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139명 교민 실은 전세기, 뜨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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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139명 교민 실은 전세기, 뜨긴 했는데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 승인 2020.05.08 10:4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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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체계 허술한 이집트 교민들 귀국과정
139명 전세기 임대료 나눠내고, 아이들과 엄마 귀국길에
국내 여론, 해외 입국자에 싸늘한 시선 부담스러워 '안절부절'
'우리나라 국민'으로 받아주길...남은 교민들도 '언제 끝날까' 걱정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5월5일 어린이날, 139명의 탑승객이 탄 이집트발 인천행 전세기, 임시항공편이 드디어 떴다. 항공료는 30만불의 전세기 임대료를 139명이 나눠 내는 방식으로 책정됐다. 탑승객의 상당수는 어린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이다. 

지난 1월에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가 뜰 때까지만 해도, 이집트에서 진짜 전세기를 빌리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이번 이집트발 전세기는 우한의 경우와 달리 정부 차원이 아닌 이집트 한인회 차원에서 전세기를 확보해 입국하는 경우다.

5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국제공항에서 이집트에 체류해온 한국인 130여명은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출발하기 앞서 출국 수속을 밟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국제공항에서 이집트에 체류해온 한국인 130여명은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출발하기 앞서 출국 수속을 밟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두 달여간의 장고 끝에 결정

한인회에서 전세기 도입 문제가 논의된 건 이집트의 하늘 길이 막히고 통행금지 조치가 전격적으로 시행된 3월 중순부터였다. 다행히 영국으로 가는 임시항공편이 간간이 운항된 덕택에, 발이 묶였던 단기 체류자들은 영국을 경유해 귀국했다. 그러나 영국 역시 코로나 19의 전파 상황이 심각한 데다, 숙소와 연결 항공편을 잡는 데 애로가 많았다. 때문에 아이를 동반하고 이동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동선이었다.

한인회의 임시항공편 임대에 대한 의견 투표는 3월 말에 처음 이뤄졌다. 당시 이집트내 코로나 확진 현황은 양성 반응 41건, 사망 6명으로 비교적 양호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임시항공편 임대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임대를 찬성하는 교민들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너무 허술한 이집트 방역 체계 ▲돈도, 시스템도, 인력도, 투명성도 없는 이집트 정부가 한국은커녕 미국과 유럽만큼도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 ▲사태의 장기화, 악화 등을 고려해 노약자와 유학생 등을 우선 귀국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신중론도 많았다. 현재 한국 내에도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로 지쳐있고, 특히 해외 입국민 확진자 증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점 등을 우려했다. 결국 1차 투표는 전세기 임대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결과로 끝났다.

사실 정부의 우한 전세기 조치와 이탈리아 등의 민간 전세기 임대시, 재외국민 입국에 대한 국내 일부 여론은 무서울 만큼 싸늘하게 느껴졌다. “해외에서 살려고 나갔으면, 해외에서 치료받지 왜 돌아오냐”, “전세기 띄워 이 나라 저 나라 다 데리고 오면 우리만 또 힘들어진다”에서부터 “해외 유입자 없애버리자, 웬수들”이라는 과격한 댓글까지…. 안 그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가슴 졸이며 이집트에서 지내던 나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반응이었다.

영화 ‘마션’이 인기리에 상영될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화성에 남았을 경우를 가정해서 쓴 우스개 글이 생각났다.

“마크는 크게 봐서 조난자이며, 조난당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왜 마크만 특별대우를 하느냐?”, “애들 밥 먹일 돈도 없는 판국에 마크를 구하다니, 말이 되느냐?”, “마크 때문에 나라 살림이 거덜난다”, “화성 갈 땐 원래 죽음을 각오하는 거다”, “마크야, 네가 살기 위해 나라가 망해도 좋으냐? 이런 이기주의자 같으니.”

이제 그 우스개 글들이 그대로 나 같은 재외국민들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내에 최근 신고된 신규 확진자 가운데 해외 유입, 해외유입 관련 확진자가 60%를 넘었다는 본국의 기사가 눈에 띈다. 확진자가 많은 국가에서 항공편이 끊겨 전세기로 들어오는 경우라면, 확진자 비중이 많은 확률이 높다고 지적하는 글들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  아, 나는 이들에게 집 안에 들이고 싶지 않은 ‘오염된 인간’일 가능성이 높은 거구나….

