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석유전쟁 주도 사우디 왕세자, '권력 놀이'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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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석유전쟁 주도 사우디 왕세자, '권력 놀이'에 빠졌나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3.1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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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정책 영향력 과시 위해 러시아 움직이려 '감산' 제안
러시아 반대하자, 자신 입지 지키려 되레 증산 결정한 듯
러시아와의 석유 전쟁, 사실상 미국 타격 커 '미국과의 전쟁'이라는 평가도
왕세자 리더십 강화 노력, 리더십 약화 계기가 될 수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석유전쟁'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각) 글로벌 금융시장은 암흑 그 자체였다. 유가는 무려 30% 가까이 빠졌고,뉴욕증시는 7% 넘게 폭락했다. 10일 기술적인 반등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시장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이 불안감은 예상치 못한 '석유전쟁'이 트리거가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둔화를 예상, 주요 산유국들이 추가 감산을 논의했으나 러시아가 반대했다. 그러자 사우디아라비아는 돌연 증산을 결정했다. 예상치 못한 증산 소식은 순식간에 금융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석유전쟁은 사우디의 경제에도 크게 악영향을 미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 그럼에도 사우디가 석유 전쟁을 일으킨 속내는 뭘까. 

빈 살람 왕세자의 노골적인 리더십 '욕망'

현재 사우디의 실세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그에 대해 언론에서는 '거침없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왕권을 쥐고 있는 그는 자신의 영향력 과시에 있어서 더욱 거침이 없다. 

최근 그의 사촌형과 삼촌 등 경쟁 세력을 체포한 일에서 거침없는 그의 성격은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6일(현지시간) 사촌형 무함마드 빈 나예프 전 왕세자와 삼촌인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를 반역죄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현 사우디 국왕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유고시에 대비, 경쟁자들에 대한 숙청작업이라는게 언론들 평가다.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 사우디 내부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우디의 원유 증산 결정 역시 이같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영향력 과시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형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 장관은 오는 3월말 기한을 맞이하는 원유 감산안의 연장에 대해 반대했다.

하지만 왕세자는 감산에 대한 러시아의 협조를 예상, 3월말로 예정된 원유 감산안을 올해 말까지 연장하고, 추가 감산 역시 논의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를 통해 에너지 정책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확고히 하려 했다"며 "그의 형에게도 그가 러시아를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해보이고자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러시아가 전혀 협조하지 않자, 그는 '증산'이라는 또 다른 강수로 그의 입지를 지키고자 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빈 살만 왕세자에게는) 석유 시장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런던비지니스스쿨의 스테판 헐토그 교수 역시 "사우디는 러시아에게 협력이 부족한 데 대한 대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위험한 치킨게임"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사우디에 우호적' 태도 바꾸나

일부 언론은 석유전쟁에 대해 '사우디와 러시아의 전쟁이 아닌, 사우디와 미국의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유가가 폭락할 때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이 바로 미국의 셰일업계이기 때문.

당초 러시아가 추가 감산안에 반대한 것 역시 유가가 유지되면 미국의 셰일업계에 이익이 돌아간다는 이유에서였다. 생산비가 높은 셰일가스와 셰일유는 유가가 하락할 경우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빈 살만 왕세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응이 주목받는 이유다. 사우디의 이번 증산 결정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휘발유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는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첫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온 양국이지만, 이번 사우디의 증산 결정에 따른 유가 폭락이 지속된다면 미 경제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 역시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유가 하락에 따른 미 경제의 충격이 우려된다"며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를 초래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직접적으로는 미국 석유산업의 중심지인 텍사스가 트럼프 대선 레이스에서 핵심이 되는 곳이기 때문. 텍사스의 석유 관련 종사자가 많은데다, 에너지 산업이 텍사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에너지 산업 지키기가 재선을 향한 필수적인 이슈인 셈이다.  

CNBC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석유 전쟁은 미국 산업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미국의 에너지 산업이 작아지고,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국이라는 위치에서 미국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니엘 예긴 IHS 마킷 부회장 역시 "미국의 석유와 가스 등의 공급체인은 철강 노동자들에게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이는 기계 관련 종사자들에게도 충격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람코 주가 흐름표.
아람코 주가 흐름표.

"빈살만 왕세자, 결국 리더십 붕괴 위기 맞을 수도"

일각에서는 빈 살만 왕세자가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 결국 리더십 약화로 귀결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증산'을 결정했으나, 유가 하락으로 인한 사우디의 재정 악화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사우디의 에너지 부문은 전체 국가 수출의 80%에 달하며, 재정 수입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아부다비 상업은행은 만일 브렌트유가 배럴당 35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의 올해 원유생산은 15%의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사우디의 재정적자가 12%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타레크 파들랄라 노무라자산운용 중동지역 최고경영자(CEO)는 "사우디가 오랜 기간 저유가를 견딜 수 있는 상당한 매장량을 축적했다 하더라도 이에 따른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그 비용은 사우디 경제 구조 개혁을 위한 자금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주가 마저 폭락하면서 사우디 국민들에게도 신임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람코 주식을 들고 있는 대부분이 사우디 왕족과 귀족인데다, 최근 아람코 주가가 빠지면서 일반 시민들 역시 아람코 주식 매수에 나서는 상황. 유가 하락이 지속돼 아람코 주가가 추가적으로 하락한다면 사우디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빈 살만 왕세자 역시 신임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는 "왕세자의 권력 놀이는 너무 경솔해서 파트너로서 믿을 수 있을 지에 대한 서구 자본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그의 증산 결정은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고 사우디의 경제 구조를 다양화하겠다는 그의 약속마저 손상시켰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사우디의 석유시장 지배권 다툼에 따른 비용은 사우디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찰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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