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녕! 싸이월드 그리고 자탄풍 '너에게 난, 나에게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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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녕! 싸이월드 그리고 자탄풍 '너에게 난, 나에게 넌'
  • 김상혁 기자
  • 승인 2020.06.05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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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제기된 싸이월드 폐업 소문
현재 사업자 등록 말소, 전제완 대표는 "폐업 없다"
'1인1홈피' 인기, 마크 저커버그도 싸이월드 배우러 방한
10년 못간 전성기, 장점이 발목 잡았다

[오피니언뉴스=김상혁 기자] 지금의 20대에서 50대까지 대한민국 인터넷의 발전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온 세대들이 추억을 차곡차곡 담았던 싸이월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조짐이다.

이웃사촌보다 더 가까운 '일촌'의 집(미니홈피)으로 파도를 타고 들어가고, 현재의 기프티콘처럼 '도토리'를 선물로 보내고,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중2병' 허세가 점철된 글과 사진이 빽빽한 추억의 노트가 닫히는 것이다.

5일 IT업계에 따르면 싸이월드는 현재 사업자 등록을 말소당한 상황이다. 다만 처음에 알려진 것처럼 사업자가 신고한 폐업이 아니고, 세급체납으로 관할 세무서가 직권 폐업시켰다.

사이트를 닫을 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폐지 30일 전에 이용자에게 알리고, 폐지 예정일 15일 전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도 폐업 신청을 받은 상황이 아니다. 

또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도 "폐업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산하기관을 통해 현장조사 후 후속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텅 빈 채 잠겨 있는 송파구 방이동 싸이월드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텅 빈 채 잠겨 있는 서울 송파구 싸이월드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 꾸준하게 제기된 '폐업썰', 이번에는?

전 대표는 사업 지속 의중을 밝혔지만 업계에선 싸이월드가 향후 서비스를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미 사무실은 비어있는 상황이고 직원들 임금도 수개월 체불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범람하는 SNS 홍수 속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문제는 싸이월드가 완전히 폐업하면 이용자들의 추억이 담긴 글과 사진들이 고스란히 지워진다는 것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사업자가 폐업하면 개인정보인 데이터를 즉시 삭제해야한다.

사실 '싸이월드 폐지 떡밥'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꾸준히 돌던 이야기다. 특히 도메인 만료 기한이었던 지난해 10월 갑자기 접속 불가 상태로 바뀌어 많은 네티즌들이 식겁했던 사건이 있었다. 몇만원 정도만 내면 되는 도메인 갱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백업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청와대 청원도 여러건 올라왔다. 다행히 싸이월드는 도메인 주소 만료 기한을 1년 연장했고, 과기정통부도 자료들이 IDC(인터넷데이터센터)에 보관되어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백업을 하려고 해도 로그인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먹통이 되거나, ID·PW 찾기도 불가능해 접속 자체가 안돼 백업도 못한 네티즌들이 상당했다. 이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도 '로그인 성공'이 마치 무용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따끔씩 올라온다.

싸이월드 허세글 시리즈 중 최대 히트작(?) 중 하나인 '더 이상은 naver...'
싸이월드 허세글 시리즈 중 최대 히트작(?) 중 하나인 '더 이상은 naver...'

◆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배우러 왔던 싸이월드

싸이월드는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SNS였다. 최전성기 가입자는 3000만명이 넘었고, 월 접속자가 2000만명에 달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현재 인기 SNS의 국내 월평균 접속자수가 1000만명 안팎인 걸 감안하면 당시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모두 싸이월드 미니홈피 한개씩은 가지고 있던 셈이다.

사실 싸이월드가 시작하자마자 잘 된 건 아니었다. 싸이월드는 1999년 카이스트 출신 이동형, 형용준, 이정태 등 6명이 만든 창업동아리에서 시작됐다.

1999년 오픈 당시 인지도가 없어 문을 열자마자 닫아야 할 처지였다. 당시는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같은 공동 커뮤니티가 인기였고 러브헌트, 스카이러브 같은 채팅 사이트가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싸이월드는 1인 미디어였고, 채팅 기능은 없었다.

그런데 2001년 프리챌이 '유료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금 살펴보면 '인 앱 결제' 혹은 '부분 유료화'와 비슷한 평범한 시스템이지만 그때는 '인터넷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파다했던 시절이다. 때문에 인터넷에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들 난민이 모여든 곳이 바로 싸이월드였다.

동시에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의 본격적인 보급 또한 싸이월드 미니홈피 인기에 한몫했다. 나만의 사진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꾸미고 일촌들에게 나를 자랑한다는 것은 현재 SNS의 주 이용 목적과 다름 없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도 싸이월드를 배우러 2000년대 초반 방한했던 것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덕분에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밈'처럼 유행하는 인터넷 유명 '짤'들이 대거 탄생하기도 했다. '더이상은 naver',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내 총끝은 빛나고 방아쇠는 심판을 내린다' 등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회자되고 있다.

싸이월드 내 화폐인 '도토리'는 사이버머니를 넘어 현찰처럼 사용되며 일종의 암호화폐처럼 사용됐다.
싸이월드 내 화폐인 '도토리'는 사이버머니를 넘어 현찰처럼, 일종의 암호화폐처럼 사용됐다.

◆ 싸이월드, 알고 보니 대단한 선구자였네

가만히 되짚어보면 싸이월드는 현재 유행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먼저 내놓은 선구자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당시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미니미(아바타)를 꾸미거나 음악을 사려면 일종의 사이버머니인 '도토리'를 사야했다. 개당 100원쯤 하는 도토리는 싸이월드 속 화폐였다. 그리고 동시에 마치 실물 화폐처럼 쓰였다.

