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준의 농민사랑] 냉담한 '아스팔트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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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준의 농민사랑] 냉담한 '아스팔트 농사'
  • 박범준
  • 승인 2015.11.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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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폭락...쌀 조합 결성해 생산량 조절, 소비와 수출 촉진대책 필요

1989년 2월 13일!

전남의 땅끝마을 해남에서, 경상도의 남해에서, 강원도 오지 마을에서, 전국방방골골에서 3만여명의 농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속속 모여들었다.

농민들의 머리에는 ‘부당수세 거부’라는 글자도 보이고, ‘고추생산비를 보장하라’라는 글자도 보인다.

아마도 1989년 2월 13일 개최된 ‘농민집회’가 해방이후 전국의 농민들이 서울에 모여 농민들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최초의 대규모 ‘농민집회’가 아닌가 싶다. 농민집회 이후에 생겨난 말이 바로 ‘아스팔트농사’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87년 12월 나주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부당수세’ 징수 거부운동은 1988년을 지나면서 전남, 전북, 충남의 각 시군으로 들불이 번지듯 퍼져나갔다.

군청앞 마당에서 “못내못내 절대못내, 부당수세 절대못내”라고 외치던 농민들은 시장·군수가 묵묵부답으로 경찰력을 동원하여 농민집회를 막기에 급급하자, “군수가 무슨 힘이 있냐? 이왕지사 부당수세문제를 해결할려면 서울로 올라가서 담판을 짓자!”라고 생각하면서, 국회의사당에 모일 것을 제안하였다.

 

상대적으로 논이 적고 밭이 많은 경상도와 충청북도, 그리고 강원도 지역은 상대적으로 ‘부당수세’에 대하여 크게 민감하지 않았다. 대신 1988년 고추값이 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생산비가 대략 근당 2,300원정도 했는데, 시장에서 판매되는 소비자 가격이 1,500원에 불과하자, 수확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것. 정부가 나서서 수매물량을 늘려주라”고 강하게 요구하게 되었다.

고추는 우리나라 식탁에서는 없어서는 않될 주요 품목으로 농사꾼에게는 아주 중요한 소득작목인데, 1988년 이해의 시장 상황은 무조건 망하게 생겼다. “죽기아니면 살기”로 고추를 야적하면서 수매를 요청하고 있을 때, 당시 농림부가 ‘일본고추장 수입’을 허가해 준 사건이 터지게 된다. 흡사 불붙은 집에 기름을 붇듯 경상도 일대, 충북, 강원도 및 고추 생산지역 농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 타올랐다.

▲ 7월 3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밥쌀용 쌀 수입저지 전국농민대회 참가자들이 쌀을 뿌리는 등 밥쌀 수입 중단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논농사 중심지역인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 경기도에서는 ‘부당수세’ 문제로 원성이 들끓고, 밭농사 중심지역인 경상남북도와 충청북도 강원도 지역에서는 ‘고추생산비보장’문제로 원성이 들끓고, 결국 당시 전국농민단체인 ‘전국농민운동연합’에서는 ‘부당수세거부 및 고추생산비보장 전국농민대회’ 개최를 선언하고, 갖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게 되었다.

순박하다고만 여겼던 농민들이 전국각지에서 올라와 항의하고 강력하게 저항을 하자, 정치권은 놀라고, 부랴부랴 당정협의를 통해 농민들의 요구 대부분을 받아들여줬다.

1989년 2월 13일 전국각지의 농민들이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모여서 소리를 외치니, 하루동안 얻은 이익이 대략 당시 돈으로 7,000억원 정도 되었다. ‘수세’는 당시 23.5㎏g에서 5㎏으로 경감되었고, 고추는 농민이 보유하고 있던 전량을 정부가 생산비를 보장하는 선에서 수매해주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러면서 전국농민운동연합의 핵심간부였던 분이 사석에서 공석에서 “일년내내 땡볕에서 고생해봐야 소용없다. 여의도에 가서 하루동안 아스팔트 농사를 지니까. 무려 7,000억원을 벌었잖냐? 앞으로 농민들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아스팔트 농사품목’을 많이 많이 권장하고 보급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후 ‘아스팔트 농사’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었고, 전북여성농민회에서 이와 관련한 노래도 만들어서 보급하였다.

