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준의 농민사랑] 농업은 6차 산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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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준의 농민사랑] 농업은 6차 산업인가?
  • 박범준
  • 승인 2015.11.30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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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돈 사냥 위한 덫이 아닌지…품목조합에 혜택주는 정책 필요

만약 우리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들을 가지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대개 “정신 나감 사람, 혹은 미친 놈”이라고 한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의사는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야. 의사는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란 말이야”하면서 자기만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되뇌이면, 주변 사람들은 “그거 우리도 알아, 애들도 다 아는 이야기야. 의사가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거”

그래도 이 사람은 자신이 처음으로 “의사는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야”라고 이야기 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처음으로 의사가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이야기 했다”고 떠든다.

주변 사람들은 이 사람을 “완전 또라이, 미친 놈”이라고 여기게 된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 “아빠는 남자고, 엄마는 여자”라고 떠든다면, “사람은 두발로 걷고, 사자나 호랑이는 네발로 걷는다”라고 이야기하면, 주변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반복해서 이야기 하면, 손가락질 하며, “정신이 완전히 나갔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업계에서는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몇해 전에 지역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시는 교수님이 ‘농업은 6차산업’이라는 말을 하면서, ‘농사 = 1차산업, 농산가공 = 2차산업, 농산물 유통 및 농촌관광은 서비스 산업으로 3차산업’인데 이를 합(1+2+3)해도 6이되고, 서로 융복합해서 곱((1×2×3)해도 6이 되니, “농업은 6차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흡사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듯 흥분하면서, 열변을 토하길래, 그냥 헛웃음을 짓고 넘어갔는데, 어느순간부터 농업분야에서는 너도나도 ‘6차산업’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웃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기냥 넘어갔는데 산 정상에서 구른 눈씨 하나가 눈사태를 야기하듯, 어느 순간부터 ‘농업은 6차산업만이 살길’인것 처럼 걷잡을 수 없이 입에서 입으로 번지다가, 급기야 중요한 정부정책으로 막대한 돈을 잡아먹는 ‘물먹는 하마’가 되어 버렸다.

 

FAO(세계식량기구)는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식인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 자연환경의 보전 기능, 문화의 보존기능 등을 이야기하고, 이는 전세계 모든 나라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그렇다면 ‘농업은 6차산업’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선진농업국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아마도 내가 아는 한 미국, 유럽, 이스라엘 등 대부분의 농업선진국에서 ‘농업은 6차산업’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상하지 않은가? 어떤 교수의 이야기 처럼 ‘농사 = 1차산업, 농산가공 = 2차 산업, 유통 마케팅 및 농촌관광은 3차 산업’이니 합하든 곱하든 어쨌든 6차산업이 되는 거니까?

▲ 충남 태안의 한 농민이 전날 내린 비로 고인 물이 하천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논두렁을 손질하고 있다. 태안군은 가뭄 극복 방안의 하나로 '논물 가두기 운동'을 펼쳤다. 농업은 예측불가능한 자연과 싸우는 산업이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재벌 회장 중의 한 분이 산업별 특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보험업의 특성과 핵심은 교육이라고 하고, IT산업의 특성은 스피드”라고 했다. 부연하여 설명하면 보험산업의 특성은 보험설계사의 능력 여하에 따라 보험 계약 상품이 달라지는데, 보험설계자의 지적 능력이 우수하면 고액의 보험상품을 계약하고, 지적 능력이 낮으면 주변 친인척 중심의 적은 금액의 보험상품을 계약한다. 따라서 보험설계사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면 보험산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고액의 보험상품을 계약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따라서 보험산업이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IT산업의 경우, 누가 먼저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했는냐가,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R&D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연구개발을 하더라도 남들보다 1분 1초를 앞당기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 전북 김제의 미곡창고에 처분하지 못한 쌀이 쌓여 있다.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놓고도 팔리지 않을때 농심은 타들어간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산업적으로 농업의 특성은 무엇일까?

