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⑦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구석기시대'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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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⑦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구석기시대'의 벽화?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0.05.1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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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동굴벽화 작법 애니메이션 기원설
BC 4000년 이집트 피라미드 매장실에도 역동적 벽화남아
근현대 최초 애니메이션, 프랑스 에밀레이노의 '테아트르 옵티크'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오피니언뉴스=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작년 한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10위를 살펴보면 그중 3편 (겨울왕국2, 토이스토리4,중국 애니메이션 나타지마동강세)이 애니메이션이다.

원작 자체가 애니메이션이었다가 실사화된 디즈니의 ‘알라딘’, ‘라이언킹’을 포함하면 실제 애니메이션 작품이 반을 차지한다. 이렇게 콘텐츠 산업 내에서도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에 못지 않은 큰 영향력을 가진 콘텐츠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니메이션은 영화 산업의 한 부분 또는 종속적 개념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인 영화상인 아카데미상에서도 애니메이션은 다큐멘터리같은 영화의 한 장르로 본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 애니메이션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왠걸 애니메이션은 영화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콘텐츠 산업이다. 그것도 선사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말이다.

애니메이션 오리진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무엇일까? 영화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최초의 영화가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라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최초의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건 애니메이션의 기원 자체가 조금은 애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을 한자로 동화(動畫)라고 한다.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현대적 의미의 애니메이션의 원리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결된 동작을 그린 그림을 빨리 넘기면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잔상효과’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기본 개념인 ‘그림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에 다리가 겹쳐져있거나 원래 있는 위치가 아닌 곳에 다리가 달려있는 동물 그림들이 발견됐다. 학자들은 처음에는 이것이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형태가 아니었을까 했지만,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벽화에 촛불 같은 빛을 비추었을 때 마치 이 동물들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거나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운데 구멍이 나있는 구석기 시대의 동그란 원판 형태의 유물이 이 그림을 움직이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장치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단지 학자들의 추측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 그림들이 이러한 용도로 그려졌는지 정확한 사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단지 이러한 그림들이 실수로 그려졌다기 보다는 어떤 이유로 인해 그림들이 비춰지는 빛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한 구석기 시대의 인류들이 의도적으로 그렸다고 하고 싶다. 

애니메이션의 기원이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런 사심을 담아 애니메이션 팬으로서는 고고학자들의 이 가설에 한 표 던지고 싶다. 

일부 학자들은 이란의 번트 시티 유적에서 발견된 BC 3000년 후반에 만들어진 산양이 나무 위에 열린 나뭇잎을 먹기 위해 나무위로 점프하는 연속 그림이 그려진 그릇도 애니메이션의 기원이라고 본다. 

고대 이집트 매장실 벽화에서 발견된 레슬링 선수들의 연속 동작. 사진=위키피디아 캡쳐.
고대 이집트 매장실 벽화에서 발견된 레슬링 선수들의 연속 동작. 사진=위키피디아 캡쳐.

그것보다 더 올라가 기원전 4000년 전의 이집트 피라미드 매장실 내부 벽화에 그려져 있던 레슬링 선수들의 연속된 대련 동작을 기원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그림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시퀀스 내의 연속된 동작, 즉 현대 영화의 필름이나 4컷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연속된 동작을 나열하는 표현을 통해 일종의 ‘운동성’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들 기원전의 이미지들은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만화(Comics)’의 컷 분할에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일부에서는 이들이 만화의 기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정확한 유래를 알 수는 없지만, 고대와 중세로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서민의 오락 거리 중 하나였던 그림자 연극도 애니메이션의 기원이라 보기도 한다. 그림자 연극은 평면적 이미지의 움직임 거기에 스토리 및 음악들이 들어가 하나의 완성된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러한 제작 방식의 유사함이 현대 애니메이션의 그것과 맞닿아있는 것은 분명하다.

매직랜턴의 기본 개요. 사진=위키피디아 캡쳐.
매직랜턴의 기본 개요. 사진=위키피디아 캡쳐.

우리의 눈이 일으키는 착시 즉 잔상효과를 활용한 시스템의 근원이 시작된 것은 17세기 중반에 선보이기 시작한 ‘매직 랜턴’이라는 도구이다. 현대의 프로젝터와 비슷한 이 매직 랜턴은 촛불같은 광원 앞에 이미지가 있는 슬라이드 유리를 대고 빛을 투사해서 이미지를 영사하는 방식이다. 한 컷 한 컷 정지 영상을 투사하던 방식이 18세기에 들어 모션을 가지게 되었고, 다중 랜턴을 사용하거나 랜턴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 이미지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지 하는 기법들이 실험되었고, 이는 다양한 공연에 활용되었다.

