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⑨ 휠라(Fila), 레트로 붐 타고 날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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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⑨ 휠라(Fila), 레트로 붐 타고 날아올라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6.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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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마을의 직물 회사'로 시작된 휠라의 역사
NBA 스타 그랜트 힐과의 시너지 오래가지 못해
본사 인수한 휠라 코리아, 휠라 헤리티지 되살려
휠라 헤리티지 컬렉션 2017년 봄 시즌 광고 캠페인
휠라 헤리티지 컬렉션 2017년 봄 시즌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선명한 ‘F’로고로 시선을 모으며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이탈리아 출신의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

테니스에서 농구 코트로 이어진 인기의 기세가 꺾이면서 휠라를 침체기에 빠지게 했고 낡은 이미지의 틀에 갇히게 했다.

이에 위기의 휠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한국 지사 ‘휠라 코리아’는 브랜드의 전통을 바로 세우는 작업에 착수했고, 때마침 불어온 레트로 트렌드의 순풍은 휠라를 다시 성장 궤도로 올려주었다.

 

알프스에서 직물 짓던 휠라, 테니스웨어로 인기몰이

휠라의 고향은 알프스 산맥 남쪽 계곡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비엘라.

그 곳에 살고 있던 에또레(Ettore Fila)와 잔세베로 휠라(Giansevero Fila) 형제는 1911년 직물을 짜내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새로운 직물을 개발하고 품질을 보완하면서 1923년 니트를 생산한 데 이어 1926년부터 섬세한 고급 원단으로 속옷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휠라 형제는 다양한 의류 제품들을 추가하며 점차 의류기업으로서의 형식을 갖춰갔다.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 휠라 형제는 1968년 매니징 디렉터 엔리코 프라치(Enrico Frachey)를 외부에서 영입해 휠라의 컨셉을 조정하고 발전시키는 임무를 맡겼다. 기대에 부응하며 사업을 성장시킨 프라치는 디자이너 피에르 루이지 롤란도(Pier Luigi Rolando)를 발탁해 함께 스포츠웨어 제작을 추진했다.

스포츠와 레저 활동이 일상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현상에 주목하고, 스포티 아이템들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으로 예측한 것.

1973년 심플하고 세련된 팝아트 느낌의 ‘F’로고를 준비한 휠라는 고급스러운 스포츠웨어를 보여줄 수 있는 테니스 종목을 우선 타겟으로 삼고, 감각적인 테니스웨어, ‘화이트 라인(White Line)’ 컬렉션을 발표했다.

화이트 일색인 테니스웨어 시장에 등장한 휠라의 ‘화이트 라인’ 컬렉션은 아이러니하게도 네이비와 레드 등 강한 컬러들을 배색한 파격적인 디자인이었고, 이러한 스타일을 전파해 줄 적임자로 휠라는 '비외른 보리(Björn Borg)'를 선택했다.

비외른 보리는 1970년대 당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인기를 더해가던 스웨덴 출신의 테니스 스타.

보리는 이후 각종 세계 테니스 대회에서 휠라의 테니스복과 점퍼는 물론 특유의 긴 금발머리 위에 두른 헤어밴드로 휠라 스타일을 선보였고, 1980년 윔블던 대회 5연패를 앞두고 존 매켄로(John McEnroe)와 맞붙었던 역사적인 순간에도 그는 휠라와 함께 했다.

이 경기에서의 모습은 2017년 영화 ‘보리 vs 매켄로’를 통해 재현되기도.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브랜드 홍보대사 역할을 훌륭히 해준 보리 덕분에 휠라는 모니카 셀레스(Monica Seles), 킴 클리스터스(Kim Clijsters) 등 테니스계 탑플레이어들과의 스폰서쉽을 이어갔고,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와 스키 선수 알베르토 톰바(Alberto Tomba) 등을 후원하며 스포츠 브랜드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영화 ‘보리 vs 매켄로’의 홍보 이미지 컷. 보리 역을 맡은 스베리르 구드나손(Sverrir Gudnason, 오른쪽)과 매켄로 역을 맡은 샤이아 라보프(Shia LaBeouf)
영화 ‘보리 vs 매켄로’의 홍보 이미지 컷. 보리 역을 맡은 스베리르 구드나손(Sverrir Gudnason, 오른쪽)과 매켄로 역을 맡은 샤이아 라보프(Shia LaBeouf)

◆ 짧았던 농구화 열풍, 뒤 이어 찾아온 슬럼프

테니스 코트를 주 무대로 1970~80년대를 풍미한 휠라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부는 농구의 바람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 1994년 본격적으로 농구 시장에 뛰어들었다.

휠라는 먼저 농구 팬들에게 휠라를 소개시켜 줄 NBA(미국프로농구) 선수 크리스 웨버(Chris Webber), 케빈 존슨(Kevin Johnson) 등과 스폰서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그랜트 힐(Grant Hill)을 낚아챈 건 최고의 수확이었다.

1994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입단한 그랜트 힐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엘리트 가문 출신으로 준수한 외모와 겸손한 태도를 겸비해 폭넓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스타.

데뷔 시즌부터 힐이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이면서 올스타 투표 1위를 차지하고 신인상까지 수상하자, 그의 이름을 내건 휠라의 농구화 ‘그랜트힐1(the 95)’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음 해 또 한번 올스타 투표 1위에 오른 힐이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미국 국가대표로서 금메달까지 획득하자, 그의 두 번째 시그니처 슈즈 ‘그랜트힐2(the 96)’는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랜트 힐의 활약 속에 농구 시장에 이름을 알린 휠라는 농구화뿐 아니라 관련 스트리트 패션 아이템도 전개하면서 나스(Nas), 넬리(Nelly), 스눕독(Snoop Dogg) 등 힙합 아티스트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끌어올 수 있었다.