도토리는 단순히 콘텐츠를 사는 화폐 수준이 아니었다. 친구들끼리 생일 선물로 도토리를 주기도 했으며, 중고 물품을 사고 팔때도 현금 대신 도토리로 '결제'하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들끼리의 친분을 상징하는 도구처럼 여겨진 도토리 때문에 영화 '상사부일체'에서는 계두식(정준호) 선생이 학생들에게 진짜 도토리를 나눠주며 "우리 1촌이다"라며 친근하게 구는 장면도 있었다.

도토리에 관한 특이한 에피소드들도 전해진다. 조카들이 도토리로 이야기하는 걸 들은 삼촌이 진짜 도토리를 잔뜩 주워 보내줬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려온다. 세뱃돈을 도토리로 받았다고 자랑하는 네티즌도 가끔 보였다.

이처럼 도토리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1일 매출 3억원, 연매출 1000억원을 넘기도 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은 지금의 음원 사이트 무제한 스트리밍과 똑같은 시스템이다. 당시 MP3를 구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소리바다나 당나귀, 프루나 등 P2P였다. 공짜긴 하지만(물론 저작권법에 걸린다) 음질을 장담할 수 없고 인기 없는 노래는 찾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싸이월드 노래는 달랐다. 곡당 도토리 5개로 당시 MP3 가격과 비슷하면서도(물론 지금보다 단가는 비싼 편이다), 내 마음대로 선곡하고 순서도 배치할 수 있었다. 감질나는 '미리듣기' 없이 하루종일 틀어놓을 수도 있었다. 또 내가 산 음악이 아니라도 일촌 미니홈피 노래도 원하는만큼 들을 수 있었다.

미니홈피의 시스템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도 시대를 앞서나갔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촌평을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간단하게 표현하고 설정할 수 있었고(동시에 나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끔 했다), 이를 통해 일촌 이동도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방명록, 게시판, 사진첩, 프로필, 쥬크박스 등 디렉토리 분류도 상세화 돼 한눈에 알아보기 편했으며, 각 디렉토리를 본인이 직접 편집할 수 있었다. 당시 전문가 영역으로 여겨진 홈페이지 제작 및 관리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간단한 UI(user interface, 사용자와 컴퓨터의 상호작용)를 구현했던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참고했던 것도 이 부분으로 알려져있다.

그 시절 10~20대들이 쓰던 메신저는 MSN, 드림위즈 지니, 버디버디 등 다양했다. 네이트온 역시 가장 인기있던 메신저였는데, 네이트온 연동을 통해 싸이월드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지금의 싸이월드 로그인 화면. 올바른 ID, PW를 입력해도 로그인이 안되는 상황이다.
지금의 싸이월드 로그인 화면. 올바른 ID, PW를 입력해도 로그인이 안되는 상황이다.

◆ 10년이 채 안 돼 장점이 단점으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엄청난 위세를 자랑했던 싸이월드지만 전성기는 10년을 채우지 못했다. 디지털 흐름을 놓쳐버리자 싸이월드의 각종 장점들이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단점으로 바뀌었기 떄문이다.

앞서 네이트온과의 연동도 싸이월드의 인기 요인이라고 했는데, 이는 '망국(亡國)의 조짐'이기도 했다. 네이트온과의 연결 자체는 호평이었다. 하지만 싸이월드와 포탈사이트 네이트의 통합이 악재였다. 이로 인해 로그인 ID와 PW에 혼동을 주게 된 것이다. 아이디로 로그인하던 게 이메일로도 가능해졌는데, 로그인 후 서비스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지 않아 혼란을 느낀 사람이 많았던 정책이었다.

디지털·휴대폰 카메라의 보급이 싸이월드의 '흥(興)'을 이끌었다면 화질의 발전이 '망(亡)'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 카메라의 화질은 그저 그런 수준이라 해상도가 낮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도 감당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화질이 향상되고 해상도도 커졌지만 미니홈피는 그대로였다. 이용자들의 눈은 높아질대로 높아졌지만 싸이월드의 수준은 별다른 발전이 없던 것이었다. 결국 미니홈피 이용자들은 사진을 훨씬 크고 자세하게 업로드해 볼 수 있던 블로그로 거주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은 아이폰의 등장으로 디지털 환경이 모바일로 본격적으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싸이월드는 PC에 집중하는 패착을 저지르기도 했다. 사진첩이 대표적이다.

싸이월드 사진첩에서 자동으로 사진을 넘겨주는 기능 역시 인기 요인이었지만, 문제는 이것이 플래시 기반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PC가 대세던 시절 플래시는 편리하면서도 널리 쓰이는 방식이었지만 모바일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사진첩이 미니홈피의 가장 인기 콘텐츠였기 때문에 싸이월드는 '모바일 시대'라는 전장을 차포 떼고 임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실명 기반의 일촌 시스템 역시 문제였다. 2000년대 초창기는 온라인 상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명확하지 않던 시기였다. 때문에 일촌만 맺으면 이름, 전화번호, 주소, 학교, 직장, 취미, 특징 등 각종 신상정보를 알아내기가 어렵지 않았다. 일촌 아니라도 '파도타기'를 통하면 정보 공개 설정 여부에 따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건이 터지면 네티즌들의 '신상털기'가 시작된다. 이 '온라인 신상털기' 역시 싸이월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실명제를 고집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로 인해 동명이인이 엉뚱하게 신상털기를 당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기자 본인의 경우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한 한 연예인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심지어 나이는 다르다) 미니홈피 테러를 당한 적도 있다.

◆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파도타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싸이월드는 심심하면 한번씩 뒤적이는 어릴적 일기장과 다름 없다. 추억의 책장 한 곳을 채운 싸이월드가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문득 2001년 발매된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후렴구가 떠오른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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