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③ 최초의 SF영화 ‘달세계 여행’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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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③ 최초의 SF영화 ‘달세계 여행’ (下)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0.02.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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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아카데미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한 명감독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초기 영화 제작자에 마술사들이 많았던 것을 두고 "마술의 환상과 영화의 환상이 같은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영화는 프레임이라는 한 컷 한 컷의 사진들이 빠른 속도로 연속적으로 움직이면서 우리의 망막에 일종의 잔상효과라는 것을 남겨 마치 움직이게끔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이다.

어떻게 보면 속임수(트릭)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면 학창시절 수업이 지루해 교과서 한 귀퉁이에 그림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려넣은 다음, 이를 촤라락하고 빠르게 넘기면 마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난을 한 두 번씩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플립북이라고도 부르는 이 장난질. 이것이 바로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영상의 기본적인 원천기술이다.

필름 시대를 지나 최첨단 디지털 영상 시대에 와서도 이러한 기본은 변하지 않았다. CG 사용이 아주 보편화된 최근 영화 제작도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없는 영상에 CG를 통해 그림을 입혀 무언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속임수’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어떻게 보면 ‘속임수의 예술’이다. 

코폴라 감독이 말한 것처럼 영화와 마술은 어느 정도 그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초기 영화 제작자들 중 마술사들이 많았던 것은 마술사들이 그러한 속임수에 아주 강했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것이 처음 대중들에게 소개되면서 조르주 멜리에스를 포함한 마술사 출신의 초기 영화 제작자들은 다양한 트릭들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트릭들은 지금도 사용되는 현대 영화 기법의 원형이 되었다.

1902년 첫 상영한 달나라여행 포스터. 사진=레드브로스 DB.
1902년 첫 상영한 '달세계 여행' 포스터. 사진=레드브로스 DB.

마술과 기술의 만남

뤼미에르의 영화 상영회에서 필름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무너진 벽이 다시 돌아가는 장면을 본 멜리에스는 영화라는 새로운 콘텐츠에서 마술적 요소들을 발견했다.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프랑스에서는 장비를 구하지 못해 영국까지 건너가 장비를 구하고 그렇게 구한 장비로 자신의 공연장에서 본격적으로 영화와 마술 공연을 결합한 무대를 거듭한다. 멜리에스는 1897년 5월 자신의 필름 스튜디오를 짓는다. 유리지붕과 유리벽으로 감싸 마치 온실처럼 생긴 이 스튜디오에서 그는 태양광을 조명으로 해 1896년부터 500편이 넘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무대에 익숙한 마술사로 카메라의 여러 기능들을 활용하면 극장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새로운 마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그가 주목한 건 카메라로 만들어 내는 트릭들이었다. 

영화 촬영에 쓰이는 카메라의 발전은 이러한 속임수들을 더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초창기 영화 카메라는 이전의 사진 카메라처럼 삼각대에 고정된 형태였지만, 카메라를 이동시키면 보다 역동적인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게된 것이다. 초기 영화제작자들은 크랭크나 휠 기어같은 다양한 기계들을 영화 카메라에 붙이는 것으로 패닝이나 파노라마같은 기초적인 카메라 워킹들을 만들어냈다.

20세기초 활동한 멜리에스의 스튜디오. 사진=레드브로스DB.
조르주 멜리에스가 1897년 만든 필름영화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 전경. 사진=레드브로스DB.

멜리에스를 포함한 초기 영화 제작자들이 이러한 초기 카메라를 사용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트릭 중 하나가 지금도 가끔씩 쓰고 있는 스톱 트릭이다. 스톱 트릭이란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로 피사체를 촬영하면서 카메라를 잠시 멈추고, 앞에 있는 피사체를 바꾼 후 다시 카메라를 돌리면,  마치 순식간에 물건이 뒤바뀐 것과 같은 트릭이다.

