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불완전 판매' 징계하려면 CEO 책임 범위부터 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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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불완전 판매' 징계하려면 CEO 책임 범위부터 정해야
  • 유호영 기자
  • 승인 2020.06.23 15: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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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영 금융부 기자.
유호영 금융부 기자.

[오피니언뉴스=유호영 기자] 라임펀드·DLF(파생결합펀드)사태로 인해 은행과 증권사들이 원금손실 투자자들에게 선지급 배상안을 내놓았다.  

위법사항이 발생한데 따른 처벌과 배상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이유로 금융사 CEO에게 제재를 가하는 금융당국의 조치가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불완전판매' 책임 범위, 어느선까지 

대신증권은 지난 19일 라임자산운용 펀드에서 발생한 고객손실에 대해 30% 선지급안을 내놨다. 신한·우리·IBK기업은행, 신한금융투자·신영증권 등 주요 판매사들이 라임펀드 선보상안을 결정한 이후 행보다. 은행을 비롯한 판매사들이 선지급에 나선 이유는 고객의 손실에 대한 일정한 책임감 때문이다.  

이에 앞서 터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DLF와 관련한 배상을 진행하고 있는 이유는 역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5일 DLF 판매에서 은행의 불완전 판매 문제가 있다고 판단, 피해자에게 40%~80%까지 배상하라고 했다.

DLF 피해자 보상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그러나 금융감독 당국의 CEO 제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사태의 책임을 금융사 최고경영자나 판매 당시 은행장에게 물어 제재를 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놓고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나섰다.  

법원 "불완전판매, CEO 책임으로 단정 어려워"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1일 DLF 일부 불완전판매와 대규모 손실에 대한 현장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지난 1월 30일 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게 중징계인 문책 경고를 내렸다. 문책경고를 받은 금융업계 종사자는 징계 당시 직은 유지할 수 있으나 임기를 마친 후에는 일정기간 금융업 취업이 제한된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한다'고 규정한 지배구조법과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한다'는 시행령을 근거로 DLF 사태의 책임이 경영진에 있다고 봤다.

라임사태의 경우 아직 검사가 진행 중이기에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향후 책임 소재를 묻는 과정에서 CEO에 대한 유사한 제재가 내려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난 3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DLF의 금감원 징계에 대해 법원에 행정처분 집행 정지를 신청했다. 앞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금감원의 중징계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지난 3월 20일 법원은 손 회장의 행정처분 집행정지 신청사건을 인용했다. 

손 회장은 금감원 중징계 처분에 대한 집행 정지를 신청하면서 "이번 사태의 핵심은 불완전판매 문제로, 지배구조법을 근거라 징계 이유에 포함시킨 자체가 잘못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완전판매 제재규정은 자본시장법을 따라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권한을 금감원에게 위임한 규정에 의문이 든다"며 "본안에서의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 "처분 자체도 명백하게 과중하지 않다거나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금융권 '내부통제', 실천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 마련부터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무 위반에 대한 근거 규정인 지배구조법 제 24조는 '금융사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할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며 "규범적 해석에 대한 판례 또한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 임직원에 대한 주의감독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내부통제기준은 마련돼 있지만 최고경영자가 미준수·미점검한 것으로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내부통제에 대한 경영진의 관리의무 위반에 대한 규제 법률 개정안이 지난 20대 국회에 계류 중 이었다. 계류·논의 중이었던 것을 보더라도 반대해석상 현행 규정에선 '내부통제기준을 안 지켰다' 또는 '점검을 잘 하지 못했다'는 것으론 제재할 수 있는건 아니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내부통제기준에 대한 법리 해석부터 명확하게 한 후 CEO에 대한 처벌 수위를 정하는 것이 순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한 이유다. 

또 다른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법을 적용하면 피감기관이 무엇을 지켜야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금융위 제4차 정례회의 의사록을 보면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금융위원은 "근본적으로 내부통제구조가 중요한 이슈라는 것엔 모두가 동의하고 있지만 내부통제구조 지침에 대해 당국이 구체적으로 기준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제재에 눈치만 보는 금융권...당근과 채찍 필요한 시점

우리·하나은행이 DLF와 관련한 자율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라임사태와 관련한 판매사들도 선지급에 능동적으로 나선 만큼, 금융당국이 강력한 채찍만을 휘두를게 아니라 적절한 당근책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사고 발생 이후, 책임소재에 대한 분쟁이 있을 경우 투자자 보호와 재발 방지라는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사고의 전환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무조건 '일벌백계'만 앞세우는 것이 투자자보호를 위해 최선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사실 아직까지 분쟁조정결과 등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사들이 먼저 피해 보상에 나선 경우는 이례적이고, 금융당국에 소위 '미운털 박히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며 "금융당국도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배상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을 인정해주고 적절한 인센티브도 준다면 금융사들이 투자자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와 관련, 판매사에게 강력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난 DLF사태로인해 지주사 CEO 징계가 내려진 후,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내부통제 기준에 대한 이견이 존재했고, 법원도 적법성을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처벌의 규정이 모호하거나 판단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면, 처벌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효능마저 잃을 수 있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전대미문의 사모펀드 부실 운용 사건은 라임펀드사태가 끝은 아닌 듯 하다.

지금 우리에 필요한 것은 운용사와 판매사간 어떤 문제점이 있었고, 이 가운데 투자자 피해가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책임질 금융기관이나 인사는 책임을 지우는 것이 순서 아니겠는가. 관계자 몇명을 사법처리하고 CEO가 자리를 내놓는다고 투자자들의 피해가 온전히 회복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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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용 2020-06-24 10:10:05
CEO에 대한 징계보다는 미국과 같이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을 법인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물려 CEO가 이사회나 주총을 통해 물러 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CEO의 책임이 없다고 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