이런 비난의 화살에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비단 필자 뿐 만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아이나 노약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팔이 부러져도 병원에 데리고 가기 무서운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교민 수송을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것은 지난 1월말부터 우한 교민을 대상으로 가장 먼저 시작했다. 해외 입국자중 확진자가 많이 나오면서 국내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다른 해외 교민들도 불안해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교민 수송을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것은 지난 1월말부터 우한 교민을 대상으로 가장 먼저 시작했다. 해외 입국자중 확진자가 많이 나오면서 국내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다른 해외 교민들도 불안해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떠날 자도, 남겨질 자도 고민 한가득

이러한 염원 속에서 한인회에서 수요조사를 다시 진행해 5일 전세기가 이륙하게 됐다.

전세기가 확정되자, 귀국을 결심한 가정에서는 자가격리 장소를 물색했다. 하루 10만원 상당의 격리시설에 대한 후기도 가지각색이었다. 방 한 칸에서 아이들과 14일, 336시간을  꼼짝없이 보내기 위해선 아이들의 시선과 짜증을 붙잡아 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의 동선도 고민거리였다. 12시간 동안 마스크를 벗고 기내식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고민에서부터, 화장실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아이들에게 12시간 동안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시키는 묘안이 무엇일지 등에 대한 고민이 오갔다.

옆 집 친구는 타지에 남편을 남긴 채 아이들만 데리고 귀국길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냉장고에 먹을거리를 잔뜩 채우면서 눈물을 쏟아 부었다.

그런 속에서 남기로 결정한 자들은 ‘남겨진 심란함’을 감당했다. '내가 남기로 한 것은 잘 한 결정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때마침 옆 동네 두바이에서 주재원 한 분이 코로나로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나마 이 동네에서 의료시설이 괜찮다고 알려진 두바이에서 사망이라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어쩐지 두통이 있는 것 같고 미열이 조금 느껴지는데, 때마침 아이들이 기침을 해댄다. 목이 간질간질 한 것 같은데, 숨 쉬기가 불편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해졌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나? 그렇게 조심했는데, 코로나라니. 애들은 어쩌나. 당국에 신고를 먼저 해야 하나? 2차 세계대전 때 쓰던 병상마저도 이제 없다는데, 이집션들이 가득한 그 곳에서 애들과 어떻게 버티나, 집에 있는 것이 나은가…. 온갖 고민 속에 없던 병마저 새로 생기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나를 괴롭히던 갖은 증상들은 2-3일만에 호전됐다. 신뢰할 수 없는 환경에 남은 자들은 마음의 병을 우선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5일 현재 이집트의 코로나 추가 확진자는 388명으로 누적 총 7201명, 격리해제(완치)자는 총 1730명, 사망자는 총 452명을 기록하며 연일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집트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공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호텔의 일부 영업 재개를 발표했다.

저녁자리에서 남편과 이 기나긴 동굴 생활의 끝이 언제쯤일지를 이야기해봤다. 우리의 바람대로 이달 말에 정점을 찍고 여름에는 소강상태에 들어가길 간절히 바라보지만, 마스크 착용조차 미흡한 이곳에서 과연 그 끝이 언제일지 걱정스럽게 기다려 본다.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은 기자, 국회의원 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이집트에 잠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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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2020-05-09 09:09:11
교민들은 의료보험이 안되도록 막아뒀으면 이렇게까지 욕먹진 않을텐데 말입니다..솔직히 한국 사람 입장으로써는 먹튀

맹구 2020-05-08 19:51:13
힘내시고 건강하게 귀국하시길 바랍니다.

카림 2020-05-08 18:24:29
가끔 글 올리시는거 읽는데, 이집트 현지 상황과 그 이면까지 잘 녹여내시는것 같습니다. 현지에 있기때문에 가능한것같습니다. 어떤 언론사 통신원은 현지에 있지만 현지에 있지않은듯이 딴 소식을 전하던데...

서아 2020-05-08 12:52:13
건강하게 다같이 만나요 ㅠㅠ

묵현 2020-05-08 12:31:12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