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칼럼] ‘저... 라면 먹고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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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칼럼] ‘저... 라면 먹고 갈래요?’
  • 지예
  • 승인 2015.11.1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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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라면…우리를 허기짐에서 벗어나 충만과 가쁨에 이르게 한다

라면을 먹고 자면 붓는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몇 살쯤이었을까? 아니, 그보다 정확하게. 그것을 통렬히 깨달은 것은 몇 살 때였지? 아마도 사춘기 즈음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학교나 학원에 관심 가는 이성이 생길 때, 또 그런 것을 느낄 만한 나이에 말이다. 아마 이때 쯤 없는 용돈을 모아서 길거리에서 파는 화장품들을 사서 서투르게 발랐던 걸 생각해보면 라면을 먹고 잔다는 것의 의미를 꽤나 통렬히 느꼈을 법한 나이라 치더라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먹고 자면 붓는다손 치더라도 라면은 그것을 감내할 만큼 맛이 좋다. 어느 여자 연예인에게 다이어트 비법을 묻자, ‘어차피 내가 아는 그 맛’이기 때문에 참을 만 하다는 인터뷰 일화가 있었다. 뭐, 다른 음식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라면의 맛이라는 건, 내가 분명하게 정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긴다. 아니, 그 맛을 알기에 더 그리운 지도 모른다.

 

라면의 종류가 참 다양해진지 오래다. 그렇지만 아직도 옛 라면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먹던 라면만 먹는다. 예를 들자면 우리 집안 어르신들은 라면의 원조는 삼양라면이라며, 삼양라면만 드신다. 다 비슷비슷한 라면 같지만, 그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천지 차이로 다가오는 것, 그게 라면이다. 물론 다양한 라면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 중에는 시중에 파는 다양한 라면도 모자라 ‘우유 라면’이라던가 ‘토마토 라면’, 그리고 ‘짜파구리 (짜파게티+너구리)’ 같은 혁신적인 레시피까지 개발해낸다.

 

이렇게 능히 변신을 꽤하는 이 음식의 또 다른 묘미란 바로 굉장한 ‘분위기파’라는 데에 있다. 몇 년 전 겨울, 지인들과 모여 등산을 간 적이 있었다. 정상에 오르자, 누군가 배낭에서 컵라면 몇 개를 꺼냈다. 모두들 놀라하며 그걸 준비할 생각을 언제 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뭐니뭐니해도, 산에서 먹는 꼬들꼬들한 라면이 최고죠!

버너 없이 끓여먹는(?) 아니, 익혀먹는 라면은 생면을 불린다 싶을 만큼 면발이 엄청 꼬들꼬들하긴 했지만 그 나름의 묘미가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것이었다.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 온 몸의 탄수화물과 염분을 소진한 우리에게는 포상과도 같은 한 끼였음은 오해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과연 등산 가서 먹는 라면만 일품이더냐! 어릴 적 난 수영을 했었는데, 내 생각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수영 후에 먹는 라면이 일품이라고 하고 싶다! 누군가는 소주 안주로의 라면이 일품이요, 독서실에서 먹는 라면이 일품이요, 군대에서 먹는 라면이 일품이요, 해장으로 먹는 라면이 일품이요, 스키 탄 후에 먹는 라면이 일품이요, 찌개에 넣어먹는 라면이 일품이요, 몰래 먹는 라면이 일품이요....... 다들 제각각 최고의 라면이 존재한다. 라면은 이렇게 분위기를 맞추는 데 타고난 음식이다. 아니 심지어, 어느 자리에서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마치 그 ‘뭐니 뭐니 한 라면’을 먹기 위하여 등산을 하고, 수영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스키를 탄 것처럼 느끼게 말이다.

▲ 지난 8월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5 대한민국 라면박람회. /연합뉴스

 

"인스턴트 라면을 끓일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수 있다지만,

인스턴트 라면을 주면 그 무엇도 가르쳐줄 필요 없이 평생 먹을 수 있다."

- <뉴욕 타임즈> 신문기사 중에서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대단한 음식’이 일본음식인줄 안다. 그러나 사실상 유래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에서 쓰는 한자어로는 '납면(拉麵)'이라고 한단다. 메이지유신 이후, 중국인들이 닭이나 돼지 뼈, 멸치 등을 우려 만든 국물에 면을 말아 노점상으로 팔았는데 이후 일본 전역에 전파된 것이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중화요리로 구분이 되었었다. 일본에서는 처음 설렁탕 국물에 면을 말아 먹었으니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는 구호물품으로 밀가루가 넘쳐났다. 당시 사업가였던 안도 모모후쿠는 전쟁 속에 부모님을 잃고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배고픔의 공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늘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배고픔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의 해결책이 생기기도 전에, 그는 사업에 큰 좌절을 겪으며 상처를 안게 되어 결국 자살을 하기도 마음먹는다. 그는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 하자는 생각에 작은 선술집을 찾는다. 홀로 생전 마지막 술잔을 채우며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주방장이 어묵을 튀기는 것을 지켜보던 그.

‘번뜩!’

그의 머릿속에 앞으로 세상을 구원할 만한(?) 아이디어 하나가 스친다. 밀가루 반죽을 입힌 어묵이 기름에 튀겨지자 순식간에 수분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만일 면도 이런 식으로 건조하여 튀겨내면 오래 보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죽지 않고, 1958년에 ‘닛싱 치킨 라멘’이라는 인류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해 낸다.

 

'먹는 것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聖職)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식족세평(食足世平),

'세상을 위해 먹는 것을 만든다'는 식창위세(食創爲世).

