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⑬ 로고가 필요없는 특별함, 보테가 베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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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⑬ 로고가 필요없는 특별함, 보테가 베네타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20.02.0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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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짜임으로 대표되는 보테가 베네타의 독보적 매력
토마스 마이어와 함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장
셀린느 출신의 다니엘 리 입성에 ‘올드 셀린느’ 팬들 응원
보테가 베네타 패딩 카세트 백 이미지 컷 (사진=보테가 베네타 인스타그램)
보테가 베네타 패딩 카세트 백 이미지 컷 (사진=보테가 베네타 인스타그램)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요란하게 반짝거리지 않고도, 커다랗게 로고를 넣지 않고도, 특유의 가죽 직조 기법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만으로 명품의 반열에 오른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토마스 마이어(Tomas Maier)의 모던한 감각을 만나 세계로 무대를 넓히는 데 성공한 보테가 베네타는 이제 다니엘 리(Daniel Lee)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브랜드 시그니처인 인트레치아토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 장인의 손으로 섬세하게 엮어낸 보테가 베네타의 가치

보테가 베네타는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비첸차에서 가죽 관련 일을 하던 미켈레 타데이(Michele Taddei)와 렌초 첸자로(Renzo Zengiaro)에 의해 1966년 설립되었다.

보테가 베네타는 ‘베네토의 작업실’을 뜻하는 이탈리아 어.

장인들의 손을 빌려 여러 가지 가죽 제품들을 개발하던 타데이와 첸자로는 그 과정 속에서 브랜드의 상징 ‘인트레치아토’를 탄생시켰다.

‘합쳐 꼬았다’는 의미의 인트레치아토는 가죽을 가는 끈 형태로 길게 자르고, 이들을 꼼꼼하게 엮어서 격자 문양을 이루도록 하는 제작 기법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질감과 튼튼하면서도 부드러운 사용감을 어필하며 보테가 베네타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트레치아토 자체가 훌륭한 디자인이 되고,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도 되었기 때문에 굳이 브랜드 로고를 표시할 필요도 없었던 보테가 베네타는 이러한 컨셉을 담은 슬로건 '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당신의 이니셜만으로 충분할 때)'를 내걸었다. 스스로의 가치가 충분하다면 명품 로고를 앞장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보테가 베네타와 함께 하는 고객의 존재감을 빛내준 것.

보테가 베네타의 인트레치아토 아이템들은 장인들이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만큼 카피하기도 어려워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지킬 수 있었고, 과시를 위한 화려함보다 은근한 품격을 원하는 까다로운 패션리더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1974년 뉴욕 매장을 열며 해외 진출을 시작한 보테가 베네타는 셀럽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에도 성공하며 인기를 더해갔다. 1980년엔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 Gigolo)’에서 사랑에 흔들리는 상류층 여성을 연기한 로렌 허튼(Lauren Hutton)에게 클러치 백을 스타일링 해주었다. 이 붉은 색의 인트레치아토 클러치는 관객들의 시선을 끌며, 보테가 베네타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2016년에 ‘로렌 1980’ 백으로 다시 발표되기도.

하지만 차츰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경영이 어려워지자, 타데이와 첸자로는 타데이의 전처 라우라 몰테도(Laura Moltedo)에게 보테가 베네타를 넘겼다. 그러나 로고를 내세우지 않았던 브랜드의 모토를 저버리고 ‘BV’ 로고를 사용하는 등 오판이 이어지면서 보테가 베네타는 회복의 길을 찾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테가 베네타 북 커버, 제작 과정 모습 3컷, 초창기 광고, 로렌 1980 백,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 속 로렌 허튼과 보테가 베네타 클러치 백 (북 커버, 광고, 영화 외 사진=보테가 베네타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테가 베네타 북 커버, 제작 과정 모습 3컷, 초창기 광고, 로렌 1980 백,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 속 로렌 허튼과 보테가 베네타 클러치 백 (북 커버, 광고, 영화 외 사진=보테가 베네타 홈페이지)

◆ 구찌의 선택 받은 보테가 베네타, 토마스 마이어의 지휘로 성장

2001년 2월, 암흑기를 보내던 보테가 베네타에게 ‘구찌(Gucci)’가 다가왔다.

당시는 디자이너 톰 포드의 활약으로 인기가 폭발하던 구찌가 ‘PPR(Pinault-Printemps-Redoute, 현 케링 Kering)’과 손을 잡고 여러 명품 브랜드를 인수하며 그룹사로 덩치를 키워가던 시기.

보테가 베네타의 아직 녹슬지 않은 가치를 알아보고 한 식구로 맞이한 구찌는 같은 해 6월 토마스 마이어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독일 포르츠하임 출신의 토마스 마이어는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나 대안학교인 발도르프 스쿨에서 자유롭게 학창 시절을 보낸 후 파리의상조합학교에서 패션수업을 받았고,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에서 남성복을, ‘에르메스(Hermès)’에서 여성복과 가죽 제품을 디자인하며 경력을 쌓았다.

