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헛소리와 멍청함의 모든 것을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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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헛소리와 멍청함의 모든 것을 탐구하다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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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심리학자 · 저널리스트, 세계 저명 학자 29인과의 인터뷰 엮어
일상속 하찮은 멍청이에서 세상 종말 불러올만한 절망적 멍청이까지
‘가짜뉴스 메이커’, ‘포퓰리스트 정치인’, 일부 대중들...우리 주변의 모든 멍청함에 대해
1루수가 누구야(Who's on First?)는 애벗과 코스텔로의 유명한 코미디. 야구 포지션을 이용한 일종의 만담. 사진=구글이미지
1루수가 누구야(Who's on First?)는 애벗과 코스텔로의 유명한 코미디. 야구 포지션을 이용한 일종의 만담. 사진=구글이미지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말이 넘치는 세상이다. 문제 하나를 두고도 해석이 다른 말들로 넘친다. 말이 많다는 건 생각이 다양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그런 다양한 말을 내뱉게 하는 생각의 종류가 많은 것이다. 생각이 많다는 건 시각이 다양하다는 말일까. 사람들이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전혀 다른 걸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시각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곰곰이 들어보면 사람들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 같다.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을 하거나 문제 해결에 도움 안 되는 조언을 하곤 한다. 세상에 이처럼 말이 넘친다고 해서 모두가 귀를 열고 사는 건 아니다. 귀는 닫고 입만 여는 세상이니 말이 넘치고 시끄러울 수밖에. 간혹 귀를 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런 말들을 들어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거나 다른 사람들 탓으로 몬다.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부류들을 모아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집단으로 공격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무리 지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가. 서로의 말들과 행동이 닮아질 수밖에 없다. 나이 먹을수록 현명해지기는커녕 멍청해진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멀리 프랑스에서도 있었나 보다. 얼마나 심했으면 “세상을 위협하는 멍청함을 연구”했을까.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이 지은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에서 말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 주위”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과 미국, 나아가 전 세계를 의미한다.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시공사 펴냄.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시공사 펴냄.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은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이다. 잡지 ‘심리학 서클(Le Cercle Psy)의 편집장이며 잡지 ’인문학(Sciences Humaines)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세상에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분통 터지게 하는 멍청이들이 많다”고 외친다. 이들은 “눈치 없이 행동하거나, 헛소리를 늘어놓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고 한다. “오만하고 이기적인 멍청이나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멍청이를 만날 때면 인내심에 한계도 느낀다”고.

그래서 저자는 심리학자, 신경학자, 과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 29인을 모아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멍청함을 탐구해본다. 멍청함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멍청함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는 건지, 어떤 종류의 멍청함이 존재하는지, 그중 제일 짜증 나는 멍청이 1위는 누구인지, 멍청이를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나는 책 제목에서 멍청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 단순히 떠올랐다. 물론 그런 추상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그렇지만 저자와 저술에 참여한 학자들이 보는 멍청이는 구체적이면서도 폭넓은 의미들이 있었다.

 

“단순히 아는 게 없는 멍청이, 자존심만 강하고 건방진 멍청이, 눈치 없고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멍청이, 주변에 민폐 끼치는 멍청이,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며 설명하는 멍청이,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멍청이, 입만 살아있고 행동은 하지 않는 멍청이, 나 빼고 다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멍청이” 등.

 

책에서는 이 부류보다 더 많은 멍청이를 소개한다. 나도 그중 몇 개에 해당하는 멍청이였다. 저자도 멍청이였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경고의 글”이라는 머리말에서 “멍청함을 연구하는 일은 엄청난 작업”이며 “멍청함이라는 방대한 주제를 이 책 한 권으로 탐구해보겠다고 나서는 일은 한층 더 멍청한 짓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놀라운 건 많은 학자가 멍청이라는 주제에 공감하고 즐거이 연구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다루었던 “직관적인 판단과 이성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우리가 멍청한 판단을 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우리가 “경제학적으로 멍청한 선택, 멍청한 소비를 하게 되는 이유”를 알아본다. 또한 ‘스피노자의 뇌’를 쓴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멍청이인가?”라는 주제로 저자와 인터뷰 한다.

세 학자에게 멍청이란 “직관이나 감정 또는 어떤 오류에 휩쓸려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학문 연구 방법 외에도 현대 미디어의 등장 때문에 생긴 멍청이를 분석하기도 한다.

 

장 프랑소아 마르미옹. 사진=paris-normandie.fr
장 프랑소아 마르미옹. 사진=paris-normandie.fr

다중지능 이론으로 유명한 교육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인터넷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멍청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에고라는 적’의 저자이자 마케팅 전략가인 ‘라이언 홀리데이(Ryan Holiday)’는 “미디어가 어떻게 거짓 정보로 사람들을 속여 멍청하게 만드는지” 이야기한다.

“SNS에서 생각 없이 말하는 멍청이나 익명성에 기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멍청이”를 다룬 학자도 있다. 이렇듯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는 29인의 전문가들이 “멍청함의 양상은 가지각색으로 다르며 우리도 모르게 멍청이가 이 세상에 넓게 퍼져있다”는 점을 밝힌 흥미로운 책이다.

 

“멍청함은 어떤가? 멍청함도 졸졸 흐르냐 세차게 흐르냐처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디에든 존재한다. 멍청함에는 국경도, 한계도 없다. (중략) 그러나 종류와 관계없이 멍청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자 머리말 중)

 

전공을 달리하고 관점도 달리하는 29인의 학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에 멍청이들이 널렸고 그들이 주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책에 의하면 멍청이는 거짓말쟁이와는 또 다르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알면서 숨기려 하지만 멍청이는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다시 말하면 멍청이는 자신이 내뱉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멍청이들은 균형 잡힌 언론을 가장한 ‘가짜뉴스 메이커’, 사회의 악과 싸운다고 주장하는 ‘포퓰리스트 정치인’,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일부 대중들을 은유한다.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주로 학식과 전문지식이 부족하고 자신의 선택으로 일어날 결과를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이들은 연설을 할 때 자극적인 말을 하고 적은 단어로 쉽게 말하며 비속어를 사용할 때가 많다. 또한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모순이 가득한 문제를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춘다.” (308쪽)

 

SNS를 포함한 미디어의 종류도 많아지고 영역도 넓어지면서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현명한 사람들은 정보를 비교 검색하며 진실을 찾고자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듣고 보고 싶은 정보에만 귀와 눈을 열고 마음을 연다.

그래서 지난 몇 달이 일부 멍청이들에게는 기회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맘껏 뽐낼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오랜만에 반짝였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국을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하는 멍청함이라니. 마치 멍청함이라는 늪에 빠졌는데 혼자 빠지기 싫어 발버둥 치다가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가는 형국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런 글을 쓰는 나를 보고 오히려 멍청이라 부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정한다. 그동안 생각하는 바와 말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나는 수줍은 멍청이가 맞다. 하지만 앞으로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책 제목처럼)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실천하는 똑똑한 멍청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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