015년 ‘아식스 타이거(Asics Tiger)’라는 이름으로 제3의 브랜드를 런칭했다.

아식스 타이거는 기능성을 지향하는 아식스와 스타일을 추구하는 오니츠카 타이거의 가운데에 놓인 절충적인 컨셉의 브랜드로, 일상에서 가볍게 즐길 만한 스포츠화를 제안한다.

아식스가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중심을 잡는 동안 오니츠카 타이거가 패션 트렌드에 맞춰가고, 아식스 타이거가 그 사이에서 수많은 대중을 포섭하는 전략.

잘 균형을 이룬 아식스의 삼각편대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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