특히 투팍(Tupac)은 앨범 ‘올 아이즈 온 미(All Eyez On Me)’의 재킷 사진 촬영 시 ‘그랜트힐2’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했을 정도.

그랜트 힐 시리즈에 이어 톱니 모양의 밑창이 돋보이는 두툼한 디자인의 ‘디스럽터Disruptor’를 내놓으며 인기몰이에 나선 휠라는, 하지만 1999-2000 시즌 그랜트 힐이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국민적 스타의 부상 소식에 팬들은 물론 농구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는데, 후배 선수의 비극에 분개한 NBA 레전드 찰스 바클리(Charles Barkley)가 “힐이 발목 부상을 당한 건 휠라의 쓰레기 같은 신발 때문”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휠라의 브랜드 이미지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후 급격한 하락세에 빠져든 휠라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랬던 휠라가 전환점을 맞은 건 2007년 ‘휠라 코리아’에 총 지휘권이 넘어가면서부터.

1991년 설립되어 꾸준히 성장하고 있던 휠라의 한국 지사, 휠라 코리아는 이탈리아 본사가 흔들리는 위기에 직접 나섰다.

2003년 우선 휠라 관계자 여러 명과 지주회사를 통해 휠라를 공동 인수한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대표(현 회장)는 이후 2007년 전세계 휠라 브랜드의 사업권과 상표권까지 모두 가져오는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휠라의 재도약을 준비했다.

왼쪽부터, 그랜트 힐의 올림픽 출전을 기념해 휠라가 제작한 1996년 광고 캠페인, 앨범 재킷 사진 속 휠라를 착용한 투팍
그랜트 힐의 올림픽 출전을 기념해 휠라가 제작한 1996년 광고 캠페인(왼쪽), 앨범 재킷 사진 속 휠라를 착용한 투팍.

전권을 쥔 휠라 코리아, 다시 성장세로 돌려놓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직 재정비에 팔을 걷어붙인 휠라는 사업 안정성을 되찾아가는 한편 2011년 ‘아쿠쉬네트(Acushnet)’를 인수하는 공격적 경영을 감행했다.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쿠쉬네트 산하 ‘타이틀리스트(Titleist), ‘풋조이(Footjoy)’ 등 골프 관련 유명 브랜드들을 흡수하면서 업계의 신뢰를 빠르게 회복한 휠라는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상품 기획에 돌입했다.

북미지역 책임자로 돌아온 휠라의 전 글로벌 CEO 존 엡스타인(Jon Epstein)에게 휠라 브랜드를 패셔너블하게 리뉴얼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무엇보다 먼저 휠라의 역사와 시대별 대표 아이템들을 되짚어본 그는 2013년 ‘그랜트 힐2’의 재발매를 결정했고, 이는 눈부신 성과로 이어졌다.

휠라의 클래식 감성을 어필하며 젊은 세대에 다가가는데 성공한 휠라는 유물 발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디스럽터2’는 투박한 디자인의 스포츠 슈즈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며 특수를 누렸고, 이에 고무된 휠라는 브랜드의 얼굴이었던 테니스 라인도 부활시키면서 화이트 스니커즈 ‘코트 디럭스(Court Deluxe)’로 학생층의 인기까지 쓸어 모았다.

이어 무너진 명성을 재건한 휠라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는데, 바로 패션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2017년 봄 시즌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의 패션쇼 무대에 올라 스타일리쉬하게 재탄생한 휠라는 곧 켄달 제너(Kendall Jenner), 리아나(Rihanna) 등 셀럽들에게 선택받는 글로벌 ‘핫 브랜드’로 떠올랐다.

이후 계속적으로 색다른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하며 패션리더들을 공략한 휠라.

2018년 가을 시즌엔 명품브랜드 ‘펜디(Fendi)’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은 휠라는 펜디의 이니셜 ‘F’를 휠라의 ‘F’로고로 대체해주고, 슈즈와 백은 물론 점퍼와 모피 아우터 위에서까지 존재감을 빛내며 재미있고 감각적인 컬렉션을 함께 완성했다.

자신감을 얻은 휠라는 2019년 봄 시즌 밀라노에서 단독 패션쇼를 꾸미면서 트렌디한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켜 프리미엄 라인 ‘휠라 피오르드(Fila Fjord)’를 런칭하며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이어갔다.

휠라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된 ‘펜디 매니아’ 컬렉션 광고 캠페인
휠라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된 ‘펜디 매니아’ 컬렉션 광고 캠페인

고향 이탈리아를 떠나 한국 기업으로 새 출발하게 된 휠라.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어필하며 인기를 회복한 휠라는 이를 바탕으로 야구, 배구, 골프 등 여러 종목에서 스폰서쉽도 진행하며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자리도 되찾은 모습이다.

휠라가 이렇듯 재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브랜드의 오랜 전통과 가치를 외면하지 않고 세상에 다시 꺼내 보였기 때문.

그래서인지 휠라는 빙상과 썰매 종목 등 겨울 스포츠 유니폼도 꾸준히 제작, 후원하며 고향 알프스 산맥 기슭에 내려진 뿌리를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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