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공직자의 무(無)주식은 미덕도, 지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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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공직자의 무(無)주식은 미덕도, 지혜도 아니다
  •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 승인 2020.06.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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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 조윤제 금통위원 주식매각 통보에 '엉터리 평가' 일삼아
조 위원, 인사혁신위에 자율적 질의한 것...타율적 강요로 해석 말아야
최초 한은법 취지 감안하면 조 위원이 금통위 회의 '제척'될 이유없어
주식 보유와 금통위 업무 연관성 없지만, 당사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야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작은 뉴스가 의외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이 보유하는 10억여 원의 주식(3종목)에 대해서 인사혁신처가 직무연관성을 인정했다는 소식이다. 그 결정에 따라 조윤제 위원은 조만간 보유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그 단순한 사실에 많은 이목이 쏠리는 것은, 주미 대사를 지낸 조윤제 위원의 무게감 때문이다.

물고기는 죽은 뒤에 자란다. 피라미를 월척으로 둔갑시키는 낚시꾼들의 허풍을 풍자하는 말이다. 가십도 마찬가지다. 당사자인 조 위원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주식을 처분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때부터 그를 둘러싼 가십이 왕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 가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당사자의 판단이다. 공인으로 임명되면 일찌감치 주식을 팔았어야 하는데, 정부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며 시간을 끄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둘째 당사자의 운신이다. 현재 보유하는 주식들은 거래량이 많지 않아서 이를 전부 매각하는 데 상당한 시일(최장 60일)이 소요될 것이고, 그 때문에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7월 금통위 회의(7월 16일)에도 참가할 수 없다고 예상한다. 그럼으로써 금통위원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정죄한다.

이런 가십들은 당사자를 좇아가고 있다(ad hominem = according to person). 그래서 인신비방이다(인신비방을 라틴어로 ad hominem이라 한다).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독특한 공직자 백지신탁제도에 있다(6월 2일자 필자의 칼럼을 참조하라). 이 글에서는 사람이 아닌 제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자율과 타율, 의결과 집행, 개인과 조직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이 사태를 살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 위원이 정부를 향해서 보유주식의 직무연관성 심사를 요구한 것은 매우 적절하고 바람직했다. 그리고 보유주식을 완전히 매각하지 않더라도 기준금리 결정을 위한 7월의 금통위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제척(除斥)이 아니라 회피(回避)

우연히 조윤제 위원과 성이 같은 조광조(趙光祖)는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던 개혁가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훈구파들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조작했다. 보통 그것을 “조(趙)광조가 왕이 되려고 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 글자는 “조광조가 왕을 위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6.25동란 때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군인을 위국헌신(爲國獻身)이라고 추앙하지 않는가! 그 말을 나라가 되려고 헌신했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주어(왕이 됨)와 목적어(왕을 위함)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충신이 역적이 된다. 한국은행법(제23조)의 제척(除斥)도 마찬가지다. 자율과 타율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사태를 정반대로 인식하게 된다.

제척(recusation)이란, 재판이나 정책의 공정성과 신뢰성 유지를 위해서 이해당사자를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실행된다. 불공정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재판이나 심판을 받는 사람이 특정 판사나 위원을 배제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는데, 이를 기피(petition for recusation)이라고 한다.

제척과 기피는 타율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동전의 앞뒤 면과 같다. 그래서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노동위원회법,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등에서는 제척과 기피가 항상 짝을 이룬다. 공정성을 염려하면서 제척만 다루는 경우는 없다.

외국의 중앙은행법에서는 제척도, 기피도 다루지 않는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통화정책 결정회의의 특성상 국외자가 기피를 신청할 수 없고, 기피가 불가능하다면 제척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해상충의 시비가 있을 때에는 해당 위원이 의결에 참가하는 것을 회피(abstention)토록 한다. 회피는 자율적 행동이므로 법률이 아닌 내부규정에서 다룬다.

