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동상이몽의 ‘일하는 국회’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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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동상이몽의 ‘일하는 국회’ 바로보기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5.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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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㉕: 공화제와 의회(1)
임기만료 앞둔 제20대 국회의 공과...의회주의의 관점에서 차분한 평가 필요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의 역사적 성과, 동물국회·국회보이콧 남발로 빛바래
국회가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독립성과 자율성, 시민배심·시민의회로 보완해야
제21대 국회의 여야, 주고 받기식 의정개혁으로 ‘국민위해 일하는 국회’ 만들어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15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제20대 국회가 곧 막을 내린다. 제20대 국회를 대표했던 두 국회의장 모두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할 정도로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이다.

그러나 ‘정치한류(政治韓流)’의 가능성을 엿보는 한국형 민주공화국 체제(‘정치한류(韓流)’의 가능성과 정당개혁의 과제)에서 국회에 대한 평가는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이어서는 안된다. 혹여나 지금까지 정치과정을 독과점해온 기성정치권이나 사회세력이 정략적 저의를 가지고 탈정치적 ‘정치혐오’를 선동하는 데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딱히 틀린 말이 아니더라도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식의 ‘정치부정’으로 귀결되는 것은 결국 국회를,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에 내맡겨버리고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민주공화체제에서 의회가 가지는 위상과 역할을 기준으로 차분히 평가하여 국회개혁의 계기로 삼는 진중한 자세가 요청된다.

국회 평가의 기준인 의회주의 원리

대의제 권력구조에 기초한 민주공화국 제1의 권력은 정부형태를 불문하고 의회이다. 의원내각제에선 국민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지는 대표기관은 의회가 유일하기 때문이고, 대통령제에서도 정부수반인 대통령은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집행하는 2차적 역할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국가권력 중 가장 먼저 국회(제3장)를 규정하고 뒤이어 정부(제4장)를 두는 이유이다. 또한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회도 주기적으로 교체해서 주권자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민주권주의를 대의제를 중심으로 실현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을 입법권을 가지는 의회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면 의회주의 혹은 의회민주주의가 된다. 의회주의는 국민대표기관인 의회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정책을 법률의 형식으로 제정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정부와 법원 등 다른 국가권력을 통제하는 원리로 정의될 수 있다.

이렇게 의회주의를 이해하게 될 때 국회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자연스럽게 정립된다. 첫째, 국민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의회의 구성이 필요하다. 둘째, 국민이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도록 공개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소수의 의견도 충분히 배려하는 토론을 충분히 거친 후 다수결로 국민을 위한 정책을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부나 법원의 법집행권한이 자의적으로 의회의 권한행사를 침탈할 수 없도록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한편 그러한 자율성이 부적절한 특권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대표로서의 공직윤리에 충실해야 한다. 넷째, 국민이 필요로 하고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법률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다른 국가권력의 인사나 예산 혹은 권한의 행사에 선출권이나 동의 및 승인권을 통해 관여하고 위법부당행위에 대한 질의·조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제20대 국회의 명암과 새 국회의 과제

의회주의의 다섯 가지 기준 가운데 제21대 국회의 화두가 될 '국회개혁' 차원에서 압축적으로 제20대 국회를 평가해 보자.

첫째, 국민대표성의 관점에서 선거법개정은 명암이 뚜렷하다. 제대로 부각되고 있지 못하지만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어서 보통민주주의를 강화한 점은 소홀히 평가할 수 없다. 비례대표제에 연동형을 일부 도입한 것은 결국은 위성정당꼼수를 막지 못해 역설적 효과를 낳았기 때문에 국민대표성을 강화하는 더 확실한 비례제개혁이 필요하다.

둘째, 이성적 토론을 거친 다수결이라는 의회주의의 본질적 가치에 관한한 부정적 평가가 압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제1야당에 의한 국회 보이콧이 무려 20차례 넘게 진행되면서 '국회부재'가 일상화되었다. 특히 제20대 국회 임기 마지막 해는 소위 ‘패스트트랙 대치사태’로 얼룩졌다. 국회선진화법제가 무력화되면서 동물국회가 재현되었다. 싸움질하느라 일은 안하는 국회라는 국회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상시국회’가 가능한 의정개혁이 요청된다.

