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칼럼]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의 야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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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칼럼]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의 야한 눈빛
  • 지예
  • 승인 2015.11.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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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눈을 바라보는 일은 온 영혼을 성감대로 만드는 행위

 

난 웬만해선 국물을 먹지 않는다. 거의 건더기만 건져 먹는다. 그런데 그 날은 국물까지 아예 싹 다 비워냈다. 난 분주해야만 했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그의 이야기에 집중해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눈을 바라봐야 하는데!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불편했다. 내가 애인을 두고 바람이라도 피웠냐고? 아니, 전혀. 애인도 없었고 그와 소위 말하는 ‘썸’타는 사이도 아니었다.

단지, 그의 눈빛은 바라보기 불편할 정도로 야했다.

 

아직도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일부러 나를 그윽하게 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그의 눈빛을 견뎌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아주 가벼운 말투로 캐주얼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표정 역시 가벼웠지만- 내가 그것을 감당하기는 무척 버거웠다. 나는 그 날 꽤 오랜 시간 그와 낮술을 즐겼다. 그런데 그 때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말 단 하나도! 난 정말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와 눈을 제대로 맞출 수 없으니 당연히 그의 이야기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 날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눈을 이따금씩 맞춘다 치더라도, 고개를 들어 그를 볼 때면 속으로 마음을 한 번씩 굳게 먹고- 마치 경극을 추는 중국 배우처럼 표정을 지은 다음에라야 가능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눈을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속이기 위함이었다.

‘난 긴장하지 않았어! 난 당신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 라고.

 

그의 야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그가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나의 어깨를 바라보면 내 어깨가 성감대가 된 듯 하고, 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가 나의 영혼에 대고 애무를 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아니, 그는 그저 쳐다보았다. 나 혼자만 바라보았다고 느낄 뿐이다. 그런 그의 눈을 절대 마주칠 수 없었다. 내 속 마음을 들켜 버릴까봐서.

 

흔히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그만큼 눈에는 수많은 진심들이 담겨있다. 대부분 포커페이스가 안 된다는 사람들은 눈동자를 어찌할 줄 모르는 자들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감정을 더 절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임경선씨가 트위터에 그런 말을 쓴 적이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함께 자고난 후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남자들은 섹스를 하며 상대인 그녀 눈을 바라보게 된다.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으로 인하여 만족하고 있는 표정을 본 남자들은 더 많은 희열을 느낄 것이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여자에게 무언가 해준다는 것과 그녀를 만족시킨다는 것에 크나 큰 기쁨, 더 나아가 존재의 이유를 실감하는 생물체니까.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어여쁘게 바라봐주고, 자신의 깊은 속을 탐닉하는 그 광경, 그리고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듯 바라봐주는 그 눈을 어찌 욕망하지 않겠나! 벌거벗은 상태에서 서로의 마음의 창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거룩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마담 드 스탈은, ‘남자의 욕망은 여자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여자의 욕망은 남자의 욕망을 대상으로 한다.’ 는 말도 남겼다.

그런 교감을 나눈 상태여야지만 섹스를 ‘Making love’ 혹은 ‘사랑을 나눈다’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위와 아래(?) 모두 이루어지는 찬란한 그 교감!

 

눈은 참으로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눈빛에 따라 천지차이가 나고 심지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소통이 가능하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는 이색적인 행사가 있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라는 행위예술가가 ‘낯선 이들과 1분간 눈 마주치기’라는 퍼포먼스를 펼친 것이다.

수많은 관객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이 예술 행위에 동참하기 위해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가운데 테이블에 마리나가 앉아 있다. 1m 쯤 거리를 둔 반대편 의자에 상대방이 앉으면 그녀는 잠시 감았던 눈을 뜨고, 낯선 이와 1분간 눈을 마주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쑥스러워 눈을 자주 깜빡거리기도 하고, 입을 어색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눈을 맞춘다는 것 하나만으로 편하게 앉아있지 못하고 온 몸은 긴장감으로 인해 쭈뼛거리게 된다.

