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뗄때마다 감동 물결 '봉철살인'...신성한 통역 '샤론 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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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뗄때마다 감동 물결 '봉철살인'...신성한 통역 '샤론 최'도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02.1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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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테일의 매력, 수상 소감에서도 드러나...장벽, 계단, 차별 언급해
명장 마틴 스코세이지, 후보 감독들 언급하며 감동을 함께하는 동양적 유연함도
봉준호 특유의 은유와 유머를 맛깔나게 통역한 샤론 최, '신성한 통역으로 칭송
그가 시상식장에서 그리고 식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촌철살인의 소감들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가 시상식장에서 그리고 식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촌철살인의 소감들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작년 5월 26일 (현지시간)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후 연이은 수상소식으로 국민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었던 봉준호 감독은 그 어디보다 입성하기 어려웠던 할리우드에서 무려 4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지난 9일 (현지시간) 미국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는 'PARASITE'와 봉준호가 번갈아 가며 두번씩 호명됐다. 기생충이 영어로 'parasite'라는 것을 국민 모두가 기억하게 만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오스카 첫 수상은 각본상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예상을 어느 정도 했었을까. 담백하지만 의미있는 내용을 담았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입니다. 국가를 대표해서 쓰는 건 아닌데 이 상은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입니다."

 

두번째 수상은 국제영화상이었다. 수상자로 호명된 봉준호는 또 한번의 수상에 기쁨이 역력했다.

 

카테고리 이름이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바뀌었잖아요. 그 첫번째 상을 받게 되서 더더욱 의미가 깊고요.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냅니다.

 

후에 밝힌 대로 '오늘 할 일은 끝났구나'하며 두 번의 수상 후 마음을 놓고 있었다는 봉준호. 미국 아카데미가 아시아 신예 감독에게 수여할 상이 아직 남아있었다는 것은 모른 채 말이다.

영화를 잘 만드는 것 만큼 말도 잘하는 봉준호 감독의 촌철살인의 소감들을 모아보았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쿠엔틴 타란티노 & 봉준호 오픈토크'에서 봉준호 감독(왼쪽)과 봉감독이 형님이라 부르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함께 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쿠엔틴 타란티노 & 봉준호 오픈토크'에서 봉준호 감독(왼쪽)과 봉감독이 형님이라 부르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함께 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봉준호가 언급한 계단 ㆍ장벽ㆍ 차별...그의 꿈은 이미 실현되었다  

지난 1월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뒤 밝힌 소감은 봉준호가 어떤 감독인지 그리고 그가 할리우드의 벽이 얼마나 높다고 생각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이 나온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입니다." 

 

제발 그 장벽을 넘어서 전세계가 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의 영화로 감동 받길 원하는 솔직함이 묻어나는 소감이었다. 그의 소감이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골든 글로브 수상 이후 미국에 '기생충' 상영관은 급격히 늘었으며 외국어 영화에 인색했던 미국인들이 1인치도 안되는 자막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각본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조합상 시상식에서는 “우리 영화의 스토리와 뉘앙스를 이해해줘서 고맙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장벽을 더 높이지만, 우리는 장벽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마치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장벽을 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소감이었다는 평이다.

봉감독은 오스카 4관왕을 이룬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1인치 장벽'에 대한 새로운 소감을 업데이트했다.

 

지금 와서 찬찬히 돌이켜보면 때늦은 발언이었습니다. 이미 많이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언어장벽이라는 발언은 뒤늦은 감이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장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날이 더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은) 이미 영화에 흠뻑 들어가 있었고, 진입 장벽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기생충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며 영화 전체를 연결하는 오브제인 '계단'도 언급했다.

 

"여기 로열 앨버트 홀에도 계단이 되게 많아서 땀이 막 나려고 하는데. 기생충도 계단 얘기예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봉감독은 “이번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외국어로 쓰여진 시나리오를 BAFTA 여러분이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면서 "계단을 올라가려 했던 한 가난한 남자가 계단을 오히려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이후 이어진 프레스콜에서는 "여성, 인종, 성적 정체성 등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하는 여러 노력으로 인해) 균형이 자연스럽게 맞춰질 날이 올 것"이라고 답했다.  