셋째, 의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측면에서도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이다. 국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오로지 국회의 자정작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신뢰가 충분한 조건에서 구현될 수 있다. 그러나 제20대 국회에서 한 건의 의원징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5.18민주화운동 폄훼막말 등으로 징계 요구된 김순례, 이종명, 김진태 의원에 대한 징계건도 자동폐기되었다. 특수활동비 폐지 등 일부 성과가 없진 않지만 국민적 요구가 큰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스스로 못하면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서 통제할 수밖에 없다. 의원징계절차와 특권 내려놓기 개혁에 시민배심이나 시민의회 등 국민참여를 강화해야 한다.

한편 정작 국회의 자율권을 스스로 허무는 ‘정치의 형사사법화’가 심화된 점은 더욱 안타깝다. 동물국회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고육책으로 국회의사과정의 문제를 형사처벌로 다루게 하였는데, 육탄충돌과 그에 따른 무더기 고발·고소 및 수사·기소가 진행되면서 국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검찰이나 법원에 의사분쟁을 맡기려거든 차라리 공론화위원회나 시민의회에 맡겨서 민주공화제의 정신을 강화하는 것이 더 낫다.

넷째, 입법활동의 경우는 역대 국회에서 보여준 문제점이 지속되었다. 양적으로 보면 절대 건수에서 평균치를 넘어섰지만 폐기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법률반영비율도 낮은 수준이며, 이마저도 건수 늘리기가 상당부분 차지한다. 입법 발의건수만으로 의원활동을 평가하기보다 법률반영여부와 법률의 질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삼는 문화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대결정국으로 인하여 정작 시급하면서도 이견이 적은 비쟁점법안이 연계되다보니 입법생산성이 저하되는 구조적인 문제도 반복되었다. 무쟁점법안우선처리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권이 '입법 병목'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소수자 보호라는 의회주의의 가치를 반영한 제도로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의미가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의회주의의 본질적 기능인 입법활동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국정통제는 국정통제대로 강화하되 필요한 입법은 제때에 이루어지도록 개혁이 불가피하다.

다섯째, 국정통제의 차원에서는 명암이 모두 뚜렷하다. 무엇보다 제왕적 현상을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하여 파면시켰다. 주권자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농단세력을 단죄한 제20대 국회의 성과를 다른 잘못 때문에 폄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법농단과 관련하여 탄핵소추 등 국회의 통제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또한 국정통제의 일환인 인사청문제도가 인사견제를 넘어 인사봉쇄의 역효과를 낳는 역기능이 심화된 점도 문제다. 제20대 국회에서 보고서채택 자체를 거부한 사례가 전체 96건의 31%를 넘는 31건에 이를 정도로 빈발하였다. 야당이 의회의 국정통제권을 통해 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국정조사제도인데 그 활용도와 효과성이 낮은 점도 고질적이다. 정부의 자율권은 존중하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접근으로 청문제도와 국정조사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회동하며 '협치'를 다짐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회동하며 '협치'를 다짐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협치' 지향 국회개혁으로 의회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켜야

새 국회 전반기 원(院)구성을 둘러싸고 여야 원내대표가 모두 ‘일하는 국회’를 표방했다. 제20대 국회가 일도 안하는 국회였다는 국민의 평가를 의식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속내가 다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국회의 ‘일’에 대한 시각이 다른 동상이몽인 형국이다.

여당은 압도적 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국정을 주도하면서 의정의 효율성을 높여서 실적을 내고 싶어한다. 여당의 ‘일’은 한마디로 실적인 것이다. 반면 야당은 ‘야당심판’으로 나타난 총선의 의미를 받아들이면서도 국정통제라는 의회 본연의 기능을 살려서 정권의 독주와 실책을 막아내겠다는 의도다. 야당의 ‘일’은 한마디로 통제인 것이다.

그러나 주권자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두 일 다 잘하는 국회를 만들도록 국회를 개혁하면 된다. 여당이 원하는 일을 정략적으로 가로막는 불합리한 입법절차 특히 법사위 체계자구심사권을 개혁하는 대신 야당이 원하는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소수의 발의만으로도 국정조사가 발동될 수 있도록 국정통제권을 강화하는 식이다. 국정통제를 한답시고 정작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못하게 하는 방식은 더 이상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숫자만 믿고 국민의 의혹이 큰 사안에 조사조차 못하는 국회도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

제21대 국회는 제2의 민주화를 여물게 할 여야간 의회정파의 주기적 교체가 제 궤도에 오르는 시험대가 될 국회이다. 언젠가는 여와 야가 입장이 바뀔 것이니 지금의 유불리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위한 국회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주공화국 헌법이 추구하는 의회주의의 발전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제발 이번에는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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