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라임 사태와 정의연 사태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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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라임 사태와 정의연 사태의 공통점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7.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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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㉖: 공화제와 시민사회(1)
라임사태와 정의연사태의 공통점, 공적 책무 소홀히 한 '사적 자율영역의 일탈'
국가-사회 이원론이나 공법-사법 구별론 한계 극복하는 공화주의적 각성 필요
민주공화체제 진화의 지향점으로서의 자율성과 책무성의 조화로운 발전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치 한류(政治 韓流)'의 가능성을 들먹일 정도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성공적으로 달성해온 한국형 민주공화체제가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점을 환기시켜주는 일들이 최근 연달아 공론장을 달구고 있다. 라임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같이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사모펀드의 문제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반면,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계기로 공익단체의 활동에 대한 외부통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금융사건과 공익단체의 문제가 언뜻 보면 전혀 무관한 듯이 보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공화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전제하는 '국가와 사회의 구별론'에 대한 중대한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자유주의적 국가-사회 구별론과 공화주의적 혼성이론

국가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은 기본적으로 공동선에 입각해 공동체의 자원 분배와 질서유지의 과제를 담당하는 정치과정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국가에 대응하는 생활영역으로서의 사회는 개인이 자유롭게 서로의 관계를 맺고 일상생활을 향유하는 경제·사회·문화과정으로 구성된다.

자유주의에 기반한 근대국가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공법과 사회에 적용되는 사법의 이원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현대의 인류사회는 '국가-사회'와 이에 대응하는 '공법-사법'의 이원구조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복합적 생활관계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국가와 사회를 교차하는 제3의 영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기존 국가의 기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전통적 이념형을 탈피해 확대되거나 축소조정되고 있다. 반면 개인의 자율에 의한 자치적 영역으로 치부되던 사회영역 또한 새로이 대두되는 반인권적이고 공동체 파괴적 일탈행위들에 대한 공적 가치기준을 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의 공화주의 정치철학은 '자유주의 국가-사회' 구별론이나 '공법-사법' 이원론을 해체해 국가를 필요‘악’으로 규정하기보다 공익의 조정·실현체로 이해하는 반면, 사적 영역에서도 원칙적으로 자율성을 존중하되 그 기능의 공공성을 고려해서 그 공적 책무를 선별적으로 부과하는 '혼성적 국가-사회 관계론'을 요구하고 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0월 환매 중단 간담회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왼쪽은 최근 구속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사진= 연합뉴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0월 환매 중단 간담회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다. 왼쪽은 최근 구속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사진= 연합뉴스

라임 사태의 경우: 금융기관의 공적 책무

지난 7월1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라임 무역금융 펀드의 환매중단사태와 관련해 민법상의 ‘유도된 동기의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와 투자금액 전액 환불을 결정했다. 금융투자와 관련해 특별법인 자본시장법이 아닌 일반법인 민법을 근거로 삼아 피해를 본 투자원금의 전액 환불을 결정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법률 관계의 안정성이 중요한 금융투자업의 속성에 비추어 일반 민사관계에 적용되는 일반조항에 입각해 투자계약의 취소를 허용함으로써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익에만 매몰되어 위험요소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투자자만을 과잉보호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특수성을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율적 질서요건마저 준수되지 않는 매우 악질적인 투자모집행위로부터 투자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을 때 오히려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그 기본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함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자본시장은 통상의 경우보다 위험요소가 많은 시장으로서 투자자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일반 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투기적 요소를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기초한 금융투자가 일반 시장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시장의 지배원리의 적용에 예외를 인정해 투자자의 책임을 원칙으로 사적 자치를 광범위하게 허용한다. 한마디로,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고 투자를 넘어 투기에 이른 경우까지 법적 보호를 받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 라임 사태의 경우 정확한 정보 제공을 전제로 고위험-고수익체제를 구축한 것이 아니라 아예 허위 정보를 제공해 투자자를 속이고 금융투자를 유인했다는 점에서 금융투자의 기본전제가 허물어진 혐의가 짙다. 심지어 판매자인 금융기관까지 자신들도 속았을 뿐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투자운용사의 불법적 행태가 두드러진다.

이번 금융분조위 조정결정에서는 투자운용사의 불법적 행태를 궁극적 원인으로 하는 법률관계에서도 판매자인 금융기관의 책임이 일부 강화된 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판매자는 주요 은행이나 증권회사로 자본시장의 핵심주체인데 무역펀드의 기본 요소에 대한 최소한의 점검도 없이 투자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했다는 점에서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자본시장의 기본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의 경우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기업이지만 국민경제의 기본인 경제질서의 핵심요소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그 기능의 공공성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더구나 고위험 상품이 거래되는 자본시장에서 사적 자치를 허울삼아 개인투자자의 자산을 약취하는 과정에 관여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적 책무를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사적 경제주체이지만 공공복리에 심대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계약관계에는 계약의 자유에 기초한 사적 자치가 오남용된 경우로서 그 사회적 효과나 영향력을 고려한 공적 책무를 인정해야 한다.

