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딴 세상 사람의 이 세상 이야기...배명훈 著 '타워' , ‘SF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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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딴 세상 사람의 이 세상 이야기...배명훈 著 '타워' , ‘SF 작가입니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0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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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SF 공모전 당선 후 활동중인 배명훈의 ‘SF 작가입니다’와 연작소설집 ‘타워’ 리뷰
2009년 첫 소설집 『타워』로 한국 SF의 새로운 가능성 알리며 평단ㆍ대중의 고른 지지 받아
'타워'...‘잭과 콩나무'에서 빌어온 674층 마천루 배경으로 딴 세상이지만 이 세상을 이야기해
'SF 작가입니다'...자신의 글쓰기와 작업 현장 근처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들 써내려간 에세이집
사회과학을 전공한 SF 소설가 배명훈 작가. 사진=연합뉴스
사회과학을 전공한 SF 소설가 배명훈 작가.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어느 나라가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땅에다 국경을 긋고 다른 나라와 이웃한 그런 나라가 아니다. 높은 건물에 세워진 국가다. 이름은 ‘빈스토크(beanstalk)’. ‘잭과 콩나무 (Jack and the Beanstalk)’에서 하늘로 치솟는 콩 줄기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빈스토크’는 50만 명이 사는 674층 건물이다. 지상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아도 ‘빈스토크’는 대외적으로 승인된 주권을 가진 엄연한 ‘독립국가’이다.

물론 허구의 나라이다. 이 나라를 만든 사람은 소설가 배명훈. 그러니까 ‘빈스토크’는 그가 쓴 작품에서 창조된 가상의 국가인 것이다. 배명훈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 SF 작가.

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는 ’배명훈‘이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출간했다. ‘SF 작가입니다‘. 2005년에 데뷔하여 2009년 첫 소설집 ’타워‘로 한국 SF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렸다는 평을 듣는 그는,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SF작가입니다'. 문학과 지성사 펴냄.
'SF작가입니다'. 문학과 지성사 펴냄.

’SF 작가입니다‘는 그동안 가상의 세계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 삶의 진실을 포착해온 배명훈이 ‘SF 작가’로서 자신의 삶과 글쓰기, 그리고 작업 현장 근처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써 내려간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배명훈 작가가 풀어놓는 그의 개인적인 체험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구체적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의 작가 생활 15년을 돌아보며 “한국에서 SF를 쓰며 전업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여러 층위의 고민과 문제의식이 책의 곳곳에 깊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배명훈이 SF를 쓰는 작가로 살아오며 독자들에게 숱하게 들었던 질문들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다. “SF란 무엇인가” “SF 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같은 추상적인 질문들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로 가공되어 그려진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나는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SF보다는, SF 작가의 구체적인 삶과 작업 현장 근처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배명훈의 전공이었다. 그는 대학에서는 국제정치학을, 대학원에서는 전쟁사를 공부했는데 이것이 SF 창작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책 전체에 걸쳐 풀어놓는다. 처음에 나는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이 SF와 어떻게 매칭이 될까 하는 의문이었는데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따로 읽으며 이해되기 시작했다. 결국, SF는 사람과 그들이 사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배명훈의 첫 작품집인 ‘타워’도 이번에 함께 읽었다. 2009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절판되어 소문만 무성한 책이었다.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고. 난 전설로만 접하다 이번에 복간되어서 읽게 되었다.

‘타워’에는 이 글 첫머리에 소개한 ‘빈스토크’가 배경인 단편 6편과 이와 관련한 짧은 글 4편이 부록으로 실렸다. 모든 이야기에는 비유와 은유가 폭넓게 사용되었다.

‘빈스토크’라는 이름은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에서 차용되었고, 초고층 건물이라는 기본 설정은 ‘바벨탑’이 연상되었다. 개별 이야기로 들어가면 더욱 은유적이다. ‘동원박사 세 사람’은 예수 탄생을 축복했던 ‘동방박사’ 이야기를 변용했고, ‘광장의 아미타불’은 중생을 제도하는 아미타불의 설정을 비틀었다. 다른 단편들도 은유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편집 '타워'.문학과 지성사 펴냄.
연작소설집 '타워'.문학과 지성사 펴냄.

‘타워’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딴 세상 이야기이지만 이 세상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여섯 편의 연작소설은 모두 인구 5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고층 초대형 빌딩, 그 자체로 거대 도시이며 엄연한 주권국가인 ‘빈스토크beanstalk’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읽을수록 ‘우리나라’가 떠오른 것이다.

단편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를 읽고는 더욱 그랬다. ‘빈스토크’에 용병으로 취업한 어느 사내가 적국 인근인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실종된다. 하지만 외국인 신분인 사내를 ‘빈스토크’가 외면한다. 민감한 국제 역학 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빈스토크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국가가 손을 뗐어요. 그 사람은 빈스토크 시민이 아니라면서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어요. 빈스토크 22층에는 네모난 국경면이 펼쳐져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직육면체 상자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요. (‘타워’의 단편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본문 중)

국가가 나서지 않으니 시민들이 나선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편지가 또 다른 편지를 낳고 그 상황은 인터넷을 타고 점점 확대된다. 시민들의 연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빈스토크’ 인구보다 많은 2,774,867명이 타클라마칸 위성사진을 함께 뒤지고, 실종자를 찾고, 구조한다. 연대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진다.

1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문득 떠올랐다. 그 모든 걸 배명훈은 오래전에 예측하였던 걸까. 그는 에세이에서 놀라운 말을 한다.

나는 가끔 예언을 한다. 종종 언급되는 예언은 ‘타워’에 실린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라는 단편소설의 내용이다. 사막에 추락한 조종사를 찾기 위해 그 일과 아무 관련도 없는 수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협력하는 장면인데, 비슷한 이야기가 현실 세계의 뉴스로 보도될 때마다 독자들 중 누군가가 이 소설을 떠올리고는 나에게 그 뉴스를 전하곤 한다. (‘SF 작가입니다’ 76쪽)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는 “SF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는데 우리 대부분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배명훈의 SF도 같은 맥락이다. 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세상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읽혔다. 그리고 작가의 경고도. 예언을 곧잘 하는 그의 말이라 두렵게 읽혔다.

이번에야말로 빈스토크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판을 막을 의인 열 명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는 위치에 몸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로 한 날. 그렇게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타워’의 단편 ‘샤리아에 부합하는’ 본문 중)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도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들이 답은커녕 질문 뒤에 숨으려고만 하는지도 모른다. 배명훈의 SF 속 세계는 딴 세상이지만 이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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