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선박2-왜의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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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선박2-왜의 선박
  • 이효웅
  • 승인 2015.11.2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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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倭)의 선박
  가야와 왜의 교류는 삼국시대 초부터 시작하였으나 본격적으로 교류한 것은 가야철이 수출되는 4-5세기라고 본다. 그러므로 왜의 선박 발달과정도 비슷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한반도와 왜의 자연환경은 조금 다르다. 왜는 섬나라이고 태풍 등의 기상이변이 많은 나라이나 지중해와 같은 세토내해(세토나이카이)를 가지고 있어 선박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태풍,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로 선박의 해난사고도 많다.
 삼국시대의 선박과 왜의 선박을 주형토기로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비슷한 점은 그림과 같이 독목주선((獨木舟船)인 일체성형선에서 이체성형선(二體成形船) 김정배, 『한국고대사입문2』 4-5세기경 가야와 왜의 선박제작 능력과 항해술의 복원, 232-239
으로 발달한 다음 삼체성형선(三體成形船)으로 발달하였다. 다른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제기로 사용되었는데 왜에서는 제기(祭器) 및 제단(祭壇)으로 사용하고 바다에 띄웠다.

 

▲ <도1-11> 마스사카 다카라쓰카 1호고분 선형토기(2015 오사카박물관 김인영)


  위의 마쓰사카 다카라스카 1호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는 필자의 생각으로도 항해용 선박이 아니라 제례용 선박이라고 본다. 용도는 시체를 싣는 장송의례 보다는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제례용 선박이라고 본다.
 축척의 크기로 보아 제단의 역할을 하였고, 밑의 받침은 육상에서 관리가 쉬우며 받침에 난 양쪽의 구멍으로 공기가 빠질 수 있게 하여 물속에서 부력과 복원력으로 안전성이 유지되게 하였다.

▲ <도1-12> 마스사카 다카라쓰카 1호고분 선형토기 그림(2001년) 김정배, 『한국고대사입문2』 4-5세기경 가야와 왜의 선박제작 능력과 항해술의 복원, 237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선박으로 <도1-13>히가시도노스카 고분 출토 타원통형토기에 그려진 선형회화(2000년)에 나오는 일반선박의 가운데 부분을 압축하여 제작하였다.
<도1-12>마스사카 다카라쓰카 1호 고분 선형토기의 양쪽 2개의 대는 깃발, 도리 등의 꽂이로 보이고, 가운데 2개는 이동식 횟불 꽂이로 보여 야간 의식에도 사용하였다.   
 일본의 <도1-12>마스사카 다카라쓰카 1호 고분의 선형토기는 대형으로 축적으로 보아 길이와 높이가 각각 135x88cm정도로 제단으로 사용되었고 제례의식 후에는 바다에 띄웠다.

▲ <도1-13> 히가시도노스카 고분 출토 타원통형토기에 그려진 선형회화 김정배, 『한국고대사입문2』 4-5세기경 가야와 왜의 선박제작 능력과 항해술의 복원, 236

 
<도1-13>일본 덴리시 히가시도노쓰카 고분의 타원통형토기의 선형그림을 보면 막대에 깃발, 솟대. 용모형, 연 등을 매달았다. 야간항해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앞뒤에 화덕(횟불대)으로 보이는 받침과 재를 치우는 문이 있다. 그리고 선수와 선미는 끝을 올려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대칭형으로 보인다. 아마 이것은 해난사고로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항구나 연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야간 의식행사를 하는 제례 선박의 그림 같다.
 
 그림이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못하였지만 여기에서 몇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첫째 배의 폭보다는 길이가 길며 모양이 약간 다르다. 둘째 배에는 여러 가지 깃발을 달았다. 셋째 배의 노가 좌우 각각 7, 4, 7개씩이며 키가 있다. 넷째 그림3에서 보듯이 노는 쌍노(1인2노)를 사용하였다. 다섯째 그림1과 그림3의 큰 배는 화덕(횟불대)이 있다.
 그림3에서 보듯이 쌍노(1인2노)의 각도를 보아 이 선박은 이렬방식이 아닌 일렬방식의 이체성형선(二體成形船)이나 삼체성형선(三體成形船)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해양학자들이 노의 수와 사람의 수를 같이 계산하여 선박의 크기를 잘못 계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각 선박의 승조원은 그림1과 그림3은 중형선으로 키잡이1명, 노잡이 7명, 기타2명 계 8-10명, 그림2는 소형선으로 키잡이1명, 노잡이 4명, 기타 1명 계5-6명 정도이다. 

▲ <도1-14> 다카마와리 2호 고분 선형토기
▲ <도1-15> 다카마와리 2호 고분 선형토기를 복원중인 나미하야호

 

▲ <도1-16> 1989년 오사카-부산을 항해한 나미하야호

 필자는 4-5세기에 만들진 <도1-14> 오사카 나카하라 다카마와리 2호분의 이체성형선(二體成形船)의 주형토기를 복원하여 1989년 오사카와 부산항을 항해한 나미야호(길이12m, 폭1.9m, 높이 3m, 무게 4톤, 이렬방식의 외노, 노꾼 8명)는 오류라고 본다.
 이 선박의 특징은 이체성형선(二體成形船)이나 삼체성형선(三體成形船)으로 선박의 구조와 놋좃의 크기로 보아 소형선이며, 놋좃이 좌우에 각 4개씩 있어 노꾼은 4명이며, 용도는 화려하고 대칭형 모양으로 보아 의식용의 제례 선박으로 가운데 부분을 압축하여 제작하였다. 그리고 다카마와리 2호 고분 선형토기는 <도1-13>의 2번 그림과 유사한 이체성형선으로 일렬방식의 쌍노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당시 왜에는 많은 선박들이 제작되어 사용되었고 아울러 태풍 등의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이들의 영혼을 달래 주는 신앙의식이 우리나라 보다 강하고 많아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대 범선 유물이나 유적이 발굴되지 않아 고대선박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 <도1-17> 가야 선형토기와 다카마와리 선형 토기의 이체성형선 비교

 
  <도1-17> 우리나라 대구박물관의 가야 선형토기와  다카마와리 2호 고분 선형토기가 거의 일치한다. 이 선형토기는 실제 선박의 가운데 부분을 압축하여 제기로 만들었는데, 어느 나라부터 먼저 이런 의식이 시작되었는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가야의 수많은 무덤들을 보아 순장과 부장품 풍습이 왜로 전해졌다고 본다.
 
 <도1-18> 다카마와리 선형토기와 기미야자키 사이토바루 169호 고분 선형토기를 비교해 보면 일체성형선에 측판을 붙여 일체성형구조선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도1-18> 다카마와리 선형토기와 기미야자키 사이토바루 169호 고분 선형토기 비교
▲ <도1-20> 진수식(2008 제주 성산포)
▲ <도1-19> 영등배(2015 제주 비양도)

 

 

 

 

 

    

 

▲ <도1-21> 진도 신비의 바닷길 풍어기원제(2013.4.27 진도 모도)

 

우리나라에도 진수식, 만선, 풍어제, 해신제 등에는 깃발을 다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2월 초하루 영등날(3.20) 영등굿을 한 다음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짚으로 만든 모형 선박에 돛을 달아 바다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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