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② 스포티 시크의 원조, 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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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스포츠 브랜드] ② 스포티 시크의 원조, 푸마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5.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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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함께 아디다스의 토대를 마련한 형 루돌프 다슬러, 푸마로 독립
유럽과 축구 외에 테니스, F1자동차, 농구에 이어 스니커즈로
명품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 선점
푸마, '저항적인 언더독' 컨셉부터 '스포티 시크' 트렌드 창출까지
푸마 스웨이드 클래식 슈즈와 끈을 이용한 광고 캠페인
푸마 스웨이드 클래식 슈즈와 끈을 이용한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운동화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가던 과정에서 서로 등을 돌렸지만, ‘푸마(Puma)’와 ‘아디다스(Adidas)’ 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대기업을 각자 일으켜 세운 다슬러(Dassler) 형제.

축구에서의 탄탄한 입지를 바탕으로 영역을 확장한 아디다스와 달리, 비주류 종목과 지역을 파고드는 우회적인 전략으로 허를 찌르는데 성공한 푸마는 패션 스니커즈 열풍을 이끌었던 리더로서의 자존심도 지켜가고 있다.

 

◆ 형제의 경쟁 속에 성장한 아디다스와 푸마

1898년 독일 바이에른 주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태어난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sler)는 신발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와 세탁소를 꾸려가던 어머니를 도우며 자랐다.

1차세계대전 후 세일즈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동생 아돌프(Adolf)가 집에서 제작한 운동화들의 판매를 맡기로 하고 1924년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을 함께 설립했다.

동생이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열중하는 동안 형 루돌프는 독일 전역을 다니며 영업에 매진했고, 다슬러 운동화를 선택한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치면서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형제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 형과 달리 기술을 인정받은 동생은 군수물자를 납품하며 공장을 유지하게 된 것.

결국 오해와 반목으로 멀어지면서, 1948년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우라흐 강의 건너편에 자신만의 회사를 세운 형 루돌프 다슬러는 자신의 이름과 성을 따서 ‘루다(RUDA)’로 회사명을 정했다. 이에 동생 아돌프 다슬러도 같은 방식으로 지은 회사명 ‘아디다스’로 새 출발하게 되었다.

루다에서 ‘푸마(PUMA)’로 브랜드명을 변경한 루돌프 다슬러는 자신의 장점인 영업력을 십분 발휘하며 먼저 공격적으로 치고 나갔다.

첫 축구화 ‘아톰(ATOM)’에 이어 1952년 징을 탈 부착하는 ‘슈퍼 아톰(Super Atom)’을 내놓으며 축구 시장을 잠식해갔는데, 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했던 그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 축구 대표팀 감독과 마찰을 빚었다. 그는 그 틈을 타 대표팀과 손을 잡은 아디다스가 독일 축구팀과 함께 역사적인 역전승의 주인공으로 빛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절치부심한 푸마는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 팀의 펠레(Pelé)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른 에우제비우 다 실바(Eusébio da Silva Ferreira)의 후원사로서 존재감을 회복했고, 1968년에 출시한 축구화 ‘푸마 킹(Puma King)’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디다스를 따라붙었다.

이후 축구 황제로 등극한 펠레를 향해 스포츠 브랜드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가운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그와의 계약을 이루어낸 푸마는 단순히 펠레에게 푸마 축구화를 신도록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획기적인 마케팅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결승전 킥오프 직전, 전세계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시 주심에게 양해를 구하고 ‘푸마 킹’ 축구화의 끈을 다시 묶은 펠레. 이때 TV화면에 선명하게 잡힌 푸마의 로고는 아디다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치열한 경쟁의 역사를 이어가며 1974년 눈을 감기까지 동생과 화해하지 못한 루돌프 다슬러와, 그로부터 4년 후 세상을 떠난 동생 아돌프 다슬러는 고향 헤르초게나우라흐의 묘지에서도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잠들어있다.

펠레와 마리오 켐페스(Mario Kempes), 요한 크루이프(Johan Cruijff),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가 등장한 푸마의 1970~80년대 광고 캠페인
펠레와 마리오 켐페스(Mario Kempes),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가 등장한 푸마의 1970~80년대 광고 캠페인

◆ 유망주와 비주류 종목으로 눈을 돌린 푸마

루돌프 다슬러가 사망하면서 푸마의 경영권은 오스트리아 지사와 프랑스 지사에서 경험을 쌓은 두 아들 아르민(Armin)과 게르트 다슬러(Gerd Dassler)가 물려받았고, 아르민이 총책임자로 나섰다.

제품 개발과 유망주 발굴에 포커스를 맞춘 푸마는 훗날 독일의 축구 영웅으로 성장하는 19세의 로타어 마테우스(Lothar Matthaus)를 지원했고, 테니스 용품을 선보이면서 떠오르는 신성 보리스 베커(Boris Becker)를 후원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85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베커가 17세의 나이로 최연소 챔피언에 오르면서 투자에 성공한 푸마는 테니스 상품 라인을 확대하고 사업 규모도 키웠다. 하지만 점차 신흥 브랜드들의 기세에 밀려 재정이 악화되어, 결국 1989년 다슬러 형제는 스위스의 무역회사 ‘코사 리버만(Cosa Liebermann SA)’에 주식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침체기에 빠진 푸마를 되살린 건 30세의 CEO 요헨 자이츠(Jochen Zeitz).