지금이야 트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본적인 기법 중의 하나이지만 당시 영화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그야말로 마술과도 같은 일이었다. 카메라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역크랭크가 발명되자 이를 이용해 이미 촬영된 필름에 다른 영상을 덧씌울 수 있는 다중노출이나 한번 촬영된 필름을 거꾸로 돌리면 화면에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처럼 표시되는 것을 활용했다. 처음부터 배우가 행동을 거꾸로 진행해 실제 필름에서는 꺾은 꽃이 다시 살아나고, 깨진 도자기가 다시 붙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리버스 모션 등이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 영화 기법들이다.

세계 최초의 SF영화

1902년에 공개된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은 이러한 초기 영화의 기술적 노하우와 카메라의 발전, 영화 콘텐츠에 대한 이해 등 영화에 대한 당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달세계 여행>은 세계 최초의 SF영화라는 점 외에 콘텐츠가 하나의 산업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영화의 글로벌한 흥행의 가능성도 키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해 5월 첫 상영에서 <달세계 여행>은 엄청난 호평을 받는다. 재상영을 요구하는 관객들의 요청에 정해진 상영시간 외 추가로 자정까지 심야상영을 해야 할 정도였다.

<달세계 여행>은 대중들과 영화 업계에 영화라는 콘텐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만일 당시 아카데미상이 있었다면, 아마도 <달세계 여행>은 거의 모든 분야의 상을 독식했을 것이다. 그만큼 창의성과 예술성, 그리고 대중성이 함께 결합된 완벽한 작품이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 세심하게 설계된 의상 등 당시 유행했던 대규모 연극들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바탕으로 스톱 트릭이나 다중 노출 같은 최신 카메라 트릭 등을 통해 연극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마술적인 볼거리를 같이 제공했다.

무성영화이기는 했지만, 상영회에서는 라이브로 제공되는 장면별 나레이션과 특별히 준비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시켰다. 더욱이 <달세계 여행>은 당시 영화로는 긴 시간에 속하는 18분의 러닝 타임 속에 다양한 장면 전환을 통해 당시로선 보기 힘들었던 내러티브 즉 서사 구조를 담았다는 점이다.

길어야 5분이 안 되는 러닝 타임에 장면 전환도 없이, 한 장소에서의 한 두가지 상황만 전달했던 당대의 영화에 비해 획기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당시 유행했던 쥘 베른의 SF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 주위에서>같은 작품이나 H.G 웰스의 소설 등의 과학 소설에서 모티브와 배경 등을 가져와 장르적으로도 이미 그런 장르에 익숙해져있던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차후 소설 같은 원작에서 영화를 만들어 내는 미디어 믹스로 발전하게 된다.

<달세계 여행>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무리의 천문학자들이 달 탐사를 제안하고 5명의 용감한 천문학자들이 커다란 대포에 놓인 대포알 모양의 발사대에 놓인 우주 캡슐을 타고 달로 향한다. 달에 착륙한 천문학자들은 그들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달의 여신을 만나고 그녀의 폭설 공격을 받아 동굴에 대피한다.

달의 원주민들에게 공격을 받던 천문학자들이 반격하고 잠시 승리를 거두는 가 했더니 더 많은 원주민들이 나타나 그들을 잡아 달의 왕궁으로 데려간다. 달의 왕궁에서 달의 족장을 폭파시키는 데 성공한 천문학자들은 어수선한 틈을 타 탈출하고 수많은 원주민들에게 쫓기던 그들은 캡슐을 낙하시켜 지구로 돌아온다. 탈출 캡슐에 휘말려 온 달의 원주민 하나를 포로로 잡아 개선한 천문학자들은 포로로 잡은 원주민을 대중들에게 전시하고 달 원정을 기념하는 기념동상의 제막과 함께 펼치지는 기념 퍼레이드를 보면서 즐거워하며 영화는 끝난다.

'달세계 여행'의  또 다른 포스터. 사진=레드브로스DB.
'달세계 여행'의 또 다른 포스터. 사진=레드브로스DB.

스타워즈·어벤저스도, 포르노 영화도 여기서 시작하다

줄거리에서 보듯 과학적 무대 장치와 함께 외계인의 존재, 미지의 존재와의 전투, 추격 신 등 현대 SF 장르의 콘텐츠 및 액션 오락 영화들이 가지는 대부분의 원형을 <달세계 여행>은 담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이 작품은 영화 산업에 있어 한 획을 그었다.

