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경 칼럼] 한국은행 아직 양적완화 안해...정부, 국채 발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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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경 칼럼] 한국은행 아직 양적완화 안해...정부, 국채 발행해야
  •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 승인 2020.03.27 14: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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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양적완화의 내용과 남은 선택들에 대해
한은 RP 매입, '전형적' 양적완화 아냐...제로금리 아니기 때문
중앙은행, 민간기업 지원시 자사주 매입금지·고용 유지· CEO 보수 제한 해야
정부가 국채 발행해 중앙은행이 매입하는 '양적완화' 예상...재정정책과 금융정책 결합
유승경 부소장
유승경 부소장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 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은행은 4월 2일부터 3개월 간 금융기관에 자금을 무한정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언론에서는 사실상 한국판 양적완화를 시행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양적완화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미국 등이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는 성격이 다르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은행이 밝힌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한국은행이 3개월 간 매주 정기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를 매입하여 전체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 용어이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글에서는 양적완화는 무엇이고 한국은행이 시행을 약속한 정책과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그리고 향후 한국은행이 취할 수 있는 남아 있는 선택에 대해서 알아본다.

통상적인 통화정책

통화 정책은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통해서 대출을 조절하는 정책이다. 보통 통화 정책은 통화량을 조절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통화량은 주로 대출을 통해서 늘어나고 줄어들기 때문에 통화 정책은 대출을 조절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경제 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통화는 상업 은행이 대출을 통해서 창조하는 신용 화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통화량을 늘리면 금리가 내려가고 통화량을 줄이면 금리가 오른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현실에 더 가까운 설명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통화량이 늘어나고 금리를 올리면 통화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금리는 중앙은행이 정책적으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바꾸면 그에 맞추어 경제 내의 다양한 금리들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조정된다.

금리의 제로 하한 문제

중앙은행은 대출을 늘려서 통화량을 증가시키고자 할 때 기준 금리를 내려서 시중 금리의 하락을 유도한다. 그런데 금리의 인하에도 한계가 있다. 명목 금리는 원칙적으로 결코 0(제로) 이하로 내려갈 수가 없다. 명목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채권자는 돈을 빌려주고 나서 정기적으로 이자까지 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라면 채권자는 더 이상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 따라서 명목 금리가 0이거나 마이너스가 되면 자금의 거래는 원칙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이를 금리의 '제로 하한문제(zero lower bound problem)'라고 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원칙적으로 0 이하로 내릴 수 없다. 현재 미국의 연준은 기준 금리의 목표 구간을 0~0.25%까지 내려서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제로금리하의 통화정책, 양적완화

양적 완화는 기준 금리가 이미 0에 근접함으로써 더 이상 기준 금리를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시중 금리를 더욱 낮추어 통화량을 늘리려는 통화 정책의 비통상적인 유형이다. 기준 금리가 0이라 하더라도 시중의 다양한 금리는 대개 0이 아니다. 상업 은행은 위험, 만기 등을 고려하여 가산 금리를 더해서 시장 금리를 정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기준 금리를 이미 0으로 내렸기 때문에 기준 금리의 조정으로서는 경제 내의 자금을 더 싸게 공급할 방법이 없다. 양적 완화는 이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경제주체에게 바로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시장 금리를 더욱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보통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시중에 있는 자산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수 대상은 국채, 회사채, 주식 등 다양하다. 중앙은행이 만약 유통 시장에서 국채를 사들이면 정부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회사채와 주식을 사들인다면 중앙은행이 민간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양적 완화를 통해서 시장 금리를 더욱 떨어뜨린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새로 발행된 채권의 금리는 기존에 유통 중인 채권의 금리(수익률)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기 채권의 가격 상승은 새로 발행된 채권의 금리도 내린다.

한국은행은 26일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채권을 담보로 환매조건부채권(RP)를 매입하는 무한정 유동성 공급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행은 26일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채권을 담보로 환매조건부채권(RP)를 매입하는 무한정 유동성 공급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형 양적 완화의 내용

위와 같이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한국은행의 조치는 양적완화는 아니다.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를 매입하여 전체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기로 했다. 한국은 아직 기준 금리가 0가 아닐 뿐만 아니라, 환매조건부채권의 매입은 담보를 받고 단기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산을 직접 매입하는 것과는 다르다.

