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⑤ 현대 영화의 시작, 최초의 블록버스터 '대열차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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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⑤ 현대 영화의 시작, 최초의 블록버스터 '대열차 강도'
  •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승인 2020.04.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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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 만들어낸 첫 작품 평가
1903년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제작
에디슨 회사직원, 에드윈 S. 포터 감독 작품
문동열 래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뤼미에르의 영화는 영화라는 거대한 산업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뤼미에르 영화의 모습은 현재의 영화 산업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초기 영화 (first stage movie)라 불리는 1890년대의 영화는 필름의 길이, 카메라 기능 등의 기술적인 한계와 제작 노하우가 그렇게 쌓이지 않았던 시기였다.

조르주 멜리에스를 비롯한 초기 영화 제작자들의 노력들이 점점 쌓이고, 새로운 기술 산업인 영화 비즈니스에서 거대한 문화 산업으로의 성장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소위 대기업들의 영화 산업 진출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초기 영화들이 현대 영화 산업과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된다.

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가 바로 190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1903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탄생하면서 뤼미에르의 첫 영화 상영 8년만에 비로소 영화는 현재와 같은 거대 산업으로의 도약을 시작한다.

<The Great Train Robbery>, 흔히 <대열차 강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있는 이 작품이 바로 영화 산업의 도약을 이끌어냈다고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대열차 강도>는 유명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제작한 작품으로 에디슨과 에디슨 회사의 직원이었던 에드윈 S. 포터가 감독한 영화이다. 이들은 1903년에 러닝타임 12분의 무성영화로 이 작품을 제작하여 개봉했다.

이 작품은 현대 영화적인 내러티브를 처음 도입한 영화로 알려졌으며, 이 영화가 당시 일으킨 흥행 열풍은 현대 영화 산업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영화의 인기로 인해 영화만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에 대한 아이디어가 등장했고, 몇 년 안가 전 세계에 영화관이 대중들을 위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03년 첫 상영된 '대열차강도' 포스터. 사진제공=레드브로스.
1903년 첫 상영된 '대열차 강도' 포스터. 사진출처=레드브로스.

현대 영화의 내러티브가 시도되다

<대열차강도>는 먼저 두 명의 열차 강도가 전신국에 침입하여 오퍼레이터를 위협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총으로 오퍼레이터를 위협하며 다가오는 열차에게 역에 멈춰 물탱크에서 물을 보충하라는 가짜 명령을 보내게 한 후 총으로 그를 때려 기절시킨 후 꽁꽁 묶어버린다.

물탱크 근처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일당들은 가짜 명령대로 기관사가 열차에 물을 채우는 사이에 열차 내로 몰래 숨어든다. 몰래 숨어든 강도들은 두 팀으로 나눠 먼저 한 팀이 열차의 차장을 총격전 끝에 죽이고, 다이너마이트로 귀중품 상자를 폭파시켜 그 안에든 귀중품을 훔쳐 달아난다.

나머지 팀은 기관차로 접근하여 격투 끝에 기관사들을 제압하고 강제로 기차를 멈추게 한 다음 기관차를 분리한다. 맞아서 기절한 기관사를 달리는 기차밖으로 밀어던져버리는 (자세히 보면 마네킹이다) 잔악함까지 보이는 이들 강도는 멈춘 열차에서 승객들을 내리게 하고, 총으로 그들을 위협하여 승객들의 귀중품까지 탈탈 털어간다.

이 와중에 한 승객이 탈출하려 하지만, 강도들은 즉시 총으로 그를 쏘아버린다. 막대한 전리품을 싣고 산적들은 기분좋게 기관차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말을 묶어놓은 계곡에서 멈춰 기관차에서 내린 강도들은 말을 타고 유유히 사라져 강도 행각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시각 전신국에 묶여있던 오퍼레이터는 깨어나 도움을 요청해보려 하지만 온몸이 묶여 다시 쓰러지고 마침 식사를 가져다주러 온 딸에게 발견되어 풀려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딸은 책상에 있는 컵에 있는 물을 끼얹어 그를 깨운다.

