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준의 농민사랑] “정 안되면 농사나 짓지, 뭐!”
상태바
[박범준의 농민사랑] “정 안되면 농사나 짓지, 뭐!”
  • 박범준
  • 승인 2015.11.01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시민 여러분! “너를 도와 농업을 해보겠다”고 말하세요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하는 추석명절이나 설 명절이 되면, 예나 지금이나 거의 대부분의 농촌마을에서 일어나는 풍속도는 다음과 같다.

최근에는 정도가 조금 덜하지만 농촌마을에 남아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은 조금 덜 떨어진 사람으로, 도외지에 나가서 생활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잘나고 똑똑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오랜만에 농촌마을에서 도외지에 나가서 생활하는 친구들과 농촌에 남아서 농사짓는 친구들이 모여서 대화를 하게 되면 도외지에 나간사람들이 대화를 주도하게 된다.

“요즘 우리 회사가 엄청 잘 나가는데, 내가 엄청 기여를 많이 해서 보너스도 받고, 승진도 했지”

“그래 우리 회사도 이번에 중남미랑 중동지역에 수출하게 되었는데, 엄청 고생했다”

“야! 니네 회사는 구조조정 않하냐? 우리 회사는 이번에 20% 정도 인원을 감축했는데 십년갑수했다”

농촌마을에 와서 도외지 직장생활이나 회사생활의 무용담이나 흡사 자기자랑대회라도 열렸다는 듯이 조금은 과장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면 그때가 돼서야 농촌마을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친구를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옮긴다.

“야! 철수야. 요즘 농촌생활은 어떠냐?”

“나야 뭐 그냥 지내는 거지”

“그래도 철수 니가 제일 낫다. 농촌에서 살면 걱정할게 뭐가 있냐? 짤릴 걱정을 하냐? 씨만 뿌리면 농사는 저절로 되는 거잖아”

“그러게. 철수 팔자가 상팔자지”

“나도 이번참에 서울살림 확 때려치우고, 시골에 와서 농사나 지으며 살까?”

 

묵묵히 잠자코 듣고있던 철수가 드디어 입을 열면서 격앙된 소리를 내지른다.

“야, 이놈의 새끼들아. 알만한 놈덜이 그런소릴 씨부렁거리냐. 니들이 보면 농사라는게 다 만만해 보이지. 씨앗만 뿌리면 농사가 저절로 되는줄 아냐?”

“철수야! 뭐 그런걸 같고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 무안하게”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농사를 잘 지으면 뭐하냐? 풍작이 되면 똥값이 되기 일쑤고, 흉작이 되서 오랜만에 가격을 맞춰 볼려고 하면 정부가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서 가격 정 한다고 하고, 그리고 농산물가격은 항상 제자리내지 떨어지는데, 일손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고, 인건비는 매년 오르고, 각종농자재가격도 오르고, 농사 열심히 짓는 사람치고 농가부채 없는 사람이 없다”

“야! 철수야! 텔레비에 보면 귀농귀촌해서 억대연봉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도 많고, 정부 지원도 엄청나게 많다고들 하던데?”

“만 명중에 몇 명은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대개의 농민들은 죽지 못해서 산다. 이놈의 새끼들아. 명절 때 시골에 왔으면, 사람 속 뒤집어 놓지 말고 술이나 퍼먹다가 조용히 올라가라”

갑자기 서먹서먹해지고 파장 분위기가 되고, 서로 눈치를 보다가 끼리끼리 헤어진다.

그놈의 “정 안되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 때문에..........

▲ 지난 10월초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곡리 한 콩밭에서 농부가 가뭄으로 누렇게 말라버린 콩 상태를 허탈한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마도 우리나라 농민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바로 “정 안되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농사’에 대해서 왜 도시사람들은 아주 쉽다고 생각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은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선 도시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조직적인 사고가 습관화 되어있다. 명함을 주고 받을 때, 혹은 자기를 소개할 때, “OO회사에서 구매부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결국 회사라는 ‘전체’ 속에서 자신이 구체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 하면서, 혹시나 마케팅부분이 필요하면 “우리 회사 마케팅 담당자가 나하고 친하니 소개시켜주겠다”고 한다.

이러한 조직적인 사고로 볼 때, ‘농사’는 전체이고, “자신은 ‘농사’속에서 특정한 부분을 잘하면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그리고 실제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조직적인 습관으로 인하여, ‘농사’를 짓더라도, 재배기술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나, 농업기술센터, 농촌진흥청,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고, 유통 마케팅과 관련해서는 도외지의 연고를 통해 판로를 확보하거나 도외지에 있는 사람에게 유통 마케팅을 맡기기도 한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공이 필요할 경우, 지역에 있는 가공업체에 위탁가공생산을 맡기기도 한다. 즉 여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직적인 사고 속에 아웃소싱을 맡기는 거다.

 

농민의 입장에서 ‘농사’는 왜?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이왕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같은 면적의 땅에서 좋은 농산물을 많이 생산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좋은 종자를 사와야 하고, 땅도 잘 만들어야하고, 작목에 따른 재배기술도 습득해야 한다. 그리고 각종 병충해와도 싸워야 한다. 좋은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정한 때에 적당량의 비료도 주어야 하고, 농약도 쳐야 한다.

