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절차적 공정성 놓친 '인국공 정규직 전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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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절차적 공정성 놓친 '인국공 정규직 전환' 논란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20.06.2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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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사기업의 수시 채용 확산으로 취업 준비생들의 한숨이 더해진 가운데 공기업 준비생에게 꿈의 목표로 불리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이슈는 이른바 취준생들의 불만을 절정까지 끌어올린 분노의 촉매제가 되었다. 공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이렇게 사회적인 논란으로 확대된 것도 처음인 듯하다. 

시간을 3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초기 인천국제공항을 찾아가 비정규직의 처우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커다란 방향성을 국민에게 제시했다. 다만, 정부가 이후 신중한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해당 문제에 관해 건설적으로 협의하라며 사회적 합의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 건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3년 후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에서 총 2100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자사 정규직으로 직고용 전환한다고 하자 누적된 불만은 터지고 말았다. '형평성'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키워드가 연관 검색어로 등장할 정도로 취준생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여당 의원들은 인터뷰를 통해 정부 입장만을 옹호해 논란을 재생산했다. 

공정성에 관한 취업 준비생들의 항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향성에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취업준비생부터 직장인까지 비정규직 처우와 상황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 역시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견수렴 절차를 통한 절차적 공정성이 준수되는 선에서 타당한 말이다. 과정이 공정하지 않을 때 결과를 정의롭게 여기는 이 또한 아무도 없다. 

인국공의 전체 정규직 인력은 1400명 수준이다. 그런데 협력업체 소속인 보안검색원 1900명이 한번에 인국공의 정규직 청원경찰로 전환되었다. 해당 직군이 정규직 신입 일자리를 희망하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도 아니고 보안직군의 연봉이 높지 않기에 이들의 처우 개선에 불만을 제기하는 건 타당하지 못한 항의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두관 의원이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되었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 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발언은 결국 분노의 도화선이 되었다. 지금의 불만은 비정규직의 연봉, 처우 개선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쏟아진 항의가 아니다. 정부가 강조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발생한 분노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다수 기업은 현재 비용 절감을 위해 대규모 인력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진 상황에서 고용의 안정성은 취준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한 사회적 합의 없이 특정 조직에 근무하는 일부 구성원에 한정해서 고용 안정성을 부여하면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특히 보안직군과 신입 정규직 일자리는 다르기에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은 실상을 모르는 소리다. 기존 정규직 직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인원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당장 복리후생과 적절한 임금 인상을 맞춰져야 하기에 총액 인건비는 대폭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는 향후 선발하게 될 신입인력 TO(정원) 의사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절차적 공정성이 생략된 바람직한 결과는 없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 공기업들의 경우 대폭 늘어난 인건비 부담으로 신입 정규직을 확대 선발하는 것에 많은 부담이 따른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규직 구성원이 하루 아침에 2배로 늘어난 조직이 신입 일자리를 점차적으로 줄일 것이라는 예측은 인적자원관리 실무 차원에서 봐도 보편적인 상식에 해당된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발히 진행된 절차적 공정성 연구를 살펴보면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차적 공정성이 준수된 상황에서는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한국인적자원관리학술지에 게재된 국내 논문 역시 절차적 공정성이 준수되어야 구성원의 조직몰입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당에서는 청년층의 공정성에 관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 만연한 비참한 사회현실이 더 큰 문제"라고 언급하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더 많이 전환할 수 있는 계기 등을 설명, 결과적으로 공정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조성했다"며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절차적 공정성이 부족했지만 분배의 공정성을 지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응용심리학 국제 학술지에 실린 샤(Shah)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절차적 공정성이 준수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출된 바람직한 분배의 결과는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더욱 하락시키는 부정적 결과만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 절차적 공정성을 생략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짚어주는 연구 결과이다. 

이번 일로 많은 사람이 정신적 상처를 받았다. 청년층 그리고 다른 조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구성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또 한 번 절망했으며, 정규직으로 전환된 보안검색요원들 역시 자신들을 바라보는 편견으로 더 큰 상처를 받아야 했다. 절차적 공정성이 생략된 바람직한 결과는 있을 수 없다. 그 자체가 기회의 평등, 결과의 정의를 훼손한 부조리일 뿐이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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