최초의 한은법에서 다뤘던 것도 회피였다. 1949년 당시 우리나라가 필리핀보다도 후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미 연준 직원들은 필리핀중앙은행법에는 넣지 않았던 회피를 한은법에는 넣었다(두 법 모두 미국의 도움으로 제정되었다). 즉 최초의 한은법 영문초안에서는 이해상충이 있는 위원을 “withdraw from the session(회의에 참여하지 않는다)”하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1998년 법률 개정 과정에서 회피가 제척으로 둔갑했다. 자율과 타율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은법에는 기피가 빠진 채 제척만 있다. 국내외 법률들로 볼 때 분명한 입법오류다(그런 점에서 1998년 법률 개정을 주도한 기획재정부의 법률실력이 상당히 의심스럽다. 강만수 차관이 개정작업을 주도했다).

자율과 타율을 혼동하면, 주어와 목적어를 혼동하는 ‘주초위왕’ 식 오류를 범하게 된다. 조 위원은 회의 전 불참의사를 통보했고, 다른 위원들이 이를 수용했다. 타율이 아닌 자율, 수동이 아닌 능동적 결정이었다. 조윤제 위원이 “의결에서 배제되었다”느니 “제척 당했다”느니 하는 기사는 사실의 왜곡이다(조선일보 김은정 기자만 왜곡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 새 위원으로 임명된 조윤제 위원.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행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 새 위원으로 임명된 조윤제 위원. 사진= 연합뉴스

주식 매각 전에도 금리결정 회의에는 참석해야

금통위는 한은 예산을 심의·의결한다(한은법 제29조). 그리고 공직자윤리법시행령(제27조의8)에서는 “예산의 편성·심의·집행에 관한 직무에 종사하거나 그 직무를 지휘·감독”하는지를 직무연관성의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금통위는 여느 공기업의 이사회나 정부부처의 고위 공무원들과 다르다. 금통위는 한국은행의 정책결정기구(한은법 제12조)로서 예산을 심의·의결하지만, 편성·집행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통위의 성격이 애매하다. 한은 내부에서 금통위는 국회에 가깝다. 국회는 예산을 승인하지만, 예산을 편성·집행하지 않는다.

예산의 심의와 의결만으로도 집행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은 있다. 그것을 부관(附款)행위라고 한다. 의안에 조건을 붙여서 의결하는 것을 말한다.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도로를 닦는 것을 조건으로 예산안에 동의하는 것이 부관행위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부관행위는 행정부의 업무영역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늘 말썽이다. 원칙적으로 금기사항이다. 마찬가지로 금통위가 심의·의결 기능을 빌미로 집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금기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금통위의 금기를 가정하고 직무연관성을 추측하는 것은 음험한 상상이다.

일부에서는 공직자윤리법시행령에서 언급된 “공사와 물품의 계약에 관련되는 직무” 또는 “관련 업종에 관한 정책 또는 법령의 입안·집행 등에 관련되는 직무”를 주목한다. 하지만 금통위는 은행법만 규제할 뿐, 조윤제 위원이 주식을 소유하는 IT 업종에 관해서는 규제권한이 없다. 해당 기업이 블록체인기술 등 지급결제분야에 접목될 수 있는 사업을 통해 한은과 용역계약도 체결했다지만, 해당 기업은 금통위 규정을 직접 적용받는 ‘중요 지급결제시스템 운영기관’이 아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인사혁신처의 직무연관성 판단 근거에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인사혁신처가 직무연관성을 인정한 이상 조윤제 위원은 그 판단을 따라야 한다. 조만간 해당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데, 해당 주식의 거래량으로 보았을 때 신속한 처분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매각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조 위원은 금통위 회의에 참가하는 것이 순리다.

공직자윤리법은 주식의 처분만을 명령할 뿐이며, 공직자의 처신까지 언급하지 않는다. 금통위원의 처신을 규정하는 것은 한은법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운영 규정」이다. 이 법규들에 따르면 “해당 위원의 신청에 따라 제척을 결정”한다. 일부 주식을 처분하지 못했을 때 이해상충 여부를 판단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총재가 아닌 당사자라는 것이다(금통위 회의에 불참하는 것을 제척이 아닌 회피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만일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까지 일부 주식을 처분하지 못했다면, 비용편익분석이 필요하다. 금리결정 회의에 참가하는 편익과 불참하는 비용을 따지는 것이다. 이미 제3자를 통해 주식매각이 상당히 진행(백지신탁) 중이라면, 조금 남아 있는 주식에서 생기는 이익을 이해상충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당사자인 조윤제 위원이 금리결정 회의에 참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모든 주식을 몽땅 처분해야만 금통위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직무를 소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7월 금통위 회의에 조 위원의 불참을 예단하는 것은 율법주의자 또는 바리새파적인 상상이다.