내가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전국적으로 과잉생산이 되면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제품, 즉 효소, 잼, 천연식초 등도 만들어야 한다. 대형할인점이나 농협 하나로마트 같은 유통기구에 직접 물건을 팔 수 없을 경우에는 상인이나 지역 농협을 통해 판로를 알아봐야하고, 최근에는 SNS다 전자상거래다 하여 소비자 직거래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홈페이지도 만들어서 관리해야 한다.

혼자서 이 모든 것을 할려다 보니, ‘농사’란 어렵고 힘든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 지난 6월초 전남 해남군 옥천면장 등 직원들이 무상으로 임대한 논에서 청렴 쌀 생산을 위한 모내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과연 ‘농사’의 속성은 무엇인가? 도시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일까? 아니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농사는 ‘쉬우면서 어려운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절대로 ‘어려우면서 쉬운 일’이 아니라, ‘쉬우면서 어려운 일’인 것이다.

뭔 말인고 하면

‘농사’란 원래 변화무쌍한 자연과 한편으로 조화를 이루고 한편으로 싸워 견뎌야 하는 일이다. 홍수가 날 때도 있고, 가뭄이 들 때도 있다. 태풍이 불어서 농작물이 쓰러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병충해가 발생하여 농작물이 큰 피해를 볼 때도 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자연에 대처하기 위하여 나약한 인간이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협동’이다.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수로를 정비한다. ‘협동’으로. 농작물이 쓰러지면, 사람들이 합심해서 일으켜 세운다.

병충해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병충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농업으로 성공한 나라, 즉 농업 선진국치고 ‘품목협동조합’이 없는 나라는 전세계 한 군데도 없다. 결국 농업이 산업으로서 자기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품목협동조합’이 대전제가 되는 것이다.

선진농업국가의 ‘품목협동조합’은 자체적으로 재배기술교육을 철저히 실시한다. 협동조합내에 자체의 가공시설을 보유하여, 잉여농산물에 대해서는 쥬스, 잼 등 다양한 가공제품을 만든다. ‘품목협동조합’에서 하는 일중 가장 큰일은 바로 유통마케팅 활동이다. 자체적으로 농산물 품질 등급을 매기고, 이에 따라 백화점, 할인점 등에 직접 공급하기도 하고, 해외로 수출을 한다. 중간 상인이 끼어들 틈이 없다. 결국 품목협동조합은 생산자의 이익을 지켜내며, 소비자 국민에게도 적정한 가격에 좋은 농산물과 가공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결국 품목협동조합에 소속된 농민들은 조합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제 때에 받아서 그대로만 하면 되고, 공동구매해서 제공하는 양질의 값싼 농자재를 쓰고, 가공이며 판매에 대해서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러면서 도시민들 보다 2~3배의 소득을 올린다.

 

우리나라 농업의 실정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농업은 선진농업국가 일반에서 대전제로 생각하는 품목협동조합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 개인이 모든 것을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연유로 하여 선진농업국가 농업인에 비해서 3~4배 더 열심히 땀을 쏟아내지만, 소득은 도시민에 비하여 거의 절반에 불과한 것이다.

 

‘농사’가 품목협동조합을 전제로 한다면 참으로 쉬운면서도 소득이 되는 일이다. 이래서 ‘농사’는 ‘쉬운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쉬우면서 어렵다’고 하는데 그 ‘어렵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농사가 단순히 건강상의 이유로서 소일거리나 취미활동이 아닌 경제활동인 이상, 일반 제조업처럼 공정이 딱하고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기후 환경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무상하고, 내병성도 있고 다수확인 종자를 얻기 위해서는 육종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재배기술 이전에 품목 품종에 적합한 토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토양의 비옥도, 토질, 토양의 ph, 토양내 미량원소의 함량, 토양내 중금속 등등 제어해야 할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작물을 기를 때 주요한 요소인 물만해도 제어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다. 수질, 물의 ph, 물의 온도, 재배과정상 적정한 수분의 공급량, 온실의 경우 습도의 관리 유지 등등도 주요한 제어 요소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농작물의 생육에 미생물이 미치는 영향과 효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하여 ‘농사’는 본래적으로 품목협동조합으로 뭉치면 ‘쉬운 일’이고, 농사 자체가 갖고 있는 자연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신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으로 ‘복잡하고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혹시나 도시민 여러분!

다음 번 명절 때, 시골에 가시거들랑 “정 안되면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정하시고 싶으면, “철수야. 이번 참에 서울 일 때려 치우고, 너를 도와서 성공하는 농업을 한 번 해보고 싶은 데 어떨까? 내가 판매는 책임질께?”라고 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시골에서 농사 짓는 철수씨가 반색을 하면서 “진짜? 진짜로 그럴 생각 있어? 그러면 좋지 나야”라고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귀농 귀촌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농업=협동」이라는 대전제를 확실하게 가슴에 아로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박범준씨 이력
▲1981년 서울대 농과대 입학 ▲1986년 전남 함평군 엄다면 영농 ▲1989년 전남 농민문제연구소 연구실장 ▲1989년 전국농민운동연합 전남 정책실장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남 정책실장 ▲1991년 동양식품 상무 ▲1992년 한우리유통 대표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농어민특별위원회 사무국장 ▲1999년 성환식품 전무 ▲2001년 (주)한국농산물류 기획실장 ▲2005년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 자문위원 ▲2013년 강원도 인재개발원 심의위원 ▲2011년~현재 강원마을기업 및 주민기업 육성 자문위원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