다시 장면은 바뀌어 마을의 댄스홀, 즐겁게 춤을 추고 있던 남녀들이 보이고 한 낯선 이가 댄스홀에 들어서자, 짖궂은 남자들은 그를 데리고 와 발 주변에 총을 쏴 강제로 춤을 추게 만드는 장난을 친다. (극의 스토리와는 관계없는 코믹한 장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들에게 정신을 차린 오퍼레이터가 댄스홀에 달려 들어와 강도에 대한 사실을 알리고, 댄스홀에 있던 남자들(자경단 정도 되는 것 같음)은 곧바로 총을 들고 추격에 나서 강도들을 따라잡는다.

말위에서의 총격전과 총에 맞아 떨어지는 강도. 추격을 간신히 따돌려 전리품 분배를 하던 강도들 뒤로 남자들이 접근하고, 마지막 총격전 끝에 강도들은 모두 사살되고 뺏긴 귀중품들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 장면. 강도단의 리더 (Justus B. Barnes라는 배우)가 갑자기 클로즈업으로 화면 가득 나타나 관객들을 응시한 다음 총을 꺼내 관객들을 향해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총을 발사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내러티브와는 관계가 없는 장면이지만, 당시 관객들에게는 문화적인 충격까지 선사했고, 이후 영화사를 설명하는데 중요한 명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상영 당시에는 이 마지막 장면에 놀라 총에 맞지 않으려고 도망 나가는 관객들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열차 강도의 라스트 신은 영화사 명장면 중 하나이다. 주인공이 관객을 향해 총알이 떨어질때까지 발사한다. 사진출처=레드브로스.
대열차 강도의 라스트 신은 영화사 명장면 중 하나이다. 주인공이 관객을 향해 총알이 떨어질때까지 발사한다. 사진출처=레드브로스.

단순하기 그지없는 줄거리이기는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영화사적 의미에서 <대열차 강도>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하는 점은 바로 최초로 현대 영화적인 내러티브가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1890년대 초기 단계의 영화들은 댄서가 춤을 추는 장면이라든가, 말이 달리는 장면같이 대부분 한두 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진 짧은 클립들이었다.

조르주 멜리에스같은 초기 영화제작자들이 이러한 시퀀스를 여러 개 연결하여 기초적인 형태의 내러티브를 구축해서 ‘스토리’라는 것을 전달하기 시작했지만, 이는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적인 시퀀스 연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초기 영화는 연극 무대를 단지 영화라는 새로운 기술로 옮긴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열차강도>가 시도한 새로운 내러티브 전개 방식은 영화를 무대를 벗어난 새로운 공간으로 인도했다. 당시 골드러쉬의 전설이 남아있던 미국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최초의 서부 영화로 불리기도 하는 이 작품은 기존의 극장 무대에서 이루어지던 촬영 방식에서 벗어나 대부분의 장면들이 야외에서 촬영된 최초의 영화 중 하나였다.

게다가 현대 액션 영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악당. 총격전, 추격전 등이 포함돼 있어, 현재 액션 영화나 범죄, 스릴러 영화들의 원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열차 강도>는 여러 부분에서 영화사를 다시 쓰게 만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열차 강도의 주요 장면 들. 사진출처=레드브로스.
대열차 강도의 주요 장면 들. 사진출처=레드브로스.

제작기법의 혁명

<대열차 강도>가 보여준 여러 혁신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촬영과 편집 기법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에드윈 S. 포터 감독은 조르주 멜리에스 영화에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에디슨 컴퍼니에 입사한 그는 1896년에 스콧 마블랜드가 쓴 실제 열차 강도에 근거한 소설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대열차 강도>를 제작하면서 먼저 크로스 컷팅 (cross-cutting)이라는 기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기법을 선보였다.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교차하여 다른 시퀀스로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전신국의 오퍼레이터와 강도들의 서로 다른 타임라인을 보여주었고, 결국 이 타임라인은 오퍼레이터가 결박에서 풀려나 마을의 보안관들에게 강도 사실을 전달하며 이 보안관들이 강도들을 추격하여 따라잡는 장면에 이르러 하나의 타임라인으로 합치게 된다.