▲ 지난 7월 3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밥쌀용 쌀 수입저지 전국농민대회 참가자들이 밥쌀 수입 중단을 촉구하며 시청 앞 서울광장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1월에도 ‘아스팔트 농사’가 열릴 예정으로 알고 있다. 쌀값이 폭락하여 농민들의 한숨과 원성이 자자한데, 국민일반의 여론은 과거에 비해 많이 냉담한 듯 하다. 왜 그럴까?

‘25~6년전 ‘아스팔트 농사’라는 말이 만들어 질 당시의 농업환경과 2015년 현재의 농업환경이 많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1989년 당시, ‘수출주도형 국가성장전략’으로 정부는 저노임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저곡가 정책을 주도하였다. 정부의 농업에 대한 규제 통제가 강화되던 시기였고, 이는 비단 농업농민분야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론·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정부의 규제 통제에 대해 거부감이 컸었던 시대였고, 변변한 농업 투융자 예산이 전무했다. 따라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오죽하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겠냐?”라면서 적극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응원하였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7년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 까지 농업분야에는 대략 212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쏟아부어졌다. 농촌사회에서는 우수개 소리로 “농촌의 개들이 10만원짜리 수표를 물고 돌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눈먼 돈이 횡횡하였다.

이 시기 도시의 서민들의 경제는 점차로 악화되어, 좋은 일자리는 눈을 씻고 봐도 없을 지경이고,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삶 자체가 불안정화되었다. 미래를 위한 적금과 보험을 개서 현재를 버티는 형국이 지속되고, 가계부채는 1,000종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1997년 IMF위기 이후 불안한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도시보다는 희망이 많다고 여겨지는 농촌으로, 농촌으로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있다.

도시에 사는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농업·농촌생활이 조금은 불편할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도시생활보다 훨씬 안정적일 수도 있고, 기회의 땅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하여 2015년의 ‘아스팔트 농사’에 대해서 국민일반의 반응은 동정적이기보다는 냉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농산물 가격의 폭락을 미연에 막을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선진농업강국에서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 농산물 가격 폭락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는 품목이 바뀌면서 매년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2014년도에는 양파가 똥값이 되어 갈아엎는 사태가 벌어졌고, 올해는 전반적으로 쌀값이 하락하여 농민들의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쌀의 경우를 살펴보면 국민들의 쌀 소비량이 매년 조금씩 줄고 있다. 1993년 무렵에는 1인당 쌀 소비량이 년간 대략 126㎏이었는데, 최근에는 70㎏ 이하가 되었고, 일본의 경우를 참고로 한다면 대략 60㎏ 근처에서 안정화될 걸로 예측이 된다.

쌀의 소비가 줄어드는 대신, 소득수준에 따라 육류 섭취가 늘고, 이후 다시 채소 과일 섭취가 늘면서, 바다 생선의 소비가 대신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소득수준과 연관된 소비자 일반의 농산물 소비 패턴으로, 쌀 생산농업인들이 이에 대해 스스로 자주적인 노력이 있어야 했다.

시군단위별로 ‘쌀생산자조합’을 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광역단위쌀생산자조합’, ‘전국단위쌀생산자조합’을 결성해서 스스로 생산을 조절하고, 스스로 다양한 가공제품을 만들어서 쌀 소비를 촉진하고, 나아가 수출을 통한 판로를 다양하게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쌀 유통에 있어서 ‘농협하나로마트’와 ‘대형할인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시중에서 요구하는 물량을 참고로 하여 사전에 협상을 하고 이를 통해 재배면적을 조절하고, 이와관련 정부 책임자와 책임있는 협의를 사전에 진행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실제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식량이자 ‘생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쌀을 생산해서 제공한다는 것에는 단순히 경제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좋은 쌀을 안심하고 저렴하게 사먹게 한다는 가치도 담겨있다. 따라서 쌀을 생산하는 농민이나, 정부에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배곯지 않고 잘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하는 품목이며, 통일 이후를 대비하여 특별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품목이다.

 

쌀 생산농가들은 서로 협력해서 생산비를 더욱 더 낮추면서, 품질은 높이고, 아울러 생산성을 높여서, 쌀가공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정부는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고 선언적으로 이야기만 할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불우한 소년소녀 가장들, 독거노인들, 각종 복지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국민들이 마음 놓고 쌀을 먹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노력해야하고, 지구촌에 식량부족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약 6억명이라고 하는데, 인도적 측면에서라도 잉여쌀을 가공하여 제공한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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