1993년부터 지휘에 나선 그는 원가 절감과 인력 감축으로 회사를 재정비하는 한편, 이미지 마케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아디다스, 자유로운 나이키(Nike)와 차별화될 수 있는 '저항적인 언더독의 컨셉'으로 푸마를 어필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경쟁 브랜드들의 시야 밖에 있는 비주류 분야를 향해 공격을 개시한 푸마는 미식축구와 모터스포츠 용품 등을 추가로 제작했다. 이 가운데 2001년에 발표된 F1(포뮬러 원 자동차경주대회) 레이싱 슈즈 ‘스피드캣(Speed Cat)’이 캐주얼 슈즈로도 폭넓은 인기를 모으면서, 모터스포츠는 현재까지 푸마의 한 축으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또한 후원할 선수를 물색할 때도 푸마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선수들을 주시했다. 유럽과 북미에 비해 비주류 지역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스피디하고 탄력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푸마와 잘 어울렸기 때문.

그 결과 카메룬 축구팀과 자메이카 육상팀 등이 푸마를 착용했는데,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칭송 받기 이전의 우사인 볼트(Usain Bolt)와 미리 계약함으로써 푸마는 막대한 광고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푸마의 ‘테세우스 프로 스프린트(Theseus Pro Sprint)’를 신고 세계신기록을 세운 볼트를 위해 통기성과 유연성을 높인 ‘에보 스피드(eVo speed)’와 훈련을 도와주는 로봇 ‘BeatBot’ 등을 개발하며 협력한 푸마.

이렇듯 의외의 종목에서 성과를 거두며 영역을 넓힌 푸마는 반면 축구에서는 다소 위축되어갔는데, 2013년 축구선수 출신의 CEO 뷔욤 굴든(Björn Gulden)이 입성하면서 유럽 명문 클럽과 잇달아 계약하고 2019년부터 스페인 라리가의 공인구 제작을 맡는 등 축구 시장 잠식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사인 볼트를 내세운 푸마의 광고 캠페인
우사인 볼트를 내세운 푸마의 광고 캠페인

◆ 명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푸마의 스니커즈

최근 스포츠와 패션의 경계가 계속해서 옅어지는 추세이지만, 푸마는 태생부터 패셔너블한 이미지와 가까웠다.

일단 1958년부터 슈즈 옆면을 장식하고 있는 트레이드마크 ‘폼스트립(Formstrip)’부터 매끈하고 세련된 커브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디자인. 로고 역시 퓨마의 날렵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살려 멋지게 표현했다.

감각적인 스타일의 로고와 트레이드마크를 가지고 푸마는 1968년 스웨이드 소재의 스니커즈를 내놓았다. 가죽이나 캔버스 소재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흐름에서 부드러운 착용감과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제안된 ‘푸마 스웨이드(Puma Suede)’ 시리즈는 1973년 뉴욕 닉스 소속의 NBA 선수 월트 프레이저(Walt Frazier)를 위해 푸마가 특별한 버전을 출시하고 그의 별명 ‘클라이드(Clyde)’로 이름을 붙이면서 인기가 더욱 치솟았다.

이후 뉴욕의 브레이크 댄서들과 힙합 클러버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패션 스니커즈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은 푸마 스웨이드.

여기에 더해 푸마는 디자이너들과 연결고리를 만들며 본격적으로 패션 노선을 탔다.

1998년 패션쇼를 준비하던 독일 디자이너 질 샌더(Jil Sander)는 의상에 운동화를 매치시키기 위해 푸마에 문의했는데,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 당시 푸마의 CEO였던 요헨 자이츠는 아예 푸마와 질 샌더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 조합에 패션계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이를 계기로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게 됐던 푸마는 여러 디자이너들과의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고, 2006년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푸마x맥퀸’ 컬렉션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현재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발표하고 있는 패션 스니커즈들의 원조라고 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이렇듯 명품 세계와도 잘 어우러지는 푸마를 눈 여겨 본 패션 대기업 PPR(현 케링, Kering)이 인수에 나서면서 2007년부터 ‘구찌(Gucci)’,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발렌시아가(Balenciaga)’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 식구가 된 푸마.

대중과 더욱 가까워지는 방법으로 인기 셀럽들과의 협업도 시도해온 푸마는 2014년 팝 디바 리아나(Rihanna)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큰 성공을 거둔 데 이어 2018년부터는 미국의 ‘국민 여동생’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 ‘푸마xSG’를 전개 중이다. 또 힙합 거물 제이지(Jay-Z)에게 농구 부문을 다시 활성화시킬 디렉터 직을 맡겨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알렉산더 맥퀸이 디자인한 2014년 ‘푸마x McQ’ 컬렉션의 룩북
알렉산더 맥퀸이 디자인한 2014년 ‘푸마x McQ’ 컬렉션의 룩북

아디다스와 헤어진 후 다른 경로와 전략을 선택하며 성장해온 푸마.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서의 선전, 그리고 런웨이 진출 등으로 푸마는 경쟁 스포츠 브랜드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2018년부터 케링 그룹의 울타리에서는 벗어났지만, '스포티 시크' 장르를 개척한 트렌드 세터로서의 위용은 여전한 만큼, 스포츠 슈즈 분야를 침범하는 명품 브랜드들에 멋지게 맞서는 푸마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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