대열차 강도의 감독 에드윈 S.포터. 사진출처=레드브로스.
대열차 강도의 감독 에드윈 S.포터. 사진출처=레드브로스.

굉장히 단순히 보이는 기법일 수도 있겠지만 영상 콘텐츠 제작자인 필자가 볼 때에는 이 편집 기법은 그야말로 혁명에 가까워보인다. 인류가 불을 얻어 식생활이 개선되었듯이 이러한 크로스 컷팅 기법으로 인해 영상 콘텐츠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게되었다. 이는 몇 천년 동안 이어져내려오던 무대예술의 한계를 순식간에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겠다.

또 촬영적인 면에서도 포터는 캐릭터가 카메라를 따라 움직이는 패닝 샷을 사용하여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고, 무대를 바라보는 앵글이 아닌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 앵글을 사용했다.

기차 위에서 강도들의 시점으로 촬영하는 장면이나 말을 타고 보안관들과 강도들이 서로 추격전을 벌이며 총을 쏘는 장면들은 이전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앵글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촬영 기법들은 개별적인 장면들이 서로 잘 이어질 수 있게 만드는 한편, 긴박감을 더해 관객들의 긴장감을 높일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포터는 이 작품에서 기존의 영화 문법들을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영화 문법을 제시했다. 이전까지 본적이 없었던 새로운 영화 문법과 편집과 촬영 기술 덕에 관객들은 지금까지 본 다른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얻었고, 이는 <대열차 강도>의 어마어마한 흥행을 이끌어 냈다.

영화 역사를 새로 쓴 <대열차 강도>

에디슨 컴퍼니는 1903년 뉴욕에서 첫 상영을 하고 11개 극장에 동시 개봉을 했다. 당시 영화 포스터에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영화보다 우월하다’라고 했고, 그 선전문구에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동의했다.

<대열차 강도>의 총 제작비는 150달러 정도로 현재로 따지면 약 4300달러 (한화 약 52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현지 촬영이 오히려 무대를 설치하며 촬영한 조르주 멜리에스같은 작품보다 더 제작비가 적게 들었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이렇게 적은 제작비로 에디슨 컴퍼니는 엄청난 대흥행을 일으켰고 <대열차 강도>의 성공은 이후 많은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했으며 이후 웨스턴 무비라 불리우는 서부 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오게된다.

많은 학자들은 <대열차 강도>가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보기도 한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앞서 말했듯 일명 <니켈로디언 (nickelodeon)>으로 불리는 입장료 5센트 영화관이 확대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최초의 니켈로디언 영화관 중 하나였던 펜실베니아의 영화관이 개관했을 때의 첫 상영작이 바로 <대열차 강도>였다.

이후 1908년까지 미국에 약 8000개의 니켈로디언 영화관이 생겨났으며, 이 영화관의 주요 상영작 중 하나가 바로 <대열차 강도>였다. 이러한 니켈로디언을 통해 <대열차 강도>는 1903년 개봉 이후 전 세계적으로 거의 10년 넘게 상영이 이어질 수 있었다. 

당시 니켈로디언의 풍경, 사진은 캐나다의 토론토여서 간판이 프랑스어로 되어있다.사진출처=레드브로스.
당시 니켈로디언의 풍경, 사진은 캐나다의 토론토여서 간판이 프랑스어로 되어있다.사진출처=레드브로스.

새로운 편집, 촬영 기술의 시도, 내러티브를 극적으로 구사하며 새로운 영화의 역사를 쓴 대열차 강도는 다양한 현대 영화 장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기술의 탄생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여기에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들어 내지만, 그 기술이 대중적으로 확대되고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전환점들이 요구되어왔다.

이런 면에서 <대열차 강도>는 영화사에 있어 아니 콘텐츠 산업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포터의 여러 실험적인 시도들은 새로운 기법에 대한 과감한 시도는 언제나 거대한 성공을 불러 온다는 사례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성공 스토리를 통해 수 많은 창작자들은 이후에도 제작 기법의 발전을 통해 대중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초석이 됐다.

그러한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거대한 콘텐츠 산업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열차 강도>가 현대 콘텐츠 산업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문동열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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