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영의 통상인사이트] 미·중 무역분쟁, ‘가치·체제·이념 갈등’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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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의 통상인사이트] 미·중 무역분쟁, ‘가치·체제·이념 갈등’으로 확대
  •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
  • 승인 2020.06.1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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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국제통상학).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국제통상학).

[오피니언뉴스=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 지난해 말 미·중 ‘관세 전쟁’을 일단락시킨 ‘1단계 무역합의’가 체결되면서 최소한 올해 미국 대선 전까지 미·중 간 무역 분쟁은 더 이상 심화 내지 확산되지 않고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를 표면적으로 해결하는 선에서 정치적으로 봉합되는 듯하였다.

사실 1단계 합의의 내용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가장 큰 불만사항이었던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산업보조금과 국영기업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어려운 문제를 들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최소한 미 대선 전까지는 한동안 1단계 합의를 통해 중국이 약속한 내용의 이행을 점검하는 ‘관리 모드’로 돌입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올해 초 유럽연합, 일본과 손잡고 다자적 차원에서 중국의 산업보조금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밝혔다. 시기적으로도 매우 예민한 미·중 간 ‘1단계 무역합의’의 서명일 하루 전에 말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이후 오랜 기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WTO 보조금 규범의 개혁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국제시장과 타국의 경쟁력을 왜곡시키는 보조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인데, 다름 아닌 미국에 인해 WTO 규범의 이행을 보장하는 분쟁해결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예측컨대, WTO 상소기구의 마비사태로 인해 촉발된 WTO 개혁 논의에 힘입어 미국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보조금 규범의 개혁 작업에 추동력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사실 심상치 않다. 앞으로 미·중 갈등이 단순히 ‘관세 전쟁’, ‘기술 패권 경쟁’, ‘환율 전쟁’을 넘어서 ‘체제 간 경쟁’, ‘가치와 이념의 갈등’으로 한 차례 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통상체제에서 국영기업 문제 또는 산업보조금 관련 현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때문인데,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중국을 비롯한 일부 회원국들이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국영기업’을 통해 정부가 보조금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면서 WTO 규범의 허점을 이용하여 국내산업을 육성하고 수출경쟁력을 확보해왔다고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장경제체제를 지닌 국가들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을 거치며 국내산업 육성을 위한 직·간접적 형태의 보조금 지원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반면, 일부 비시장경제체제를 지닌 국가들은 정부주도의 국가발전계획에 따라 국영기업을 통한 간접보조금을 전략적 산업에 지원하며 다자무역체제를 기만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통상 현안으로서 국영기업 문제는 사실상 체제 간 대립의 ‘지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중무역분쟁이 재점화된 가운데 미국의 행보가 심상찮다. 무역분쟁을 넘어 가치, 체제, 이념 갈등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미중무역분쟁이 재점화된 가운데 미국의 행보가 심상찮다. 무역분쟁을 넘어 가치, 체제, 이념 갈등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미 백악관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을 발표하며 중국이 그동안 각종 경제적 수단을 이용하여 미국의 주요 핵심산업에 접근해온 방식에 대하여 전략적 측면에서 평가하고 공식적 입장과 대응계획을 밝혔다.

궁극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국수주의적 일당독재 체제, 국가주도의 경제체제, 국가의 목적 추구를 위한 과학기술의 이용과 중국공산당의 목적 추구를 위한 인권 유린 등에 대하여 모두 미국의 가치(values)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하여 중국이 자국의 이해관계와 국가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국제규범과 국제표준을 중국 체제에 맞게 개편하는 목적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미·중 무역 분쟁이 서로 다른 체제, 규범, 가치 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는 그동안 미국이 추진해온 다양한 조치들이 일관적인 정책 방향성을 따르는 것이었음을 국제사회에 설명하고 향후 시행할 규제 조치들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 것이라는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직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을 통해 미국은 앞으로 중국과의 가치·체제·이념을 둘러싼 싸움에서 진영을 구축하기 위해 주변국들을 압박하고 미국이 표방하는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지 않을 경우에는 배제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내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규범과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표방해 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 자명할 것으로 보인다. 

● 이효영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국제통상 전공으로 국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을 거쳐 현재 국립외교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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