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통신] 인내력 잃어가는 인도네시아人...인니 이웃 돕는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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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통신] 인내력 잃어가는 인도네시아人...인니 이웃 돕는 한인들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 승인 2020.05.2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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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최대 명절 '이둘피트리', 코로나 사태에 중단 명령
인도네시아, 코로나 확산세 못막고 사회 혼란 고조돼
한인들, 인도네시아 이웃 지원하면서 '감염 막기' 안간힘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오피니언뉴스=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중세로부터 천문학이 크게 발달한 이슬람권은 요즘도 라마단 금식월의 시작과 그 종료를 기념하는 '이둘피트리(인도네시아어로 idul fitri, 아랍어로는 Eid-al-Fitr) 축제'의 서막을 천문관측으로 연다.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히삽(hisab) 방식과 달의 물리적 움직임을 직접 관측하는 루캿(Rukyat) 방식을 함께 사용해 가끔은 반나절 내지 하루 정도 차이가 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다행히 올해는 인도네시아 전역에 80개 천문관측소를 운영하는 인도네시아 종교부와 주요 이슬람단체들은 이둘피트리를 5월 24일(지난 일요일) 시작하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13세기경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처음 도래한 이후 수백 년간 이어진 이둘피트리의 전통은 아침 일찍부터 선조들과 성인들의 묘지를 참배하는 '지아라(ziarah)'와 부모와 친지를 찾아 고향으로 떠나는 대규모 귀성행렬인 '무딕(mudik)'으로 대변된다. 그때 모두 새 옷을 입고 선물을 들고 나서기 때문에 금식월 끝물엔 몰과 재래시장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코로나 확산 차단 위해 '이둘피트리' 금지

하지만 올해 이런 전통이 정부의 제재와 국가적 우려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히 코로나-19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3월 2일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후 3월 중순 국가보건 긴급사태를 발효한데 이어 4월 10일 자카르타에서 시작된 대규모 '사회적 규제조치(PSBB)'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방역강도가 크게 높아진 상태다.

감염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4월초 항만과 공항에 사실상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같은 달 21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직접 전국민의 '무딕' 금지를 발표했다. 사실상 전국적 이동제한명령으로, 이로인해 3월 중순 이후 해고되거나 무급휴가자로 밀려나 생계가 끊긴 수백만 명이 '이둘피트리' 전에 일찌감치 귀성하려다가 발목이 잡혔다.

허가없이 수도권 경계를 넘으려던 차량들을 대대적 단속을 펴고 있는 경찰들이 가차없이 돌려세웠고 덩달아 공장 자재 트럭들과 지방에서 수도권 생산공장으로 출퇴근하는 한국인 관리자들도 큰 불편을 겪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운 인도네시아 인들의 자조 섞인 그래프. 맨 위는 코로나를 거의 극복한 국가로 말레이시아, 이태리, 독일, 가운데줄은 이미 코로나를 극복한 나라로 태국,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는 미국, 싱가포르와 함께 위기 절정에 있고 그나마 그래프로 표시하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라는 정서를 반영한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운 인도네시아 인들의 자조 섞인 그래프. 맨 위는 코로나를 거의 극복한 국가로 말레이시아, 이태리, 독일, 가운데줄은 이미 코로나를 극복한 나라로 태국,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는 미국, 싱가포르와 함께 위기 절정에 있고 그나마 그래프로 표시하기조차 부끄러운 상황이라는 정서를 반영한다.

인도네시아 확진자수 고공행진중...한계 다다른 인내력 

하지만 급증하는 누적확진자 수치를 보면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치를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 브라질 등 대규모 감염국가들에 가려졌지만 인도네시아도 가파른 감염증가추세를 보여 5월 초에 한국 누적감염자 수치를 넘어섰고 지난 21일엔 2만명 선도 넘었다.

문제는 줄곧 하루 300~400명 대에 머물던 신규확진자 숫자가 5월 중순부터 500~600명 선으로 증가하더니 20일 이후부터는 630~970명 선으로 폭발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동안 8.6% 전후였던 치명률이 현재 6.2% 선으로 낮아진 것은 중증환자 외에도 좀 더 광범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PCR 검사가 이루어진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최근 귀국한 인도네시아 해외노동자들이 코로나 격리병동으로 개조된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에 대거 격리돼 전수검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지 방역당국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수치다.

