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채용 비리, 일자리를 권력과 바꾼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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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채용 비리, 일자리를 권력과 바꾼 '부당거래'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20.05.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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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LG전자 영업본부 인사팀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이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채용 비리 단서를 포착하고 압수수색을 신속하게 실행한 점은 실로 이례적이다. 압수수색은 지난 2013년~2015년에 발생한 채용비리 혐의와 관련된 것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기업에서 발생한 비리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건 단연 채용과 관련된 부분이다. 우스개 소리로 일자리 창출은 정부의 과제뿐만 아니라 유력인사의 과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금융기업, 통신기업, 공기업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업이 채용 비리로 언론의 비판을 받았고 인사 담당자 상당수가 구속되는 비극을 되풀이했다. 

필자가 접한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이번 LG전자 압수수색 건에 대해 당혹스러움을 표현하면서도 LG전자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여전히 은밀하게 채용 비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데도 밝혀진 기업들은 제보 등에 의해 안타깝게 걸렸을 뿐이란 것이다. 채용 관련 폐단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자리와 권력을 맞바꾼 부당거래 

인사 담당자 다수는 소신을 다해 채용 업무에 임한다고 해도 실제 발생하는 채용 비리를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하소연한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 인사팀을 대상으로 직접 채용 청탁이나 제안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해당 기업의 고위 임원 또는 오너 경영자 등을 대상으로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채용 압력이 들어오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자신의 자녀 또는 친인척의 채용을 은밀하게 부탁하는 직업군도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고위공직자부터 경쟁기업 경영진, 로펌 변호사, 병원장, 교수 등 국내에서 영향력을 인정받은 인물들은 예외 없이 채용 청탁을 요청한다. 이들의 거센 요청에 기업에 재직 중인 일개(?) 인사팀장이 소신을 갖고 청탁을 모두 막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 모 기업은 직접 CEO가 자신의 자녀를 입사시키기 위해 인사팀에 무리수를 넣은 경우도 있었다. 자기소개서도 형편 없이 작성했고 의욕도 보이지 않았던 자녀들이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표현인 ‘아빠 카드, 엄마 카드’를 활용해 얼마나 손쉽게 사회 생활의 첫 스타트를 끊는지 채용 과정을 진행한 다수의 담당자는 알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이들을 뽑는 이유는 뭘까?

누구나 짐작하듯이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기업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위해 원활한 로비 창구가 필요하고 확실한 법률 방패막이도 갖춰야 하며 주요 권력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선결조건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거래는 형성된다. 

채용비리는 일자리와 권력을 맞바꾼 '부당거래'다. 그래픽=연합뉴스

일자리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 ‘채용비리 구속’ 등을 검색하면 다양한 기관의 수많은 인물이 채용에 얽힌 비리로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코로나 재난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는 취업 준비생, 공공기관 입사를 위해 도서관에서 지금도 땀을 흘리는 수험생들을 조롱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가로채는 그들에게 엄정한 법의 심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공정성을 위해 블라인드 전형을 실시한 후 공공기관과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꽤 많은 부분에서 선발 과정의 공정성이 개선됐다. 이번에 압수수색으로 내부에서 홍역을 겪고 있는 LG전자 채용 비리 의혹도 2013~2015년에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인사 담당자 다수는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채용 비리가 곳곳에서 은밀히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단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과거 로펌, 방송사, 컨설팅사, 대학 등에서는 대놓고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지를 물어봤을 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 등을 통해 집안 배경을 살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량이 비슷하다면 차라리 고위직 부모를 둔 자녀를 뽑는 것이 성과에 훨씬 유리하다는 시각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내 조직에 뼈 속 깊이 파고든 편견이다.  

안타깝게도 경영학 및 사회심리학 연구에서 좋은 배경과 직업을 갖고 있는 부모의 자녀가 실제 기업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과는 단 한 편도 없다. 일자리를 거래의 대상으로 맞바꾸면 오히려 조직에 대한 애착, 소속감, 업무 의욕 등이 하락한다는 연구는 무수히 많다. 그 동안 일자리를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기업들의 성과가 유독 하락한 이유이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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