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모리 오가이 ‘아베 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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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일본 군국주의 망령이?...모리 오가이 ‘아베 일족’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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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가·평론가·군의관 모리 오가이...19세기 일본문단의 대표작가중 하나
'아베 일족', 명예 지키기 위해 할복자살하는 사무라이와 그 일족의 비극적 최후
코로나19 대응에 자신의 능력 과신하는 일본...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전주의’에 빠진건 아닌지
일본 도쿄의 시나가와역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고 있다. T사진=AP 연합뉴스
일본 도쿄의 시나가와역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참으로 이상하다. 가까운 듯 보이지만 실제 보면 멀게 느껴진다. 닮아 보이지만 뜯어 보면 너무 다르다. 잘 아는 것도 같지만 이해 못할 구석이 너무 많다. 일본 이야기다. 과거사나 독도 문제는 차치하고 ‘코로나19’ 대응 문제만 놓고 봐도 그렇다. 대책이 없는 건지 능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

전 세계가 감염병과 전력으로 싸울 때 일본만은 현실을 외면하더니 지금 봇물이 터지는 모습이다. 갑자기 터진 거라기보다는 감춰왔던 게 드러나는 형국이다. 올림픽 개최 때문이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올림픽 개최가 내년으로 연기된 지금 일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일본이 ‘코로나19’를 놓고 그런 선택을 한 배경에 군국주의의 망령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의료거버넌스연구소’의 ‘가미 마사히로’ 이사장은 ‘시사IN’에 기고한 글(‘아베의 코로나19 엉망 대응 뒤엔 제국 군부의 망령이 있다’)에서 현재 ‘코로나19’ 대책을 만들고 집행을 하는 일본의 관계 기관과 사령탑들을 비판했다.

 

가미 마사히로 일본 의료거버넌스 연구소 이사장이 지난 10일 일본에서 열린 참의원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일본 참의원TV 홈페이지 예산위원회 영상
가미 마사히로 일본 의료거버넌스 연구소 이사장이 지난 10일 일본에서 열린 참의원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일본 참의원TV 홈페이지 예산위원회 영상

그 기관 중 ‘국립감염증연구소’와 ‘도쿄대학의과학연구소’는 2차 세계대전 때 육군에서 운영한 하나의 기관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분리됐다고 한다. 731부대 출신들이 전후에도 간부로 남았다고. ‘국립국제의료연구센터’는 1868년에 설치된 군인병원이 모태였고 전시에는 육군 핵심 병원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 병원뿐 아니라 현재 많은 국립병원의 전신이 육해군 병원이었다. 전후에 조직과 인력은 그대로 두고 이름만 국립병원으로 바뀌었다고.

‘가미 마사히로’는 이 기관들이 군국주의와 외국 침략에 복무하던 과거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정보 공개에 대한 폐쇄성’과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전주의(自前主義)’에 빠졌다는 것이다. 마치 전쟁 중 아군 진영에 몹쓸 전염병이 돈다는 소문이 퍼질 게 두려워 외부의 도움 없이 조용히 넘어가려는 모습이라는 것. 군에서 민간으로 넘어온 지 70여 년이 넘은 지금도 그런 전통에 얽매여서 ‘코로나19’를 쉬쉬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엉망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아베 일족’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할복자살하는 사무라이와 그 일족의 비극적 최후를 그린 작품이다. 저자 ‘모리 오가이’는 1862년에 태어난 소설가이자 의사였다. 그는 독일에서 군대 위생학을 연구해서 군의총감까지 올랐다. 또한, 그는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창시자라는 평을 받는다.

 

'아베 일족'.문학동네 펴냄.
'아베 일족'.문학동네 펴냄.

‘아베 일족’은 모리 오가이의 대표작으로 일본 역사소설의 모범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그가 군의총감이던 1912년 메이지 천황이 죽자 육군 대장 ‘노기 마레스케’ 부부가 왕을 따라 ‘순사(殉死)’한다. 기록에 의하면 모리 오가이는 이에 큰 충격을 받고 순사를 주제로 한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모리 오가이는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아베 차사담’을 근거로 아베 일족의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술하듯 ‘아베 일족’을 썼다. 한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가 죽자 자결로 충성을 보인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결을 허락받지 못한 ‘아베 야이치에몬’ 그리고 그 일족의 비극적인 최후를 그리고 있다.

