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경 칼럼] 헬리콥터 머니에 두려움 떨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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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경 칼럼] 헬리콥터 머니에 두려움 떨쳐라
  •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 승인 2020.04.07 14: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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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머니'의 진짜 의미는 '화폐의 추가적인 발행'
화폐 발행 없는 재난 지원금은 '헬리콥터 머니'가 아니다
국가부채비율 증가, 초인플레 우려할 것 없어
유승경 부소장
유승경 부소장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코로나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많은 정부들이 재난을 당한 국민들에게 현금을 직접적으로 제공하는 ‘재난 지원금’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정책은 미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이 창안한 '헬리콥터 머니'에 비유되곤 한다.

‘헬리콥터 머니’는 심각한 경제 충격이 있을 시에 마치 “하늘에서 돈을 뿌리듯이” 돈을 경제 내에 추가하여 수요 부족을 타개하는 경제정책의 은유적 표현이다. 이 방안은 오랫동안 경제이론의 지엽적인 자리에 있었지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책적 발상의 중요한 근거로 떠올랐다.

재난 지원금은 국내외적으로 이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논쟁이 끝나지는 않았다. 현 위기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이 정책의 지속이나 확대 여부를 두고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재난 지원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원 대상의 범위, 지원 규모, 재원 조달 방안 등을 두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만약 현 사태가 장기화되어 추가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이 제기되면, 정치적, 정책적 입장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어 논쟁이 첨예화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가 실행하고 있는 ‘재난 지원금’은 헬리콥터 머니의 은유가 함의하는 바를 제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다. 헬리콥터 머니는 ‘화폐의 추가적인 발행'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재정의 용도 전환이나 조기 집행 혹은 재정 지출의 양적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 머니의 함의

'뉴욕 상공에 돈이 떨어진다'고 상상해보자. 은행권이 하늘에서 떨어져 거리를 뒤덮는다. 사람들은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 쓸어 담을 것이다. 그 지역의 가게들은 문을 열고 추가로 물량을 가져오고 종업원을 고용해서 돈을 주운 사람들을 가게로 안내할 것이다. 은행들도 영업시간을 늘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돈 한 푼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사실 바로 이것이다. 헬리콥터 머니의 요체는 돈을 추가적으로 경제에 투입하여 시민들에게 더 많은 구매력을 주고, 그 구매력에 힘입어 기업이 더 많은 것을 생산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재난 지원금'은 기존에 확보되어 지출이 예정되어 있던 재정을 '현금 이전'의 방식으로 '조기에' 집행하는 것일 뿐 추가적인 구매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다음에 다른 데 쓸 돈'을 재난 지원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물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지방정부가 추가적인 재원을 향후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지 않는다면, 위기가 극복되고 난 후 경제의 회복에 필요한 재정이 부족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헬리콥터 머니는 발권력이 없는 지방자치단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중앙은행을 가지고 있는 중앙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재난 지원금이 본래적 의미의 헬리콥터 머니가 되려면 중앙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서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여 실행해야 한다.

'헬리콥터 머니' 위해선 국채 발행과 양적완화가 필요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는 최선의 방법은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중앙은행이 매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재정 자금을 중앙은행을 통해서 조달하는 것을 '부채의 화폐화(debt monetization)'라고 부른다. 부채의 화폐화는 정부가 적자 재정을 위해서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은 국채를 직접 매수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영국, 일본 등이 실행해온 정책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재난 지원금을 위해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에 반대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다 보니 정부도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겠다는 소극적 입장을 내보이기도 한다. 국채 발행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최대한 다른 용도의 재원을 재난 지원금의 지급에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한국은행도 시중의 자금 수요에 대해서는 무제한의 신용을 제공한다는 방침을 취하고 있지만 국채나 회사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에 맞서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예외적인 상황에 직면하여 예외적인 수단을 과감하게 동원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헬리콥터 머니'이다. 헬리콥터 머니가 본래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여 재난 지원금을 제공하고,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를 통해서 재원을 제공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재난 지원금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큰 논거는 재정 건전성을 훼손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언론은 작년에 국가부채 1700조원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고, 재정 관료들도 재정 건전성을 내세워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데 소극적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 재정 건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차원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발행 시장에서 매수하든, 유통 시장에서 매수하든 국채를 보유하게 되면 정부 부채의 증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앙은행은 국채를 손실의 부담 없이 만기까지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의 이자가 정부의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곤 한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국채를 보유할 경우 정부가 지불한 이자는 중앙은행의 소득이 되어 다시 재무부로 이전되기 때문에 이자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정부는 중앙은행에서 조달한 화폐를 국민들에게 지급하여 소비를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수익 감소와 그에 따른 대량 실업을 막을 수 있다. 정부가 이를 통해서 성장률을 지지하고 경제 회복을 조기에 이뤄낸다면 늘어난 정부 부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 부채 비율이 높아지면, 재정 위기나 외환 위기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단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비율은 GDP 대비 약 38.1%로서 미국(103%), 일본(240%), 영국(112%) 등에 비해 아주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당장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국채가 원화로 발행되었고, 그 소유자들도 대부분 내국인이다. 따라서 유로존 국가와는 달리 발권력이 있는 한국 정부가 지불 불능 사태에 빠질 논리적 가능성은 없으며, 외환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정부가 재정의 자금을 조달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시기에 시행되었다. 미국은 1942년부터 9년간 만기 별로 국채 금리의 상한을 정하고, 재무부 채권이 특정 가격에 시장에서 전부 소화되지 않으면 나머지 채권을 미연준이 전부 매수하는 방식으로 국채 가격을 지지하고 금리의 상한을 유지했다.