멜리에스는 이 작품을 만드는 데 1만 프랑의 제작비를 사용했다. 당시 영화 제작비로는 거의 천문학적인 금액인 이 제작비는 당시 영화 산업이 이 정도의 제작비를 투입하더라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는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웅장한 스케일, 화려한 무대와 의상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보지 못한 서사 구조와 카메라 트릭을 활용한 특수 효과 등 영화 콘텐츠가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매력을 담아낸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달세계 여행>은 최초의 SF 영화로 이후의 많은 영화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달세계 여행>은 이전까지 단순히 ‘움직이는 사진’으로만 평가했던 영화라는 콘텐츠를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로 승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후대의 많은 영화 평론가들은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더불어 내용적 측면에서도 아프리카 부족들처럼 묘사된 달나라 원주민들의 모습이라든가, 그들을 정복하고 원주민 포로를 사람들에게 전시하며 제국주의적인 기념비를 세우는 장면에서 오히려 반제국주의적인 정서와 식민주의에 대한 풍자를 느낄 수 있다고 평했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복장을 한 여배우들을 출연시킨데다, 흑백필름에 색을입혀 컬러영상으로도 상영됐던 '달세계 여행'의 한 장면. 사진=레드브로스DB.
당시에는 파격적인 복장을 한 여배우들을 출연시킨데다, 흑백필름에 색을입혀 컬러영상으로도 상영됐던 '달세계 여행'의 한 장면. 사진=레드브로스DB.

또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리를 드러낸 젊은 여성들을 대거 화면에 출연시켜 눈길을 사로잡는 섹슈얼 이미지를 영화에 도입하기 시작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러한 섹슈얼 이미지는 영화를 포함한 현대 시각적 대중문화의 핵심 이미지 중 하나가 된다.

멜리에스는 <달세계 여행>을 통해 유통과 배급에 있어서도 큰 혁신을 이루어낸다. 그는 다양한 유통 경로를 통해 프린트된 필름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흑백 프린트는 개당 560프랑에 손으로 채색한 컬러 필름은 1000 프랑에 판매했다. 그의 영화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 등지에서 흥행에 성공했으며 대서양 건너 미국에까지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멜리에스는 미국 지사까지 설립하며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직배 시스템까지 구축하고 미국에 저작권 등록을 하는 등 현대 영화 산업의 다양한 시스템들의 초기 버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유통과 배급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달세계 여행>을 포함한 멜리에스의 영화는 수 많은 불법복제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인기만큼이나 큰 수익을 벌지는 못했다.

<달세계 여행>에서 달의 얼굴에 로켓이 꽂히는 이 장면은 현대 영화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됐다. 콘텐츠의 역사와 영화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이 작품은 세계 최초의 SF 영화라는 타이틀 이전에 제작, 배급, 유통 등 영화 산업의 거의 모든 부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영화는 당시 이 영화를 본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 콘텐츠의 매력을 느끼게 했고, 많은 사업가들이 영화의 산업적 발전 가능성을 느껴 영화 산업에 뛰어들 수 있게 한 계기를 마련해줬다. 

마술사 출신의 영화 제작자 조르주 멜리에스, 그는 이후 평생에 걸쳐 여러 면에서 현대 영화 산업에 큰 유산을 남긴다. 1938년 1월 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프랑스의 젊은 감독이나 작가들과 영화 대본 작업을 했다. 여기서 같이 작업한 많은 젊은 영화인들이 멜리에스의 옛 집 건물에서 오래된 필름과 영화 자료를 모으는 작업과 함께 영화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 곳이 바로 세계 최대의 영화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의 성지로 불리우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다. 영화제작자이며 감독이며 극본가 겸 의상 디자이너였고, 촬영감독이었으며 무대 설계자이자 음악 감독이기도 했던 조르주 멜리에스. 그는 영화 산업 아니 현대 콘텐츠 산업에 남긴 공로는 달에 박힌 로켓의 이미지와 함께 지금도 많은 영화인들에 의해 헌정되고 있다.

●문동열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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