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화두가 된 기본소득, 근본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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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화두가 된 기본소득, 근본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20.06.10 11: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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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필자가 2018년 ‘기업윤리와 지속가능경영’ 수업에서 기본소득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학생들은 이렇게 빨리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국내 경제의 핵심 이슈로 부각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해외에서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의 발전으로 인해 기본소득에 의존하는 인간이 되느냐, 창의적 사고력으로 생존하는 인간이 되느냐가 경제, 사회 분야의 주요 의제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을 언급한 후 이재명 경기지사는 해당 이슈를 야당에 뺏겨서는 안 된다며 이는 복지가 아닌 경제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기본소득은 경제 활성화라는 우파적 관점이 아닌 불평등 완화라는 진보적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며 또 다른 반론을 이재명 지사에게 제기, 쟁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화두로 등장했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도 몇 배의 생산성을 창출하는 상황에 접어들었는데 문제는 실직자의 증가로 기술 발전으로 생산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즉, 유럽에서 제기된 기본소득은 경제 전체의 총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도입해야 한다는 측면이 컸다. 

기본소득에 관한 좌우의 생각 

기본소득이 거론된 시점부터 미국 및 유럽 학계에서도 초기에 이를 좌파의 정책으로 볼 것이냐, 우파의 정책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있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은 국가가 누군가의 소득을 강제로 뜯어내 무사안일에 빠진 다른 이를 구제하는 건 정부의 강압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은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이 금기의 틀을 깬 건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의 우상인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그가 직접적으로 낸 아이디어가 기본소득과 동일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꺼낸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역시 빈곤층의 소비를 유도해 경제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도모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이 기본소득을 언급하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한 논제는 아니다.

진보주의자들은 기본소득을 복지의 개념에서 접근하기에 이재명 지사가 경제정책으로 기본소득을 언급한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진보주의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5200만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기 위해서 연 20조원이 훨씬 넘는 재정을 어디에서 마련하고,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방향성을 좌우의 이념으로 구분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접근이다. 일단, 현대사회에서 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국가가 아직 없기에 그들이 말한 것처럼 보편적 복지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소비를 활성화시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단이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결과가 불확실하기에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래픽=연합뉴스
기본소득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이 언급하면서 정치권의 핫이슈로 부상했다. 그래픽=연합뉴스

수동적인 기본소득 말고 능동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때 

AI로 대변되는 혁신경제 시대에 기본소득을 언급하며 젊은 세대는 앞으로 기계에 일자리를 뺏길 가능성이 크기에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고려하라고 강조하는 것 자체가 과연 미래 리더의 비전 또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참고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2013년 내부 연구를 통해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만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전망한 바 있다.

해외 선진국은 기본소득 대신 종합적 판단능력을 심화할 수 있는 창의적·비판적 사고력을 중시하는 교육과 일자리 창출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정치인들은 지식서비스 일자리 창출과 교육 투자 대신 기본소득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정책으로 봐도 경쟁력 있는 정책이 아니며 복지정책으로 봐도 국민들에게 긍정이나 희망을 주는 정책은 더욱 아니다. 

옥스퍼드대와 스탠퍼드대는 교내 연구를 통해 ▲창의적 사고 ▲비판적 사고 ▲융합적 사고를 심화하는 교육으로 충분히 AI시대에도 경쟁력 있는 일자리 창출과 유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계에 의해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되고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제 하에 수립되는 기본소득이 향후 대선의 시대정신이나 화두가 되는 것만큼 안타까운 미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정부 예산을 기본소득에 투입하기 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제도와 정책에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전적으로 복지 또는 경제정책에만 의존한 국가가 지속성장하고 국민들의 의식이 향상된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없다. 정부의 역할은 수동적인 기본소득이 아닌, 능동적인 경제정책과 국민에게 희망이 담긴 복지정책 제안에 있다.

실리콘밸리 등 혁신기업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화두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 등 다수의 학자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기본소득의 신설이 보편적인 다수의 복지제도 확대를 오히려 위축시킬 수 있고 국민들의 입장을 돈으로 거래하고 충족하려는 시장중심 사회를 극도로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에 의한 일자리 감소를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혁신을 통한 미지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에 관해 더욱 골몰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미래 리더의 자세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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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진 2020-06-11 08:37:26
정말 잘읽었습니다. 지금의 기본소득 논의에 대해 정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더욱이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주셔서 너무 신박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