일본도 유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32년 일본 재무상 타카하시 고레키요는 재무성이 발행한 국채를 민간 부문이 아닌 일본은행이 화폐 발행을 통해 직접 매수하도록 하여 대공황을 조기에 극복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와서 일본이 시행했고 2008년 위기 이후 미국, 영국, 유로존이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도 중앙은행이 국채 매수를 통해서 재정을 조달하는 정책이다.

중앙은행에 의한 헬리콥터 머니

재정건전성이 계속 문제가 된다면 정부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직접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안이 사실 '전형적인' 헬리콥터 머니이다. 프리드먼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단기적으로 정부의 재정정책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헬리콥터 머니의 은유를 사용했다. 본래적 의미의 헬리콥터는 통화당국인 중앙은행이다.

중앙은행이 직접 국민에게 지급하도록 하자는 주장은 유로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유로존 국가들은 재정 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유지해야 하는 재정 규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화폐를 통합하면서 재정 적자 비율의 차이로 인해 나라 간에 부가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정 규율을 맺었다. 이로 인해 현재 유로존 국가는 최근까지 재정의 재량적 지출이 법적인 제한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유로존 경제 침체의 원인이다.

중앙은행이 직접 시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면 정부 부채 비율이 높아지는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유로존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이 헬리콥터 머니를 제공하도록 하자는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중앙은행이 현금을 지급할 경우, 중앙은행은 회계적으로 손실을 본다. 중앙은행도 은행이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채권이나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화폐를 공급하는데, 이 경우에는 화폐 제공의 대가로 어떤 것도 받지 않는다. 물론 형식적으로 헬리콥터 머니를 영구채(만기 없는 국채)로 처리하면 되지만, 사실상 중앙은행이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이 발권력이 갖춘 중앙은행이 이 문제로 인해 파산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재량적인 재정정책을 펴는 데 어떤 법적인 제약이 없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편법을 취할 필요는 없다. 사실 한국은행은 회사채를 매입하는 데에도 주저할 정도로 보수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같은 파격적인 정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중립적으로 물가안정에 기여한다는 것이 규범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규범에 반하는 정책을 취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은 상황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축통화 달러와는 다르다고?

헬리콥터 머니와 양적완화에 대한 반대 논거로서 "한국의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그 입장이 기축통화가 아니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논거를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달러와 달리 국제적 권위가 없는 한국 원화는 과다하게 발행되면 쉽게 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갖고 있는 것 같다.

달러가 확실히 원화보다 그러한 정책을 펴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달러는 국제 결제통화와 준비금 통화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외의 수요가 많다. 그래서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도 해외의 수요가 흡수할 여지는 크다.

그러나, 현재 국제통화체제에서 규약이나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기축통화는 없다. 1971년 미국의 달러가 금과 분리된 이후 세계 모든 나라의 통화는 법정 불환 통화이다. 그 화폐의 신뢰도는 그것이 통용되는 경제권의 역량에 의존하지, 특별히 금과 같은 상품에 의해서 가치가 보장되는 특수한 지위의 화폐는 없다.

사실 각 국가의 화폐가 통용력을 발휘하는 것은 해당 주권 국가가 그 화폐를 조세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유지되면서 원을 조세로서 받아주는 한 원의 통용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이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헬리콥터 머니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비슷하다.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헬리콥터 머니를 제공하면 인플레이션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디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우려하는 사태는 1920년대에 독일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전쟁이나 국가 체제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 아닌 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임 있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책을 주도하는 한에서 헬리콥터 머니와 양적완화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권 경제는 양적완화를 통해서 돈을 시장에 쏟아 부었고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하지만 그 나라들의 인플레이션율은 모두 목표 수준인 2%에 미치지 못해 디플레이션의 우려를 잠재우지 못했다.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예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의 위기는 전례가 없는 예외적인 위기이다.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예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통상적인 정책으로 타개할 수 있다면 그 상황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과감한 적자 재정을 통해 재난 지원금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선진권의 중앙은행처럼 양적완화를 통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경제 안정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we will do whatever it takes)'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부소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 경제연구원과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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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영 2020-04-08 10:28:12
부소장님 주장과 논리면 '국가배당금'의 주장처럼 코로나 긴급지금 개인당 1억 원 지급도 전혀 문제 없어 보이는데, 차이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