한국은행의 이번 조치는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인 0.75%에서 금융기관에 담보를 받고 돈을 무한정 빌려준다는 조치이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거래 대상 기관도 늘리고, 담보 채권도 한국전력, 한국철도공사 등 8개 공기업 특수채까지 확대했다.

양적 완화의 거시경제학적 맥락

그러면 이렇게 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이 거시경제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자. 현재 경제에서는 국가가 발행한 화폐(지폐와 주화)인 본원 통화보다 상업 은행이 대출을 통해서 발행한 예금(신용) 화폐가 유통 화폐로서 더 큰 역할을 한다. 상업 은행은 부분 지급준비 제도에 따라서 예금의 일정 부분만을 지준금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다시 대출해줌으로써 경제에 화폐를 공급한다. 이처럼 현행 화폐 제도는 상업 은행의 신용 창조와 화폐 공급(창조)이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경제 위기 시에는 본원 통화의 양이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신용 창조를 통해서 만들어진 은행 화폐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달리 말해서 경제 위기가 오면 은행은 대출을 해주지 않으며 기존 대출도 회수한다. 그렇게 되면 예금 화폐가 급격히 줄어들어 경제 내에 돈이 부족하게 된다. 대공황기인 1929년과 1933년 사이에 유통 중인 통화량(은행 예금과 현금)이 1/3이나 줄었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 사실에 주목했다. 대공황기에 미 연준이 경제 침체가 왔을 때 통화량을 늘리지 않고 고금리 정책을 통해서 통화량을 오히려 줄였기 때문에 작은 불황으로 끝날 위기가 대공황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프리드먼은 대공황과 같은 재앙적인 경제 침체 시에는 통화당국이 돈을 직접 경제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했다면 공황의 정도와 지속 기간을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적 완화는 바로 프리드먼이 제시한 ‘헬리콥터 화폐’에서 착상을 얻은 통화 정책이다.

한국은행의 남아있는 선택들

한국은행은 현 기준 금리 수준에서 무한정한 자금 공급을 약속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0.75%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금리 정책으로도 자금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코로나 사태의 해결이 지연된다면 추가적인 금리 인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국은행은 정부가 보증을 선다면 회사채를 매입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한국은행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한다면 이것은 미국이 취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양적완화를 시행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이기 때문에 민간과는 직접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회사채를 매입한다면 그것은 중앙은행이 민간 기업에 돈을 직접 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단 중앙은행이 정부의 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관련 회사가 파산한다면 중앙은행이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기업들은 자금 확보에 큰 애로를 겪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낮추고 회사채와 같은 민간 채권을 구매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등이 추진했던 기존의 양적완화가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기존에 양적완화를 시행했던 선진권의 중앙은행은 국채, 회사채, 주식 등을 사들였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부자였다. 부자에게는 자산을 팔고 새로운 현금이 생겨도 그 돈을 지출할 유인이 낮다. 왜냐하면 이미 소비에 필요한 돈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 전망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상황에서 투자를 행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은행으로 자금을 제공받은 대기업들은 투자를 행하기보다는 자사주를 매입하여 주가를 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부유층은 기존의 자산을 중앙은행에 매각한 후에 생긴 현금을 또다시 다른 자산에 투자했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양적완화와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더라도, 정부와 중앙은행의 자금 제공에 대해서 조건을 붙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새롭게 자금이 주어졌을 때 ▲자사주 매입을 금지시키고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해야 하며 ▲CEO의 보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만으로는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며 그 돈은 나중에 회수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 위기가 소득 단절과 구매력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면, 소득이 단절되어 구매력이 약해진 사람에게 돈이 직접 갈 수 있도록 하든지 가난한 사람에게만 주기 힘들다면 차라리 밀턴 프리드먼의 '헬리콥터 머니'의 원래 생각대로 돈을 무차별적으로 나눠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이것은 재난 기본소득이 논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난 기본소득은 대출이 아니라 직접적인 소득 이전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결단하고 국채를 발행해야 하며,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를 통해서 국채를 매입하여 정부에게 충분한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결합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초유의 사태를 대처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부소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의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 경제연구원과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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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 2020-03-29 18:31:18
대한민국에 수많은 경제학 박사, 학자들이 많은데
유승경 부소장님과 최인호tv에서만 현 경제 위기상황를 제대로 파악하는지
많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