1999년 바쁜 일상을 멈추고 미국 플로리다로 향한 마이어는 따뜻한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수영복 컬렉션을 런칭했는데, 보테가 베네타를 맡을 적임자로 지목되면서 결국 다시 패션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먼저 보테가 베네타의 아이덴티티를 재정립하는 작업에 착수한 토마스 마이어는 예전 슬로건의 메시지에 맞춰 로고를 없애고, 인트레치아토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최고급 소재와 장인의 기술로 퀄리티를 높이는 동시에 그는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과 사용하기 편리한 기능성을 접목시켜 보테가 베네타에서의 첫 컬렉션을 준비했고, .그 결과 심플한 토트 백, ‘카바(Cabat)’를 탄생시켰다.

가방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인트레치아토에 시선이 가도록 최대한 간결한 모습으로 제안된 카바 백은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아이콘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잇 백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는 성과도 냈다.

전통의 인트레치아토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토마스 마이어는 여러 컬러를 배합하거나 장식을 더하며 변화를 주었고, 인트레치아토의 격자 문양을 프린트하거나 금속에 새기는 등 디자인 모티브로도 활용했다. 작고 둥근 클러치 백 ‘놋(Knot)’의 잠금 장치를 매듭 모양으로 표현하기도.

2005년 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 보인 의상들로도 여유롭고 우아한 매력을 어필하며 더욱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게 된 보테가 베네타는 의상과 핸드백은 물론, 슈즈와 주얼리, 아이웨어, 시계, 향수 그리고 가구까지 상품 라인을 확대하며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던 보테가 베네타와 토마스 마이어는 2016년 각각 창립 50주년과 합류 15주년을 기념하며 밀라노의 브레라 국립예술대학에서 축하 패션쇼를 열기도 했으나, 이후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2018년 아쉽게도 헤어지기에 이르렀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토마스 마이어(사진=유니클로 홈페이지), 전시회에 세워진 카바와 베네타, 놋 백의 모형, 2009년 광고 2컷, 2013년 광고, 2005년 광고 캠페인,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응용한 슈즈와 선글래스 (광고 외 사진=보테가 베네타 홈페이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토마스 마이어 (사진=유니클로 홈페이지), 전시회에 세워진 카바와 베네타, 놋 백의 모형, 2009년 광고 2컷, 2013년 광고, 2005년 광고 캠페인,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응용한 슈즈와 선글래스 (광고 외 사진=보테가 베네타 홈페이지)

◆ ‘올드 셀린느’ 팬들을 몰고 온 새로운 디렉터, 다니엘 리

토마스 마이어가 브랜드를 다시 일으키는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하는 강수를 둔 보테가 베네타.

2018년 7월 보테가 베네타는 32세의 다니엘 리에게 중책을 맡길 것을 발표했다.

영국 브래드포드 출신의 다니엘 리는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즈를 졸업한 후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발렌시아가(Balenciaga)’, 그리고 ‘도나 카란(Donna Karan)’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의 커리어 가운데 패션계의 눈길을 끈 부분은 ‘셀린느(Celine)’에서의 경력. 셀린느의 인기를 상승시켰던 피비 파일로(Phoebe Philo)와 함께 작업했었다는 이유에서다.

피비 파일로는 모던하면서도 여성스럽고 편안한 셀린느 룩으로 수많은 팬들을 끌어 모았지만, 그런 파일로가 떠나면서 셀린느의 분위기는 너무나 다르게 바뀌어버렸고, ‘올드 셀린느’의 지지자들은 마음을 둘 곳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피비 파일로의 팀에서 활동했던 다니엘 리가 다른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올드 셀린느’ 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희망과 기대 속에 열린 보테가 베네타에서의 첫 패션쇼에서 다니엘 리는 도회적인 세련된 스타일들을 내놓으며 응원에 보답했다.

보테가 베네타 클래식을 잘 살리기 위해 브랜드의 상징, 인트레치아토와 마주한 그는 최고급 가죽 소재를 골라 전통을 이어가는 한편 재미있는 재해석도 시도했다.

바로 인트레치아토를 수퍼 사이즈로 부풀린 것.

큼지막하게 몸집을 불린 다니엘 리의 인트레치아토는 시크하게 격자 문양을 형성하거나, 귀엽게 통통한 패딩으로 변신하며 백과 슈즈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2020년 봄 시즌 컬렉션에도 등장했는데, 여기에 더해 다니엘 리는 서로 엮이고 연결된 인트레치아토를 모티브로 삼아, 부분 꼬임을 준 니트와 체인 목걸이들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중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무대를 완성했다.

과감한 디자인의 스트리트 패션이 트렌드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피로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정제된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다니엘 리의 보테가 베네타에겐 다시 영역 확장에 나서기 좋은 타이밍이 아닐까. ‘올드 셀린느’ 팬들의 함성도 당분간 이어질 테니까.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니엘 리, 보테가 베네타 2020 봄 시즌 컬렉션 중 10컷 (사진=케링, 보테가 베네타 홈페이지)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니엘 리 (사진=케링 홈페이지), 보테가 베네타 2020 봄 시즌 컬렉션 중 10컷 (사진=보테가 베네타 홈페이지)

2013년 비첸차 외곽에 위치한 몬테벨로 비첸티노의 18세기 빌라에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아틀리에가 꾸며졌다.

작업 공간 곁에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과 가죽 장인을 양성하는 학교도 세운 보테가 베네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인트레치아토와 보테가 베네타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를 지키며 시대의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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