그 공적 책무는 자본시장법,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을 통해 원칙적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금융투자업자의 신의성실의무나 재무나 경영 등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의무가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고 불건전·불공정·부정 거래행위에 대한 규제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법적 원칙이 특별법적 장치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보장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이다.

이번 라임사태의 경우에도 자본시장법의 불완전판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지만 책임재산이 없어 투자자를 사실상 보호할 수 없거나 배상이 가능한 경우에도 상당한 기일이 소요되어 실질적 구제효과가 상실될 수 있다. 판매금융기관의 공적 책무가 강화된다면 이런 사각지대를 해소하여 자본시장의 기본질서를 구축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의기억연대 보조금, 기부금 비리 의혹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의기억연대 보조금, 기부금 비리 의혹 관련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의연 사태의 경우: 공익단체의 공적 책무

한편, 지난 4월 22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간담회를 계기로 공론화된 소위 ‘정의연’사태 또한 사적 영역의 공적 책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제공해 준다.

정의연과 같은 사회 일반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한 법인이나 단체는 사적 영역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라임펀드보다 더 공적 성격을 가진다. 그렇지만 공익단체가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실현하는 국민의 결사라는 점에서 국가와는 다른 것 또한 분명하다. 보통 이처럼 공사영역을 아우르는 영역을 제3영역 혹은 제3섹터라고 분류해 국가와 사회의 구별론에 따라 법적 규율 또한 달라지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제3섹터는 전통적인 국가영역과 같은 조직과 활동규율을 갖추고 있지 아니한 ‘비국가적’ 조직이면서 공공성이 강한 사회적 수요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순수민간’의 영역이 아닌 혼성적 영역이기에 이 영역에 대한 법적 규율은 전통적으로 제1섹터인 국가영역에 관철되던 공법적 규율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반면 제2섹터인 민간영역을 지배하는 사법적 자치 원칙 또한 철저히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과적으로는 공법과 사법적 규율방식이 헌법상 기본자유인 결사의 자유의 보장원리의 틀 속에서 ‘공적 책무를 지는 자율적 영역’(publicly accountable autonomous sphere)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제3섹터를 구성하는 비영리법인이 결사의 자유에 기초한 자율적 조직 및 활동을 영위하면서도 그 수행과제의 공공성에 따라 공적 책무체계를 구성하게 될 경우, 즉, 단체의 자율성과 함께 단체의 책무성이 동시에 관철될 경우, 예컨대, 그 재정공급이 기부등 사적 조달의 방식이든 정부의 지원에 따른 공적 조달의 방식이든 공익목적을 위한 활동에 결부되어 제공되므로 그 재정집행이나 활동과 관련하여 공개성(openness)과 투명성(transparency)의 원칙에 따라 처리될 필요가 있다.

즉, 단체의 활동 가운데 특히 재정조달 및 집행은 단체 내부적 차원뿐만 아니라 기부자나 지원자의 외부적 관점을 반영하여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이와 같은 원칙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비영리법인이 목적으로 하는 공익적 설립목적의 정당성이 위협받고 추진동력을 상실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익단체의 공적 책무성의 문제는 정의연 사태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시되어 왔다. 예컨대, 2017년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사건이나 ‘이영학 사건’ 등 공익단체의 불법적 회계운영은 물론 대기업과 관련하여 상속이나 조세회피 등의 탈법요소가 있는 거대공익재단의 사적 운영이나 ‘K스포츠·미르재단 사건’으로 대변되는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 사태와 같이 공익법인이 정경유착과 비리의 도관(導管)으로 오용될 수 있는 선례 때문에 사회적 경각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왔다.

공익단체의 경우에도 민법 외에 공익법인법, 기부금품법, 비영리단체법과 같은 특별법에서 공적 책무를 부과하고 있다. 공익단체의 회계처리등을 위해 등록이나 공시 및 신고제도 등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민법상 주무관청을 중심으로 한 관리 감독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익단체의 지배구조나 재정 등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법률안이 제안되고 있으나 제대로 입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개별 주무관청 감독체제를 독립적인 통합감독기구인 ‘시민공익위원회’를 설치하고, 기부금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한편, 공익법인의 재산운용 원칙과 예산 및 결산 의무제도를 도입하는 공익법인법 개정법률안이 제20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었으나 제21대 국회 개원과 더불어 다시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한국형 민주공화체제의 완성은 국가 영역의 제도개혁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사회 영역의 제도는 물론 의식과 문화의 발전도 병행되어야 한다. 제3섹터 또한 자율성과 책무성의 조화로운 구현이 요청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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