영화 산업의 근간을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의 발명은 사진의 발명에 근원을 둔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에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림뿐이었다. 애니메이션의 시작이 영화보다 빠른 이유다. 영화 카메라가 만들어지기 전 영화에 쓰이는 영사기와 비슷한 기계들에 연속된 그림을 얹어 보여준다는 개념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에 나온 장난감인 타우마트로프 (thaumatrope)는 두 장의 서로 다른 그림 원판을 실로 연결해 이를 손으로 돌려 두 장의 다른 그림이 하나로 보이게 하는 일종의 착시효과를 이용한 장난감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페나키스토스코프라는 장치는 동그란 원판에 움직임이 있는 그림을 방사형으로 놓고 이를 돌려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이다. 

페나키스토스코프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페나키스토스코프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1877년에 프랑스에서 나온 프락시노스코프 (Praxinoscope)나 주프락시스코프 (Zoopraxiscope) 등 에디슨의 키네마토스코프처럼 통을 들여다 보는 방식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장치들이 잇달아 나온다. 

이러한 장치들은 대중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이러한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은 그림이 아닌 실사로도 통할 수 있겠다는 사업적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영화로 어떻게 보면 애니메이션이 영화의 산업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초의 애니메이션 테아트르 옵티크(Théâtre Optique)의 불쌍한 피에로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은 프랑스의 발명가 에밀 레이노 (Émile Reynaud)가 테아트르 옵티크(Théâtre Optique)라는 최초의 애니메이션 상영 시스템을 만들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는 이미 1876년에 프락시노스코프라는 애니메이션 상영장치를 만들었고 이를 개선한 것이 바로 Théâtre Optique이다. 레이노는 6cm 정도의 젤라틴 플레이트에 옛날 슬라이드 필름처럼 직접 그림을 그려 채색까지 했다. 그는 이를 필름 형태의 스트립 (띠)으로 만들었고, 600매에서 700매 정도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스토리가 있는 애니메이션 필름을 만들었다. 1892년 레이노는 파리에 있는 그레방 박물관에서 이 새로운 형태의 ‘애니메이션’을 상영했다. 이는 애니메이션이 상업적으로 상영된 첫 번째 사례로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상영회가 열린 1895년보다 3년이 빠르다. 애니메이션이 영화보다 먼저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에밀 레이노의 테아트르 옵티크(Théâtre Optique). 사진=위키피디아.
에밀 레이노의 테아트르 옵티크(Théâtre Optique). 사진=위키피디아.

이 Théâtre Optique용 스트립은 영화가 초기 짧은 필름 길이의 한계로 인해 스토리 전달보다는 단순한 일상 전달의 짧은 푸티지에 머물렀을 때에도 이미 600매가 넘는 프레임을 통해 기술적으로도 심미적으로도 영화를 압도했다. 

초기 영화는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초기 영화의 거장 조르주 멜리에스도 초기 애니메이션의 기법을 자신의 영화에 도입하기도 했다. 

현재 남아있는 Théâtre Optique 스트립 중 1892년에 상영된‘불쌍한 피에로 (Pauvre Pierro)’라는 작품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돼있으며, 등재 사유에도 ‘이 유산은 영화라는 것의 획기적인 발명을 도운 유물과 장치에 대한 기록물’이라고 돼있다. 영화의 탄생에 애니메이션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최초의 상업 애니메이션 불쌍한 피에로(Pauvre Pierro). 영상출처: 유튜브]

Théâtre Optique의 상영은 프랑스 내에서도 큰 화제였다. 당시 프랑스 언론에서는 이 상영회를 두고 살아있는 듯한 그림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또한 이 매력적인 시스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기술적,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초기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에 비해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실사 영화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었던 것이다.

초기 실사 영화는 그렇게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무대나 규모등이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비해 애니메이션은 프레임 한 장 한 장을 다 그려내야 했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제작시스템은 프랑스 언론들이 우려한대로 초기 애니메이션 산업이 성장하는데 큰 방해가 되었다. 비슷한 비용으로 실사영화를 더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0년을 지나 1920년대 애니메이션 산업이 다시 부흥하기 전까지 애니메이션은 자신이 만들어냈던 영화 산업의 주인 자리를 실사 영화에 내어주고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이 다시 주목 받게된 건 실사 영화들의 규모가 커지고 배우들의 출연료들이 상승하면서 실사 영화 제작비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난 이후이다. Théâtre Optique의 첫 상영회 때 프랑스 언론이 말한 것처럼 기술적 경제적인 뒷받침이 형성되고 난 이후였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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