(안도 모모후쿠의 자서전 중에서)

 

위대한 사람들은 늘 이렇게 영화 같은 스토리를 말하곤 하는데,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의 사업 실패, 그리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기까지의 여정들이 모두, ‘인스턴트 라면’의 탄생을 위한 여정이 아니었나. 이후 그는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 라면 개발에 앞장섰으며 실제로 한 일본인 우주비행사가 우주 스테이션에서 그의 라면을 먹었다. 그는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하긴, 그래도 질리지 않을 맛이었겠지!

 

이렇듯 그의 끝없는 인류애로 인한 공로로 만들어진 라면은, 아시다시피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특히 인구대비 라면 소비 율이 전 세계에서 1등인 나라 역시 대한민국. 우리나라 국민들이 평균 일주일에 5개의 라면을 소비한다고 하니,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라면을 먹는다는 얘기가 된다. 60년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가난했던 나라는 한국이다. 당시 삼양식품은 기업 차원에서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오게 된다. 국민들의 단백질 보충을 위하여 소고기 원료로 국물을 낸 라면을 출시하였고, 이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며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하기도 한다. 라면은 우리 이전 세대들에게 눈물의 음식이요, 다시 일어서게 하는 맛이요, 한국의 맛일 것이다. 그렇게 경제 성장을 이뤄낸 이후, 라면은 온 세대가 간편하게 다함께 어울려 혹은 혼자서도 손쉽게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아마도 우리 한국 사람 유전자에는 라면의 맛을 느끼면 힘이 솟는 유전자가 들어있나 보다. 등산을 가서, 학교 쉬는 시간에 몰래, 군대에서, 편의점에서, 고시원에서도 라면을 찾는다.

그런데 이렇듯 편하고 매력적인, 세상 무엇보다 흔한 음식이 ‘사랑’의 모습과 닮아 있음을 참 많이 느낀다.

얼마 전 유행했던 말 중에 ‘라면 먹고 갈래?’가 있다. 사실 이것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했던 대사이다. 남자 주인공(유지태)과 가까워질 무렵, 늦은 밤 그녀를 데려다 준 그에게 수줍은 듯, 덤덤한 듯 묻는다.

저, 라면 먹고 갈래요?

그 날 밤, 그들이 라면만 먹지는 않았으리라. 라면을 먹고 가라니, 이것은 얼마나 매력적인 말인가! 아마 그녀가 먹고 가라고 한 것이 라면보다 대단했다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거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소박하나 솔직하게 그렇게- 그녀는 그날 밤 그를 붙잡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얼마 전 그 대사는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어 유행이 되었고, 수줍은 남녀들 사이에서 작업 멘트로 사용되어져 오게 된 것이다.

 

사랑과 라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왜 그 상황에서 ‘라면’이었어야 했나. 왜 모두가 그 대사에 그토록 공감했던가.

 

흔히들 사랑을 ‘눈물의 씨앗’이라고들 한다. 사랑을 해서 흘리는 눈물은 대부분 또르르 흐르지 않는다. 주륵주륵 펑펑, 에다가 콧물까지 훌쩍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거울을 보면 쌍커풀은 두 세 겹에다가,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빵빵해져 있다. 우리는 사랑이 언젠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다.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자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의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은 천국을 미리 엿보는 것, 이라고 했다. 우리는 천국을 미리 엿보았기 때문에 다시 그 찬란함을 느끼기 원하는 것이다. 눈물? 그 찬란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흘릴 것이다. 이런 사랑은 라면과 참으로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우리는 라면을 먹고 자면 분명 후회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냄비를 올린다. 때로는 밥까지 말아 국물까지 싹 다 비운다. 다음날 거울을 보면, 마치 펑펑 울고 난 사람처럼 얼굴이 금방 터질 듯 빵빵해져 있다.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왜 매일 밤 라면에게 지고 마는가? 그것은 마치 사랑의 기쁨을 알듯, 라면의 맛을 알기 때문이다. 밤늦게 먹는 라면이 나에게 어떠한 따뜻함과 든든함, 숙면의 기쁨을 주는 지! 그 어떤 대단한 음식도 아닌, ‘라면’만이 오로지 그러하다. (때로는 치킨이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러니 종종 밤마다 라면이 그리운 것이다. 너무도 그 맛을 잘 알기에. 외로움과 배고픔의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둘 다 결국 ‘허기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과 라면, 그 의로운 것들은 우리를 허기짐으로부터 벗어나 충만한 기쁨에 이르게 해준다.

 

라면, 아니 정확하게 ‘인스턴트라면’의 탄생 비화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그러한가. 라면은 사랑의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라면은 또 하나의 교훈을 준다. 라면은 과연 대단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전 인류가 허기짐으로부터 해방될까, 고민한 안도 모모호쿠의 열정과 노력은 대단했다. 사랑이 참 그런 모습이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상대방에게 주지 못할 손치더라도, 어떻게 상대방에게 기쁨을 줄까 고민하는 모습들. 그게 사랑이 아니면 무어라고 설명이 가능할까. ‘미스터 누들’, 안도 모모호쿠 덕분에 어쨌든 추운 겨울날, 집에 데려다 준 코가 빨개진 남자친구에게 뜨끈한 한 끼를 대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아마 남자친구에게는 그 어떤 한 끼보다 따땃하지 않을까. 그것은 누군가 배고픈 인류를 구원했듯이- 한 사람의 마음을 든든히 채워주고 구원이 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먹을 것이 너무도 풍족해서 오히려 병에 걸리는 시대다. 그러나 아무리 이 세상에 먹을 것이 넘쳐난다고 한들, 라면에 대한 인류의 사랑은 앞으로 오래토록 지속될 것 같다. 세상에 아무리 즐거웁 게 만드는 것이 많아도 사랑이 제일이듯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들의 맛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맛을 아는 자는 행복하다. 그리워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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