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통신] 인도네시아 뉴노멀 시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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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통신] 인도네시아 뉴노멀 시대의 시작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 승인 2020.06.1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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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확진자 줄지 않았지만 경제활동 재가동 시작
6월8일부터 사실상 사회적 규제조치 완화
인도네시아정부, 코로나와 공존하며 침체 탈출 노력 애써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오피니언뉴스=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코로나 사태로 인해 두 달 넘게 정지되어 있던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지난 6월 8일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딱히 코로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자카르타가 준봉쇄에 가까운 대규모 사회적 규제조치(PSBB)를 처음 시행한 지난 4월 10일 당시 전체 코로나 누적 확진자는 3512명, 당일 신규 확진자는 219명이었다. 두 달이 지난 6월 8일 누적 확진자는 열 배에 가까운 3만2033명으로 늘어났고 신규 확진자도 847명이나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6일엔 역대 최대치인 993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등 누가 봐도 인도네시아의 코로나는 폭발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자카르타 주정부는 그간의 PSBB의 결과로 역내 감염확산세가 어느 정도 통제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자카르타의 신규 확진자들이 줄어들고 있지만, 5월 중순 이후 동부자바, 6월엔 발리에서는 신규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예정된 봉쇄조치 마지막 날인 6월 4일 아니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는 예상과 달리 PSBB의 무기한 연장을 발표했지만, 6월 한 달 간을 ‘PSBB 과도기’로 삼는다며 사실상 규제완화 수순을 밟고 있다. 이제 정부도 개인도 경제활동을 막아 놓은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당장 지난 6월 5일부터 집단종교행사가 허용돼 이날 정오에 열리는 '숄랏줌앗(Sholat Jum’at)' 이슬람 기도행사로 자카르타 소재 모든 모스크들마다 열성적인 무슬림들로 다시 가득찼다. 물론 방역 프로토콜에 따라 예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을 수는 없었다. 이어 6월 8일부터 재택근무시키던 기업들이 직원들을 사무실로 출근시키면서 도심 교통정체가 재현됐고, 떨어진 건물마다 가게, 식당들이 문을 열었다. 15일부터는 쇼핑몰과 입점 업체들이 영업을 재개한다.

인도네시아는 바야흐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말한 ‘바이러스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뉴노멀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뉴노멀이란 우리나라의 생활방역 개념과 유사하다.

하지만 각급 학교들의 등교수업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모든 학교들의 학사일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7월에 새 학년을 맞고서도 여전히 원격수업이 계속되며 일각에서는 교육문화부가 12월 등교를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지난 6월 5일 발표된 관련 주지사령은 공공시설이나 교통수단 사용자를 최대 수용인원의 50%로 제한하고 방문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근로활동에는 개인마다 1m이상 간격을 유지하고, 근무지에 복귀할때는 체온검사를 반드시 하고, 자가격리 중인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를 금지하는 등 12쪽에 걸쳐 세세한 프로토콜을 담았다.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재개된 활동 지침은 다시 취소되고 기존의 PSBB로 돌아간다는 전제를 달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뉴노멀 시대’는 다분히 최근 미국과 일본, 유럽의 코로나 규제 완화 조치에 고무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마도 영원히 바뀌어 버린 예전의 일상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듯하다.

남부 자카르타 소재 한인교회인 늘푸른교회는 아직도 집회예배가 진행되던 지난 2월 당시 이미 악수 등 접촉을 금지했고 주일예배 참석자 250여 명중 마스크를 쓴 사람이 4~5명에 불과했다. 그 시기에 인도네시아인들 중엔 마스크 쓴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4개월여가 지난 6월 아파트 로비나 식료품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개인간 거리를 지키려 노력한다. 때로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북부 자카르타 아르타가딩 몰의 디아몬 슈퍼마켓 계산대. 슈퍼 직원들은 투명 얼굴 가리개까지 쓰고 있다. 사진= 배동선 통신원
인도네시아 북부 자카르타 아르타가딩 몰의 디아몬 슈퍼마켓 계산대. 슈퍼 직원들은 투명 얼굴 가리개까지 쓰고 있다. 사진= 배동선 통신원

물론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미국과 유럽의 거래선들이 발주를 끊은 한국계 봉제공장들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처지다. 그나마 재무구조가 탄탄한 몇몇 현지 대기업들, 온라인 판매망을 갖춘 기업들, 특정 필요에 맞춰 신속한 생산품 전환이 가능한 기업들만이 이 시기를 간신히 살아남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미용산업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마르타 틸라르(Martha Tilaar)그룹의 마르티나 베르토(PT. Martina Berto)는 화장품 생산라인을 손세정제, 핸드젤, 소독제 등으로 전환하는 생존전략으로 올해 1분기 손실을 232억 루피아(약 20억 7천만원)로 줄일 수 있었다. 작년 같은기간에는 8594억 루피아(약 735억 8천만원)의 수익을 올렸던 기업이지만 말이다.

상장업체인 중견 섬유업체 팬브로더스(PT. Pan Brothers, Tbk)는 정부와 소매점들의 오더를 받아 지난 4월 마스크 2천만 장과 방호복 10만 장을 생산했고 국영 항공기제작사인 디르간따라 인도네시아(PT. Dirgantara Indonesia)는 음압병실 등 특별 의료기체에 사용되는 통풍기 프로토타입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6월 4일자 '자카르타포스트'는 4월 6일부터 24일 사이 국제노동기구(ILO)가 인도네시아 전국 571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5%가 영업을 중단했고 이중 3%는 완전히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그 이후 한달이 더 넘도록 수입원이 막힌 상태로 라마단과 이둘피트리 명절까지 보낸 중소기업들 중엔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분명 3%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타가딩 몰 4층 경찰청 차량등록증 및 운전면허증 갱신 출장사무소. 6월8일 두 달 만에 문을 연 이곳에 민원인들이 좌석을 한 자리씩 띄워 앉아 있다. 사진= 배동선 통신원
아르타가딩 몰 4층 경찰청 차량등록증 및 운전면허증 갱신 출장사무소. 6월8일 두 달 만에 문을 연 이곳에 민원인들이 좌석을 한 자리씩 띄워 앉아 있다. 사진= 배동선 통신원

인도네시아의 뉴노멀 시대란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와 위태롭게 공존하면서 경제침체의 나락에서 최선을 다해 탈출하려 노력하는 시대를 말하는 듯하다. 사실 평화공존과 위기탈출은 어떤 민족이든 외세와 싸워 온 오랜 역사를 통해 체화한 운명적 특기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양해각서(MOU)나 휴전협정에 서명했던 '지성적 상대'를 대할 때의 이야기이지 태생적으로 인류를 공격할 뿐인 바이러스를 상대로 한다면 전혀 얘기가 다르다.

코로나에 걸려도 검사와 진료를 책임져 주는 한국 정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는 인도네시아 동포사회는 PSBB 전환기의 뉴노멀을 맞아 인도네시아 시민들과 함께 더욱 철저한 개인 방역과 좀 더 두꺼운 마스크만으로 생존을 기약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은 1995년 당시 (주)한화 무역부문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입성했다. 2016년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소설부문 수상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인도네시아 통신원을 지냈고, 재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 공동 총괄편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가 있고, 한국외대 양승윤 명예교수와 함께 <막스 하벨라르>를 공동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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