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1) 경제기초가 허약하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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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1) 경제기초가 허약하면 무너진다
  • 김인영
  • 승인 2015.11.1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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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18년전 국가 파산 위기를 되돌아보며 반성의 지침으로 삼자
1997년 11월 한국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한국은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경제에 다시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당시 필자는 뉴욕특파원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시리즈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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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sh Koreans to stop fighting about money."

어느 날 영어를 막 배우는 8살 짜리 딸아이가 쓴 공책을 펴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사람들이 돈 때문에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적어놓고 거기다가 1센트 짜리 동전을 붙여놓은게 아닌가. 왜 그런 글을 적었는가를 물어보지 않았다. 학교에서 미국 어린이들이 한국이 돈이 없어 가난해졌다고 놀리는데 대한 서글픈 심정을 써놓은 글이리라.

▲ 외환위기가 터진 다음해인 1998년 국민들은 장롱 속에 간직한 금붙이를 꺼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써달라며 '나라살리기 금모으기'운동을 벌였다. / 연합뉴스DB

1997년 11월, 외환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다가왔다. 아빠를 따라 미국에 온 딸아이에게, 기사를 써보내는 특파원에게 외환위기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지만 뉴욕에 2년이나 주재한 기자로서 동남아 경제 위기가 한국에까지 번져나갈 줄 몰랐었다. 한국의 위정자나 경제인들처럼 설마 한국에서 멕시코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곤 믿지 않았다.

기자는 1997년초 멕시코에도 가보았다. 한국에서 멕시코 위기와 같은 통화 폭락 사태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기사화하긴 했지만, 국내에 경종을 울려주자는 취지였지, 그렇게 되리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1997년말과 1998년초 기자는 많은 반성을 했다. 경제신문 특파원으로 뉴욕 금융시장에 대해 좀 아는 척을 했지만, 실제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아시아 위기를 진단하는 숱한 미국 언론의 기사와 전문가의 전망이 나왔어도 한국에 이를 정확히 전달했던가. 위기를 맞아 정부와 재벌들이 방향도 없이 우왕좌왕했을 때 어떤 방향을 제시했던가. 몇 자 기사를 보내고 면피하려 한 게 고작이 아니었던가.

딸이 “한국은 왜 가난해졌어”라고 물어볼 때 기자는 할말이 없었다. “재벌이 너무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야”라거나, “정부가 잘못했어”라고 대답하면서 뉴욕특파원은 면죄부를 찾을 수 있을까. 분명 아니다. 세계금융시장의 중심에서 한국의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 외환위기 이후 크게 증가한 외환 보유액.

 

외환위기 와중인 1998 여름, 반성의 차원에서 1년동안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신문과 잡지조각, 취재 메모, 복사물, 팩스물을 뒤적이다 문득 이것을 정리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하루 뉴스에 뒤엉켜 무엇이 본질인지, 무엇이 허상인지도 모른 채 지냈는데, 이제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 무언가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6개월 동안 종이 더미와 씨름을 했다. 그렇다고 국제금융시장을 완전히 해부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렴풋이나마 뉴욕 월가가 주도하는 국제금융시장을 공부할 수 있었고, 아시아, 특히 한국의 위기가 어떻게 왔는지를 그려볼 수 있었다.

필자는 경제신문 기자일뿐, 경제학자는 아니다. 취재 자료로 외환위기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자료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일이지만, 당시에 끄적그렸던 글들을 모아 나름대로 몇 가지 확인되는 사실을 정리해보았다. 짧은 공부이지만, 몇가지 결론을 도출해냈다.

 

1) 국제자본의 음모는 없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아시아 위기가 닥쳐오자 과대망상적 발언을 했다. 아시아 위기는 유태인들이 아시아의 경제발전을 시기해서 발생한 음모라고 그는 주장했다. 앵글로 색슨족이 홍콩을 빼앗긴데 대한 반발로 중국의 외곽인 아시아를 흔들고 있다는 음모론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주장도 사실이 아님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조지 소로스라는 국제 헤지펀드 대부가 유태인이고, 그가 태국 바트화와 말레이시아 링키트화 절하에 베팅을 했다고 해서 유태인 음모론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 어느 외환 딜러라도 펀더멘털이 약한 나라에 통화하락을 예상하고 덤벼들 수밖에 없다. 음모론은 아시아 지도자들이 스스로의 경제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아시아 지도자들이 국제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1990년대 이후 조성된 엄청난 국제 유동성 자금의 움직임이 기초가 단단하지 못한 나라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은폐하고 가난해진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음모론은 좋은 정치적 마타도어가 되었을 뿐이다.

 

2) 한국 외환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일본 은행의 탈출 러시였다.

태국 바트화, 말레이시아 링기트화, 필리핀 페소화 폭락에 미국의 헤지펀드들이 공략한 것은 입증된다. 홍콩 달러도 수차례 헤지펀드의 공격 목표였다. 그러나 한국 원화 폭락 과정에서 미국의 헤지펀드나 외환 투기자들이 선제 공격했다는 증거는 없다.

원화 폭락의 결정적인 원인은 일본 은행들이다. 한국의 대외부채중 절반이 일본에서 빌려온 돈이었다. 외화자금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간 것은 일본 차관이었다. 일본 은행들은 부실 여신으로 중병을 앓고 있었고, 한국에서마저 여신이 떼일 것을 두려워했다. 일본 은행들은 다른 선진국 은행들보다 옆집 사정을 잘 알았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계 은행보다 한국을 더 옥죄어 왔다.

미국 헤지펀드들은 외환 위기 이전에 일부 한국 증시에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일본계 자금이 빠져나가자 함께 이탈했고, 증시 폭락에 일조를 했다. 그러나 통화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되지 않았다.

 

3) 아시아 위기 이후 미국 금융시장의 주도권이 확립됐다.

아시아 위기는 엔저의 상황에서 발생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1990년대 들어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은 엔고의 덕분이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일본은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자국 경제 불황을 엔화 절하를 통한 수출확대로 해결하려고 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에 환율을 고정하다가 엔저의 상황을 맞아 경기 후퇴를 겪게 됐다.

아시아 위기 와중에서 일본은 아시아 경제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IMF가 아시아 구제에 나섰고, 일본은 아시아 경제의 구조자로서의 임무를 방기했다. 멕시코는 이웃나라인 미국의 지원으로 회생했다. 아시아 위기가 멕시코 위기보다 더 확산된 것은 일본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미국이 차지했고, 아시아 경제는 뉴욕 금융시장에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4) 펀더멘털이 약하면 다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브라질과 멕시코는 이미 외환 위기를 두어 차례 겪은 나라다. 이들 중남미 국가는 아시아위기 이후 다시 흔들렸다. 미국과 IMF의 자금 지원으로 급한 불만 껐을 뿐 금융기관의 부실 여신 청산, 재정 적자 해소등 원천적인 해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근본적인 수술을 하지 않으면 또다시 외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인영 발행인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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