그런 상황에서 당초 한 차례 연장돼 5월 22일까지였던 자카르타의 '사회적 규제조치(PSBB)'는 6월 4일까지 2주 더 연장되었고 학교와 기업은 여전히 문을 닫고 있다. 

정부도, 인도네시아 국민들도 한계에 다다른 것은 마찬가지다. 마치 세상이 종말이라도 맞은 것처럼 인적이 뜸했던 자카르타 도로들이 라마단 금식월을 절반쯤 지나면서 다시 붐비기 시작했고 5월 14일엔 이동금지 와중에도 놀라운 수완을 발휘해 비행기 티켓과 이동허가를 얻은 이들로 인해 자카르타의 관문인 수카르노-하타 공항 터미널이 터져 나가도록 장사진을 이뤘다.

일부 시민들은 오직 포장판매만 허락된 식당 뒷편에 몰래 자리잡아 지인들과 함께 금식 후 첫 저녁식사를 하는 '부까뿌아사(Bika Puasa)'의 전통을 끝내 지키려 했다. 예전 최신식 백화점이었으나 시대에 밀려 구식이 되어버린 탐린 거리의 유서 깊은 사리나 백화점 맥도널드 본점이 29년만에 폐점하게 되자, 수많은 인파가 밤늦게 모여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사리나 백화점은 전통적 핫스팟으로 몇 년 전엔 테러집단이 그 앞 도로에서 폭탄을 터뜨린 곳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실망감을 드러낸 이들은 코로나와 싸우고 있던 의료진들이다. 그들은 앞다투어 ‘Indonesia??? Terserah!!!’라는 손팻말을 든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인도네시아? 니 멋대로 하세요!’라는 의미다.

닥터 띠르타(왼쪽), 닥터 에피 리스마와티 데위(오른쪽)의 5월 16일자 인스타그램 계정 캡쳐
닥터 띠르타(왼쪽), 닥터 에피 리스마와티 데위(오른쪽)의 5월 16일자 인스타그램 계정 캡쳐

코로나 방역 최전선에서 이미 7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의료진들로서는 날로 맹위를 떨치는 코로나 확산 와중에 방종하는 시민들과 그런 상황을 방치하는 정부의 어정쩡한 조치에 실망했을 법하다. 그래서 그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정부도, 경찰도, 매체와 소셜미디어도, 국회의원들도, 기업 마피아들도 모두 니 멋대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보사부는 방역참여를 촉구하는 의료진들 사진을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며 상황을 수습하려 하고 있다. 

보사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의료진이 ‘인도네시아, 맘대로 하지 마시고 힘을 합쳐 코로나-19 방역 프로토콜을 따릅시다’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들고 있다.
보사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의료진이 ‘인도네시아, 맘대로 하지 마시고 힘을 합쳐 코로나-19 방역 프로토콜을 따릅시다’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들고 있다.

인니정부, 경제회복 안간힘...한인 교민들도 이웃 돕기 나서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도 코로나 확산이 두려워 언제까지나 경제활동을 정지시켜 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초 405.1조 루피아(33.9조원)로 책정했던 코로나 방역과 경제회복 비용을 641.7조 루피아(53.7조원)로 대폭 확대 편성했다. 재정적자를 1020조 루피아(85.4조원) 이상 각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375.6조 루피아(31.4조원)의 국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미 발행했고 올해 연말까지 697.3조 루피아(58.4조원)의 국채를 추가 발행할 것이라고 수아하실 나자라 재무부 차관이 지난주 화상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중앙정부는 당초 코로나가 5~6월에 정점을 맞고 7~8월에는 정상 생활로 복귀한다는 시간계획을 가지고 '이둘피트리' 기간 동안만큼은 수도권 내에서는 주경계를 넘는 것을 허용하는 등 서서히 규제를 완화해 출구전략을 짰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도 경제를 재가동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 ‘뉴노멀’ 환경에서 시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지난 5월 15일 발언에 시민들이 당황스러워 했다. 물론 조코위 대통령은 평화로운 공존이란 우리가 두 손을 든다는 뜻이 아니라 적응해 간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 사태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영세상공인들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던 비정규직들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는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에 배정해 코로나 피해가구들에게 최대 3개월간 월 60만 루피아(약 5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이 지원금을 받았다는 사람을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부유층이 수입감소로 지출을 줄일 때 자선과 기부 항목을 가장 먼저 줄이는 만큼 도시빈민들과 고아원 등은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인들의 빈민구제활동이 주목받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로 직접적인 구호활동이 중단된 후에도 교회와 봉사단체 등 한인단체들과 개인 독지가들이 빈민지역에 정기적으로 생필품과 마스크를 보내는 활동을 통해 마을의 생계를 지탱하고 있다.