 

▲ 2010년 뉴욕 모마(MOMA) 미술관에서 유고슬라비아 출신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개최한 퍼포먼스 현장에 그의 연인이었던 우베 라이지펜이 22년만에 찾아와 퍼포컨스에 참여하고 있다.

 

퍼포먼스가 어느덧 무르익을 무렵, 여느 1분 전 처럼 마리나는 다음 상대를 기다리며 눈을 감는다. 관객들 사이로 한 노신사가 가운데로 걸어 나온다. 가벼운 컨버스를 신은 그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순간 온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있는 마리나는 궁금한 마음에 눈을 뜬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그만 울컥 눈물이 솟고, 입에는 조금은 수줍은 듯, 그러나 깊은 미소가 걸린다. 그녀와 눈을 맞춘 노신사의 눈 역시, 둘이 꼭 맞춘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는 1970년 대에 그녀와 함께 예술 활동을 했던 파트너이자 연인, 우베 라이지펜이었다! 우베 역시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깊은 미소를 짓고, 모든 관객들은 그들의 조우에, 그들의 눈과 눈 사이 간격 사이에서 닿을래야 닿지 못하는 감격의 포옹을 읽어내고 박수친다.

그들은 이별의 순간에도 이별에 관한 퍼포먼스를 함께 선보인 후 헤어졌었다. 그리고 몇 십 년뒤,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들 사이에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 많을까? 얼마나 묻고 싶던 것이 많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조우는 가히 완벽했다. 관객들은 이들의 눈과 눈 사이에서 그들의 대화를 읽을 수 있었다.

마리나는 ‘어쩜 당신은 날 이렇게 놀래킬 수 있어요! 어쩜 당신!’하고 말하는 것 같았고, 우베는 ‘당신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 뭘 이런 걸로 놀래고 그래?’ 하며 장난끼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당신다운 발상이야! 훌륭한 퍼포먼스로군!’ 이라며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 왜 이렇게 늙었어요?’ 하고 마리나가 물으면, ‘그래? 그래도 난 여전히 멋지지 않아? 당신은 아직도 예쁘군!’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안에는 그리움, 반가움, 감격, 회한, 애증, 미더움, 후회, 섬김 모든 감정들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었다. 그들은 눈이라는 투명한 터널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위는 수많은 음악을 내포하기도 했으며, 마치 영화 비포 시리즈(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같기도 했다.

1분이 거의 다 될 때쯤- 마리나는 그만 스러질 듯 테이블에 두 손을 쭉 뻗고 엎어져버렸다. 그러자 우베 역시 두 손을 뻗어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마리나는 그런 우베의 손을 꽉 쥐었다. 그들은 역시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사람과 퍼포먼스를 지켜보던 이들 모두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들의 지난 세월을 돌이켰던 것이다. 어떤 관객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요즘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이 조금 쑥스러워진 것 같다. 지하철이나 버스만 타도 다들 스마트폰 하기 바빠서 낯선 이들과 눈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크던 작던 액정을 향해 무언가를 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는 낯선이들로부터 ‘소통해요’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웬 소통? 어떻게 소통을 해요? 우린 눈을 마주칠 수 없는걸요. 그건 가짜예요!

 

얼마 전 야한 눈빛을 가진 그의 소식을 들었다. 눈 둘 바를 필요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 누구나 알만한 아주 근사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연애를 시작했다고. 나에게 소식을 전한 이는 ‘그 형 멋있는 건 알았지만, 진짜 능력자네!’ 했다. 난 그의 진짜 능력이 뭔지 안다. 온 몸의 세포를 깨우고, 예민하게 만들고, 섬세하게, 신경질적으로, 얼어붙게, 쭈뼛거리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 눈!

누군가가 향수는 말이 없는 수다쟁이랬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눈빛은 손이 없는 어루만짐이다. 온 영혼을 성감대로 만드는- 영혼의 어루만짐! 아, 끝내주게 야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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