재산권 방어를 위한 이의 제기는 장려되어야

금통위원이 보유 주식 때문에 중요한 회의에 불참하고, 주무 부처를 향해 직무연관성 유무에 관한 심사를 청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 “그냥 빨리 팔아버리면 안 되나?”라는 핀잔성 촌평이 나온다.

그러나 공직자도 국민이고,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헌법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 직무연관성 판단은 개연성이 아닌 필연성에 기초해야 한다. 정당하게 취득한 주식을 여론의 이름으로 무작정 처분하라고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전체주의의 출발이다.

환경부가 추진하려던 「재포장금지법」에 국민들이 분노했다. 환경보호라는 공익적 가치를 앞세워 제품포장의 자유를 정부가 침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주식은 “그냥 빨리 팔아버리는 게 상책(무주식이 상팔자)”이라는 관념도 마찬가지다. 공직자의 청렴을 앞세워 재산권을 압박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조윤제 위원의 직무연관성 심사 청구는 매우 정당하고 용감하다. 나무랄 일이 아니라 격려할 일이다. 유일한 흠결이라면, 조윤제 위원의 재산처분에 관한 장래의 계획을 당사자가 아닌 ‘한은 관계자’가 설명한 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은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장차 조 위원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추측하거나 예단하여 설명했다. 제3자의 개입은 적절치 않다.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개인과 기관을 철저히 구분한다. 화장품 재벌 에스테 로더의 손녀사위인 케빈 와쉬가 2006년 미 연준 위원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의 재산처분에 관한 세간의 관심이 많았지만, 연준 관계자가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다. 2012년 부인의 외환투기 문제로 필립 힐더브란트 스위스중앙은행 총재가 곤혹을 치를 때도 스위스중앙은행 직원들은 아무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개인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행에는 개인과 기관의 구분이 덜 분화되어 있다. 그리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질의하는 것에 자신감이 없다. 지난해부터 이주열 총재가 국제결제은행(BIS)로부터 받는 급여가 그 예다. BIS 이사직은 해당 중앙은행 총재가 번외로 일하는 겸직에 해당한다. BIS는 그 수고에 대해서 급여를 지급하는데, 현행 한은법(제20조)은 금통위원이 어떤 이유로라도 보수를 받는 것을 금지한다. 국제관행과 한은법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의뢰하여 행정해석을 얻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다.

이주열 총재가 BIS에서 급여를 받되, 그것을 한국은행의 잡수익으로 처리했다(앞으로 남은 2년 동안도 그렇게 처리할 것이다). 그런 업무처리에 관해서 주무부처의 행정해석을 거치지 않았다. 한은 내부에서 자력구제(self-help)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한편, 금통위원의 겸직에 따른 보수가 어디로 흘러갔건, 그것을 받는 것은 한은법에 저촉된다. 아울러 개인의 소득을 중앙은행인 한은이 수취할 이유도 없다. 한국은행이 그렇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개인과 기관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윤제 위원 개인의 주식처분에 관하여 한은 관계자가 나서서 설명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개인과 기관을 구분하지 못하는, 조직문화의 한 단면이다.

이 글은 세 가지 금기를 건드렸다. 언론의 정확하지 않은 보도와 정부의 모호한 직무연관성 판단기준과 한은의 구태의연한 조직문화다. 그로 인한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한 가지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존중받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수호다. 헌법적 가치다.

결론적으로 조윤제 위원의 문제제기는 옳았다. 집단사고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의 자존심과 재산권을 수호하려는 용감한 이의제기이자, 개혁적 발상이다. 반면, 언론의 비판과 추측은 틀렸다. 공직자 백지신탁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은행은 개인과 기관을 구분하는 조직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그런데 개혁가 조광조는 충신이었나, 역적이었나?

● 차현진 교수는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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