땅거랑 지역 한인주부들로 구성된 헤븐스멤버는 매주마다 한센촌 시타날라 마을에 가정당 쌀 5㎏씩 제공해왔다. 월간 쌀 2톤이 넘는 물량이다. 현재 89개 가정을 돕고 있는 해븐스멤버는 2005년 이후 단 한 주도 활동을 쉬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5월 16일 생필품을 배포하는 장면이다. 사진= 헤븐스멤버 제공
땅거랑 지역 한인주부들로 구성된 헤븐스멤버는 매주마다 한센촌 시타날라 마을에 가정당 쌀 5㎏씩 제공해왔다. 월간 쌀 2톤이 넘는 물량이다. 현재 89개 가정을 돕고 있는 해븐스멤버는 2005년 이후 단 한 주도 활동을 쉬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5월 16일 생필품을 배포하는 장면이다. 사진= 헤븐스멤버 제공

직격탄 맞은 한인기업 "현지 사회 피해줄 수 없다" 경각심 최고조 

하지만 팬데믹에 피해를 입은 것은 한국기업들과 한인가정들도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의 주거래선들이 발주를 중단하면서 한인 공장들도 두 달 넘게 공전했다. 그러나 인건비는 물론, 법으로 정해진 '이둘피트리' 보너스까지 반드시 지급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수입은 전혀 없고 지출만 유지되는 구조가 지속되지만 한인기업들로서는 인니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지금도 외국인 입국금지 상황이지만 이미 입국해 있는 외국인들은 정부의 팬데믹 종료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딱히 비자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도 1개월씩 체제비자가 자동 연장된다. 어차피 이민국을 비롯한 정부 민원창구들도 이미 두 달째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단 출국하면 인도네시아 재입국은 당분간 기약하기 어렵다. 1년짜리 인도네시아 근로비자(ITAS) 이상 소지자는 입국금지대상이 아니지만 한국을 다녀올 경우 양쪽 국가에서 각각 14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인도네시아 입국 전 PCR 검사 음성판정 결과를 명시한 건강증명서 등 소정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인도네시아 동포사회는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어느 때보다도 본국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갖게 됐다. 현 정부의 성공적인 방역활동 뿐 아니라 물품사재기도 없고 마스크 쓰라는 상대방에게 총을 쏘는 이도 없는, 분별력과 염치에 기반한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아직도 코로나 청정지역이라며 자화자찬하던 시점에, 한국에서 코로나가 들불처럼 퍼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현지 한인들 중 확진자가 먼저 나오면 천하의 역적이 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인사회는 무의식 중에도 '최소한 우리가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집단적 ‘염치’가 있었던 것같다. 2007년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가 버지니아 공대에서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켰을 당시 한국인 전체가 미국에 깊은 조의와 미안함을 품었던 것처럼.

5월 23일 현재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누적확진자는 2만1745명, 사망자는 1351명인 가운데 다행히 한인사회 코로나 감염자는 아직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은 1995년 당시 (주)한화 무역부문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입성했다. 2016년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소설부문 수상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인도네시아 통신원을 지냈고, 재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 공동 총괄편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가 있고, 한국외대 양승윤 명예교수와 함께 <막스 하벨라르>를 공동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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