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시간을 거슬러 드디어 만나다
짧은 만남후 다시 이별하게 된 모녀...안나는 엄마와의 소중한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 달력엔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성년의 날, 최근에 제정된 부부의 날까지 포함돼 있다. 평소에 잘 살피면 되지 굳이 기념일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묻는 이들도 있지만 어쨌든 그날 만이라도 챙기자는 뜻으로 제정됐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리는 이들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매년 돌아오는 숙제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 그 중에 엄마와 딸의 관계는 좀 독특하다. 흔히 애증의 관계라고들 한다. 외모도 닮았고 성격, 식성도 닮은 그들은 엄마와 딸의 관계면서 친구처럼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여성이라는 공통 분모로 엄마는 딸이 초경을 맞으면 축하해주고 사춘기를 거치는 동안에는 서로 으르렁 대기도 하다가 딸이 설익은 연애를 할 때는 엄마는 연애 코치가 돼 준다.
어느 덧 성인이 된 딸은 젊은 시절의 엄마는 어땠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20대의 엄마는 무엇을 좋아했을까, 엄마가 진정 하고 싶었던 것은 무얼까, 엄마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누굴까. 빛바랜 사진을 보며 엄마와 추억여행을 함께 한다면 철없던 시절 엄마의 인간적인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미처 몰랐던 엄마의 속내 이야기를 들으면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할 것이다.
여기 자신의 생일에 엄마를 여읜 딸이 있다. 태어난 후 매년 엄마의 선물을 받았지만 엄마는 결코 생일파티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장한 후 아이는 엄마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임을 알게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날의 ‘열여덟 번의 선물(2020, 감독 프란세스코 아마토)은 과거로 돌아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엄마를 만나게 된다는 판타지 영화다. 영화는 실제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엄마를 그리워하던 안나, 시간을 거슬러 엄마를 만나다
안나(비토리아 푸치니)는 생일 때마다 선물만 보내는 엄마가 불만이다. 아빠(에도아르도 레오)는 이번에도 참석하지 못한 엄마를 대신해 그림책, 장난감, 피아노 등을 안나에게 전하며 엄마 몫까지 해내느라 바쁘다.
그 선물들은 세상을 떠난 엄마(베네데타 포르카롤리)가 생전에 미리 준비해둔 것이다. 어느 덧 여섯 살이 된 안나는 생일 선물로 피아노를 받지만 이번에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자 기뻐하기 보다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안나에게 사실을 말해줘야겠다고 결심한 아빠는 안나를 데리고 아내가 잠들어 있는 묘지로 향한다.
엄마의 죽음을 알고난 후에도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안나. 다시 생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선물을 받지만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선물은 결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가 없었고 생일날은 오히려 엄마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는 괴로운 날이 되버렸다.
열여덟번째 생일날,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후 집을 나간 안나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운전자인 여성은 안나를 자신의 집에 데려간다. 왠지 집이 낯설지 않다고 느끼던 안나는 달력을 보고 18년 전 엄마와 아빠가 살던 집에 온 것을 알게되고 그 여성이 바로 자신을 잉태하고 있는 엄마임을 알게된다. 안나는 자신이 태어나기 3개월 전으로 과거 여행을 떠난 것이다.
안나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를 만나 궁금했던 것을 물어본다.
"엄청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먼저 먹어요 마지막에 먹어요?"
"아껴 먹지."
"우린 공통점이 전혀 없네요."
딸인지 모르는 엄마는 궁금증이 많은 소녀에게 대답한다. 안나는 시간이 멈추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엄마는 그날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아빠는 아이를 포기하고서라도 치료를 시작하자고 엄마를 설득하지만 엄마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태어날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딸이 18세가 될 때까지의 생일 선물 리스트를 미리 준비한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를 쓴다.
엄마는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
인생이란 뭔지 어떻게 살아갈 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네게 알려주고 싶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네 곁에 있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운명이 허락치 않아.
하늘에서 언제나 지켜볼 것이라고 끝맺으면서 마침내 딸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감는다.
짧은 만남, 그리고 다시 긴 이별
안나의 시간여행은 엄마가 마련한 선물들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여행이었다.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 안나는 꿈결처럼 엄마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다시 현실의 안나로 돌아온다. 딸의 생일날 딸의 곁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엄마의 가슴뭉클한 연기도 감동적이다.
극중 다이빙 선수인 안나가 다이빙을 하는 모습에서 엄마 뱃속에서 느꼈을 충만감이 은유적으로 그려진다. 끊임없이 물로 뛰어드는 안나는 엄마의 양수 안에서 느꼈을 따뜻함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꿈 같았던 짧은 만남 후 다시 이별하게 된 모녀. 하지만 안나는 이제 엄마가 남긴 열여덟 개의 선물 보다 더 값진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실화에 바탕을 두면서도 최근 자주 등장하는 '타임 슬립' 장치가 다소 억지스러울 수도 있지만 삶을 포기하면서도 아이를 지키려는 가슴 아픈 모성애 스토리는 세상을 떠난 부모를 둔 시청자들이라면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곁에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진부하게 들릴까? 하지만 누구나 부재를 느끼고 나서야 후회하기 마련. 너무 늦지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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