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떫은 맛, 영국인들 우유와 설탕 넣어 먹기에 적합
최근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 개발...새로운 아삼홍차 경험해 보길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인도 지도를 보면 북동쪽에 방글라데시를 사이에 두고 섬처럼 뚝 떨어진 곳이 있다. 이 곳이 아삼지역이다. 현재는 7개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 부분에 위치한 아삼 주를 중심으로 아삼 홍차 대부분이 생산된다. 연간 약 70만 톤 규모로 인도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단일지역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홍차 생산지다.
중국 차로부터의 독립 꿈꾸며
1650년대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한 영국은 거의 200년 동안 중국에서 차를 수입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중국만이 유일하게 차를 생산하는 나라였다. 이런 중국으로부터 차 독립을 꿈꾸며 영국이 개척한 땅이 아삼지역이다.
18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삼(Assam)에서 홍차가 생산되기 시작한 후 40여년이 지난 1900년대에 이르러서 마침내 영국은 (스리랑카까지 포함하여) 자신의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홍차로 자급할 수 있게 된다.
1860년대부터 이후 100년 이상을 아삼은 영국에서 소비되는 홍차의 주 공급처 역할을 해 왔다. 어쩌면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홍차의 공급처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강하고 떫은 맛 '대명사' 아삼홍차
아삼은 세계 최고 다우(多雨)지역이라 매우 습하고 무더운 기후 조건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상대적으로 강하고 떫은 편이다. 영국은 과거에도 현재도 강하게 우린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이 주음용 방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홍차 음용 국가들이 이런 음용방법을 가지고 있다.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이런 음용방법에 적합한 홍차가 바로 아삼 홍차였다.
가장 대표적인 홍차인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같은 강한 홍차의 주된 베이스 차가 아삼홍차였다. 세계에서 홍차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국가단위로 보아) 인도 또한 강하게 우린(혹은 끓인) 홍차에 우유와 설탕 그리고 향신료를 넣은 차이(Chai,짜이)를 마신다. 이런 음용법에 적합한 아삼홍차는 오랫동안 강한 홍차의 대명사였다.
197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영국은 인도와 정치적인 불편함이 심화되자 홍차 수입처를 케냐로 변경하기 시작한다. 케냐를 필두로 하여 우간다, 말라위, 르완다 등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홍차를 많이 생산하며 아프리카 기후 특성상 떫고 강한 성질을 가진다.
2017년 기준으로 영국은 홍차 수입량의 73%를 케냐를 포함한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수입하며 인도로부터 수입량은 15% 수준이다. 이런 이유들로 현재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티백 홍차의 베이스 차는 아삼 보다는 아프리카 홍차일 가능성이 더 크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등 대부분의 홍차 소비국들은 진하게 우린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이 전통적인 음용방법 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커피에 설탕과 커피크림을 넣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경제수준 향상과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커피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기는 새로운 추세가 등장한지 꽤 되었다. 또 이런 추세에 따라 우리가 마시는 커피 수준이 10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고급 홍차 수요 늘어...아삼 홍차도 변화의 계기 맞아
주요 홍차 음용국가들에서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점점 더 홍차자체의 맛과 향을 즐기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급 홍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150년간 이상을 강한 홍차의 대명사였던 아삼홍차가 최근 들어 변하고 있다. 차나무 품종도 재배지역 자연환경도 그대로지만 싹과 어린잎 위주로 채엽하고 가공방법에 변화를 주어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운 홍차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약하지는 않다.
여기에 새로운 아삼홍차의 진짜 매력이 있다. 아삼 홍차 특유의 몰트 향과 건조한 과일향이 조화된 깊고 강하면서도 입안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는 풍성함은 이전 아삼홍차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뿐만 아니라 다즐링, 스리랑카, 중국 등 그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는 홍차와도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
아삼홍차를 강하고 떫은맛으로만 기억하는 애호가라면 꼭 새로운 아삼홍차를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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