농업이란 어쩌면 예측불가능하고, 불가항력적인 자연과 한편으로 순응하고, 한편으로 싸워야하는 산업이다. 태풍, 홍수, 비바람, 혹은 가뭄 등 예측불가능한 자연재해에 대항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먹거리를 생산한다.

가뭄을 이겨내기 위해, 저수지나 댐을 만들고, 비바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기도 한다. 땅을 비옥하기 위해 퇴비나 거름을 생산하여 넣기도 하고, 자연재해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의해 시설(하우스, 유리온실)을 짓는다.

또한 농업 또한 하나의 업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요구하는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많이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새로운 품종에 대한 육종연구, 재배기술 방법에 대한 연구, 각종 영양소가 농작물 생육에 미치는 영향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결국 농업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이 품목별로 뭉쳐야 한다는 것을 옛날부터 깨닫게 되었다. 농업인들은 품목별로 과수조합, 축산조합, 화훼조합 등을 만들고, 정부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기초과학연구에 집중하게 되고, 아울러 품목조합이 요구하는 가공물류종합센터 등 인프라를 지원하게 되었다.

미국의 오렌지 생산농민들이 뭉쳐서 만든 ‘썬키스트’가 바로 품목조합이고, 뉴질랜드 키위생산 농가들이 모여서 만든 협동조합이 바로 ‘제스프리’다.

썬키스트, 제스프리 등 품목협동조합들은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통일된 재배 매뉴얼을 적용하여 교육을 하고, 각종 농자재를 공동으로 구입하여 쓰고, 생산된 농산물을 공동으로 선별하여, 공동으로 판매하면서, 동시에 쥬스류, 잼류 등 가공상품을 만들어 유통 및 무역을 하고 있다.

선진농업국가들 대부분이 ‘품목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이와같은 활동을 하고 있고, 어쩌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상식적인 행위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농업이란 농민들이 힘을 모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연중으로 가공 및 유통 무역을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아들이 남자, 딸이 여자’ 혹은 ‘아빠는 남자, 엄마는 여자’라고 외치는 사람에 대해 “미친 놈”이라고 하는 것 처럼, ‘농업은 6차산업’이야 라고 하면 “당연한 걸 갖고 왜 저런데?”라고 미친 놈 취급하는 것과 같다.

‘6차산업만이 우리 농업이 살길’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 농업 현실을 보면, 한심스럽고 안따까은 마음이 들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는 ‘농업 육성정책’이 없었구나 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농업은 6차산업’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과 함께, 몇해전부터 통용되는 ‘강소농’이라는 정책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기술력에서 세계최고인 중소기업을 강소기업’이라고 하는데, 이를 원용해서 ‘강소농’이라는 변종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곳도 바로 대한민국이다.

‘강소농’이라는 말은 ‘농업’의 특성과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용어인데, 버젓이 우리나라에는 정책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우리 속담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농업에 딱 맞는 말이다.

‘농업은 6차산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그나마 농업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지식인의 고뇌라고 이해하고 싶지만, 진행되는 경과를 유심히 살펴보면 ‘눈 먼 돈을 사냥하기 위한 덫’으로 ‘농업은 6차산업’이라고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6차산업 지원예산의 수혜자가 ‘품목조합’이 아니라, 정부와 긴밀한 관계의 소수자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박범준씨 이력
▲1981년 서울대 농과대 입학 ▲1986년 전남 함평군 엄다면 영농 ▲1989년 전남 농민문제연구소 연구실장 ▲1989년 전국농민운동연합 전남 정책실장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남 정책실장 ▲1991년 동양식품 상무 ▲1992년 한우리유통 대표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농어민특별위원회 사무국장 ▲1999년 성환식품 전무 ▲2001년 (주)한국농산물류 기획실장 ▲2005년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 자문위원 ▲2013년 강원도 인재개발원 심의위원 ▲2011년~현재 강원마을기업 및 주민기업 육성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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