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위기 속 인간 모습과 연대의식...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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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위기 속 인간 모습과 연대의식...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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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도시에 발생한 페스트,'전염병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
비극적 운명에 놓인 사람들 간의 연대의식은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감염병이라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지금은 전력을 다해 감염병과 싸워야 할 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 사진=위키피디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 사진=위키피디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감염병은 우리에게 일상이 되었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람들이 쓰러지고 죽어가는 모습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기록이었다. 지난겨울 이웃 나라에서 생소한 병이 퍼지자 과거 사스나 신종 인플루엔자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몇 년 전 메르스의 혼란을 기억하는 우리는 그 바이러스가 바다를 건너지 말기를 염원했다.

하지만 ‘밤에 도적이 오듯이’ 우리 곁에 우리도 모르게 기생하던 어떤 집단을 중심으로 ‘코로나19’는 남한 전체에 스멀스멀 퍼져갔다.

감염병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보이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 두려운 적이다. 처음에는 이웃 나라들 선에서 막아주길 바랐지만, 우리나라도 참여하게 됐고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모든 나라가 동참하게 된 세계전쟁으로 번졌다.

전쟁 역사를 돌아보면 전선의 군인들은 눈앞의 적에만 집중하며 오늘 하루 살아남기 위해 싸우지만, 간혹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또 다른 의미의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모두가 감염병과 싸우고 있는 지금 바이러스 퇴치에 힘을 모으기는커녕 전선의 군인들과 지휘관들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코로나19’가 더욱 퍼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상황을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한 배경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 꼭 어느 영화나 소설에서 본듯한 장면이다.

 

알베르 까뮈 著 .'페스트'. 문학동네 펴냄.
알베르 까뮈 著 .'페스트'. 문학동네 펴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꺼내 읽었다.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다. ‘페스트’라는 제목을 보면 중세가 떠오른다. 어쩌면 페스트가 사라진 지 오래일지도 모르는데 카뮈는 왜 오래된 전염병을 세상으로 끌어냈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어떤 분석가들은 전염병 때문에 도시를 봉쇄하고, 환자들과 그 접촉자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너무 많은 시체를 감당 못 해서 매장 대신 소각하는 상황을 두고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를 은유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 해석은 학자나 평론가만의 몫은 아니다. 읽는 사람의 성찰과 해석도 중요하다.

이번에 ‘페스트’를 다시 읽어보니 사람들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 그들이 은유하고 대표하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을 작품에서 볼 수 있었다.

소설의 무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알제리의 작은 해안 도시이다. 어느 날 죽은 쥐들이 발견되더니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어 나간다. 하지만 시민들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 설마 페스트일까. 그들에게 페스트는 구체적인 현실감이 없는‘추상’일 뿐이다. 쥐와 사람은 계속 죽어 나가고 도시에 불확실성은 점점 커져만 간다.

 

“죽은 쥐의 수가 갈수록 늘어났고, 수거되는 양도 매일 아침 더 많아졌다. (중략) 라디오 방송을 통해 25일 단 하루 동안 6231마리의 쥐를 수거, 소각했다고 보도했다. 그 숫자가 매일같이 목격하던 광경에 분명한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시민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문학동네에서 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25~26쪽)

 

사태가 길어지자 시민들은 극한의 절망과 공포에 대응하는 나름의 길을 찾는다. 그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사랑과 행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신문기자가, 재앙 앞에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성찰하는 신부가, 속수무책인 현실 속에서 “행위의 필요성”을 부르짖으며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묵묵히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페스트와 싸우는 헌신적인 의사도, 맡은 일에서 도망치지 않는 성실한 공무원도 힘을 합쳐 함께 싸운다. 이들은 불완전한 인간들이지만, 공동체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조금씩 변화해간다.

그들을 포함한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은 “전염병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도시가 봉쇄되는 바람에 외부로 나갈 수도 없고, 헤어진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다만 자기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도 죽음을 예감한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자기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힘없이 받아들인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감염되어 다른 사람에게 균을 퍼뜨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모든 시민은 서로에게 페스트이며 가해자다.

 

스페인 TV 시리즈 'La Peste'의 한 장면. 사진=IMDb
스페인 TV 시리즈 'La Peste'의 한 장면. 사진=IMDb

이런 현실 속에서 개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카뮈의 ‘페스트’는 위기의 순간에 인간이 향해 가야 할 연대의식의 지평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보건대를 조직하고 힘을 다해 전염병과 싸운다. 의사들은 봉쇄된 도시, 외부의 도움 없는 상황에서 자기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밤낮으로 수행한다.

작품에서 그리는 연대의식은 지금도 필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훌륭한 문학은 ‘현재성’이 있는 것이다. 페스트라는 역사책에서나 들어봤을 질병이 카뮈의 ‘페스트’라는 문학으로 살아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성찰을 준다.

지금 낯선 감염병이 유행하는 우리의 현실은 병에 걸린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경험했듯이 우리 모두의 상황이 되고 공동의 해결책이 요구된다. 카뮈의 ‘페스트’는 개인의 일이 집단의 관심사가 되고 집단에 닥친 사건 때문에 개인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물론 카뮈의 ‘페스트’에는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도 나온다. 혼란한 시국을 틈타 자기의 과거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범죄자도 나오고, 봉쇄된 상황을 이용하는 장사꾼들도 나온다.

 

“코타르는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아지는 바람에 배급 물자 암거래에 가담하고 있었다. 담배와 값싼 술을 구해 되팔았다. 가격이 끊임없이 오르면서 많진 않지만 돈을 벌고 있었다.” (같은 책 168쪽)
“그 도시에는 지친 것 같지도 않고 실망한 것 같지도 않으며 만족감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코타르였다.” (같은 책 227쪽)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이탈리아군 장교로 참전한 미국인 주인공이 나온다. 적들의 공세에 밀려 부대와 함께 후퇴하던 그는 헌병들이 패전의 책임을 물어 장교들을 즉결처형하는 장면을 보고 목숨을 걸고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후방에서 전쟁을 바라보던 권력자들이 벌인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전선이 무너져 불안해하는 시민들과 그 책임을 자기들에게 모는 정적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최전방에서 함께 싸우던 지휘관이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보던 군인들의 사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27일 2주간의 격리 생활을 마치고 퇴소하는 중국 우한 3차 귀국 교민 등이 탑승한 버스가 27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7일 2주간의 격리 생활을 마치고 퇴소하는 중국 우한 3차 귀국 교민 등이 탑승한 버스가 27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럴 때가 아니지만 지금 한국에서 굳이 책임을 묻자면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감염병은 명쾌히 밝혀지지 않은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이 커지게 된 원인을 감싸는 세력도 있는 것 같다. 책임은 그런 사람들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전쟁을 끝낸 다음에. 지금은 전력을 다해 감염병과 싸워야 할 때다.

모든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건강한 귀환을 기원한다. 그 전쟁에 참전한 모든 의료인의 헌신에 진심 어린 감사와 응원도 보낸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는 모든 이에게도 함께 이겨내자는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코로나19’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사라질 감염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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