아베 야이치에몬은 죽은 영주에게 인정받은 충직한 무사이지만 순사 허락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다. 아베는 무사로서 수치를 참을 수 없어 끝내 할복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웃으면서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는 광경이나 가문을 토벌하러 영주의 신하들이 몰려올 때도 당연한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아베 일족의 행동은 오늘날에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명예를 위해 할복자살하려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헤아린 다섯 아들은 그 순간 슬프기는 했지만 동시에 그때까지 마음에 쌓여 있던 불안감이 약간 사라지면서 무거운 짐 하나를 벗을 것 같았다.” (35쪽)

 

순사가 일어나는 이유는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주군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주군의 신임을 얻어 출세하고도 따라 죽지 않으면 충성심 없는 놈이라고 손가락질받고 체면을 구기게 되는 세태 때문이었다. 살아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할 게 뻔하니 차라리 따라 죽는 게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전통이 일본에 오래도록 지배했다.

모리 오가이는 ‘아베 일족’을 통해 일본 남성주의 문화가 극대화된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주는 한편 봉건 사회의 전통인 순사가 사무라이에게 어떤 삶을 강요했는지 냉철하게 묘사한다. 또한, ‘아베 일족’은 에도 막부의 전근대적 봉건성을 지적하면서 근대 일본이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그런데 잔혹한 순사에도 역설적이지만 순기능(?)이 있어 보였다. 순사를 통해 옛 주군을 모시던 가신들이 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새 주군을 보좌할 젊고 새로운 가신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세대교체가 되는 것이다.

 

“순사한 열여덟 명의 무사들 가문에는 적자에게 아버지가 맡았던 직무를 이어받게 했다. (중략) 선대인 다다토시가 각별히 아끼던 가문들이었고 죽음까지 함께 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에 영지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뿐 시기는 하지 않았다.” (36쪽)

 

권력은 칼에서 오고 관직은 출신이 좌우한다. 힘에 의해서, 충성에 따라서 질서가 새로 잡히는 것이다. 백성들은 그런 모습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주군을 따라서 죽거나 권력이 대물림하는 것을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일족’은 그러한 일본의 오랜 관습을 문학의 틀을 빌려 풍자했다.

현대의 시각으로는 이상하게만 보이는 전통을 아름답다 여겼던 사무라이들과 그런 모습을 아무 비판 없이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순종적인 백성들. 모리 오가이는 그런 전근대적 풍습을 담담히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家)의 가족 사진. 가운데에 있는 아이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꼬마 아베를 무릎에 앉힌 사람이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맨 오른쪽이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 사진=연합뉴스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아베가(家)의 가족 사진. 가운데에 있는 아이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꼬마 아베를 무릎에 앉힌 사람이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맨 오른쪽이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 사진=연합뉴스

사실 오늘날 일본에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의 많은 정치인은 선조의 지역구를 물려받는다. 그들의 조상 중에는 군국주의의 핵심이었던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아베 총리가 그런 선조를 둔 후예이다. 유권자들이 대물림의 정치를 그 가문의 전통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 핏줄 때문일까. 그래서 민주주의를 택한 지 오래인 일본에서 군국주의의 냄새가 풍기는 것일까. 지난 몇 년 다른 나라와 마찰을 일으킨 사례뿐 아니라 ‘코로나19’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런 악취가 풍긴다. 마치 적에게 전염병이 돈다는 걸 들키기 싫어하는 모습, 적에게 발각되기 전에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전염병을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덕분에 일본 국민은 정확한 정보도 못 듣고, 검사도 못 받고, 까닭 없이 앓다가 죽어갈 뿐이다. 그래도 순종적이기만 한 일본인들은 나라의 처분만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 살짝 언급되어 궁금했던 ‘아베 일족 (阿部 一族)’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베(安倍) 총리’가 떠오르긴 했다. 한글만 같고 한자는 다른데도. 그런데 감염병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반응이 소설의 장면과 묘하게 겹쳐서 보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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