 

봉준호의 찬사에 울듯말듯 감격한 마틴 스코세이지. 스코세이지 감독도 영화 인생 동안 단 한번의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을 뿐이다. 사진=abc 방송 캡쳐
봉준호의 찬사에 울듯말듯 감격한 마틴 스코세이지. 스코세이지 감독도 영화 인생 동안 단 한번의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했을 뿐이다. 사진=abc 방송 캡쳐

 

동료ㆍ 선배 감독들과 배우들에게 功을 돌리는 겸손함

봉감독은 골든글로브 감독상 수상 당시에는  "오늘 함께 후보에 오른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리고 멋진 세계 영화 감독님들과 함께 후보에 오를 수 있어서 그 자체가 이미 영광입니다."라고 밝혔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오스카각본상ㆍ외국어영화상, 칸 영화제 감독상 등을 수상한 스페인의 거장 감독.  

그 누구도 오스카 감독상까지 수상할 것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세이지(감독상 1회 수상), 토드 필립스, 샘 멘데스 (감독상 1회 수상), 쿠엔틴 타란티노 (각본상 2회 수상)  등 당대 최고의 감독들이 망라된 이번 시상식에서 그러나 호명된 이는 생전 처음 첫 노미네이트된 한국 감독 봉준호였다. 

감독은 얼이 나간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 다시 한 번 후보에 오른 감독들을 언급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습니다. 영화 공부를 할 때 책에서 읽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마티 (마틴의 애칭)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해서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는데 상을 받을 줄 몰랐다."면서 "제 영화를 아직 미국 관객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하셨던 '쿠엔틴 형님'(쿠엔틴 타란티노)도 계신데 너무 사랑하고 감사하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라고 외쳤다. 
  
이어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토드 필립스, '조커')나 샘 (샘 멘데스, '1917') 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독님"이라며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5등분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위트있게 수상 소감을 전했다.

배우들에게도 공을 돌렸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런 정치적인 메시지나 사회적인 주제도 있지만, 그것을 아주 매력적이고 관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전해주는, 우리 뛰어난 배우들의 매력이 어필됐기 때문에 미국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투나잇쇼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가운데)와 통역을 맡은 샤론 최(왼쪽). 오른쪽은 지미 팰런. 사진=유튜브  캡쳐
투나잇쇼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가운데)와 통역을 맡은 샤론 최(왼쪽). 오른쪽은 지미 팰런. 사진=유튜브 캡쳐

 

"Translations are sacred." (통역은 신성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서 케이(스티브 연)는 미자와 '동물해방전선' 동료들과의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는 역할. 그러나 케이가 통역을 일부러 틀리는 바람에 옥자와 미자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일로 쫓겨난 케이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트럭을 몰고 와 그들을 구한다. 그러면서 보여준 팔뚝엔  "Translations are sacred (통역은 신성하다)." 가 새겨져 있었다. 봉감독은 '설국열차'와 '옥자'를 촬영하면서 미국 배우들과 스텝들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이후 봉감독 곁에서 통역을 맡은 이는 샤론 최(최성재)씨. 봉준호는 샤론 최를 "언어의 아바타처럼 모든 통역을 완벽하게 해주는 놀라운 최성재씨"로 칭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시상식이 끝난 후 샤론 최를 단독 기사로 다뤘다. NYT는 "그녀는 레드 카펫과 TV 토크쇼 등을 통해 봉감독의 연설과 인터뷰 내용을 영어로 번역했고 오스카 시상식에서 4차례나 무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유튜브에도 샤론 최의 통역 장면을 담은 영상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기자의 곤란한 질문에 능숙 대처' (152만회), '가장 어렵다는 한국어 유머 통역하기'(111만회), '기생충 영화 흥행에 샤론 최 통역사가 주목받는 이유 분석'(114만회) 등의 동영상이 인기다. 

미국 NBC 토크쇼 '더 투나이트 쇼'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은 쇼 호스트 지미 팰런의 질문 "기생충이 어떤 영화인가?"라는 진행자의 물음에 "나도 되도록 여기서 말을 안 하고 싶어요. 스토리를 모르고 가서 (영화를) 봐야 재밌거든요."를 "I'd like to say as little as possible here because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 로 통역했다. 여기서 'cold'는 준비나 사전 고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라고. 베테랑 통역사들 조차 탁월한 단어 선택과 매끄러운 통역을 칭찬한다. 봉감독의 촌철살인을 살린 뛰어난 통역이라는 것이다. 
최씨는 한국에서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영화학도다. 단편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으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감독이라고 전해진다. 

전문통역사가 아니면서도 적절한 어휘 선택과 뉘앙스를 잘 캐치한 샤론 최의 통역이 문화 차이를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문화 교류에 있어서 통역의 중요성을 새삼 환기시켰다고. 심지어 "신성한 통역이 무엇인지 보여줬다."는 칭송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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