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시간과 사랑 그리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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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진 시간과 사랑 그리고 삶
  • 황헌
  • 승인 2015.10.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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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황헌(사진) 앵커의 글입니다. /편집자주)

 

 

파리 북쪽 외곽에는 많은 명사들의 무덤이 공원처럼 꾸며진 명소 뻬르 라 셰즈(Pere la Chaise)라는 묘역이 있다. 그곳엔 연중 장미 다발이 놓여있는 쇼팽의 무덤부터 가을이면 떠오르는 남자 샹송 ‘고엽’의 주인공 이브 몽탕, 그리고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아이콘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긴 마르셀 프루스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명사들의 무덤이 있다. 또한 <마지막 수업>의 작가 알퐁스 도데, 음악가 비제 그리고 “여자는 이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길 원하지만 남자는 지금 사랑하는 이 여자에겐 자신이 첫사랑이기를 바란다.”는 말로 유명한 영국 출신 작가 오스카 와일드도 그곳에 묻혀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오늘날 복싱을 3분을 경기하고 1분을 쉬게하는 ‘퀸즈베리 룰’을 만든 퀸즈베리 후작의 아들과 동성애를 한 것으로 재판을 받은 끝에 영국 생활을 접고 불행한 만년을 파리에서 보내다 이곳 페르 라 셰즈에 묻힌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사랑을 ‘그 사람을 소유하려는 고통스럽고도 미친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곧 그에 대한 완전한 소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타자를 완전히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은 주체를 광기와 혼미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그리하여 사랑의 대상은 쾌락의 대상이 아닌 탐색과 고통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질투의 감정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진실에 대한 열정을 되찾게 해주고 그 열정이 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부분적 왜곡이라 할지라도 마비된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서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심층의식의 수법’ 또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함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예작으로 암기의 대상이었음을 기억하면서 웃음이 나온다. 프루스트는 내가 볼 땐 탐미주의자다. 사랑의 실체를 어쩌면 그리 잘 묘사해낼 수 있는지 감탄사가 나온다. 물론 동시대의 화가나 음악가 철학가를 오가는 그의 미에 대한 탐구가 때론 더 깊은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탐미주의자라 나는 부른다.

 

어제 <아델라인>이라는 영화를 봤다. 있을 수 없는 현실이다. 주인공 아델라인이 교통사고로 샌프란시스코 바다에 빠진 차에서 순간적인 수만 볼트의 전기를 담은 번개를 맞고 깨어난 뒤 노화가 중지되는 존재로 바뀌고 그로 해서 생기는 늙지 않는 인간이 갖는 고뇌와 고통을 그린 영화다. 현실은 있을 수 없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더 빠르게 늙어가는 우리네 생에서 한번쯤 시간, 늙어감, 사랑 그리고 인생의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극제를 던져준다.

 

한때 자신과 사랑했던 남자(해리슨 포드 분)의 아들과 절절한 사랑에 빠진 1907년생 예쁜 젊은 할머니 아델라인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버려 둘거야.”라는 구절이 포함된 이문세의 ‘옛사랑’ 노랫말처럼 젊은 시절 애인이던 해리슨 포드의 충고대로 결국 그 아들을 사랑하는 길을 선택하고야 만다. 멈춰진 시간의 의미는 자못 크다. 시간은 멈춰지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래서 반사고를 하게 만든다. 저렇게 늙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값싼 가치다.

 

몇 년 전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인가 하는 영화도 봤었다. 어느 시점부터 사랑하는 여자는 점점 늙어가 결국 할머니가 되어 가지만 남자는 점점 젊어져 결국은 아기를 끌어안고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 참, <어바웃 타임>도 있었다. 시행착오의 실수를 실제 삶으로 다시 실천해서 실 수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가진 남자의 사랑 이야기였지. 참 이렇게 꼽다 보니 이즈음 시간 놀이를 모티프로 만든 영화들이 많았던 셈이다.

 

문학을 하고 영화를 만드는 예술인들에게 있어 인간 의식의 실체를 기상천외한 상황설정으로 파헤치는 기법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특히 시간을 갖고 요리를 하는 기법은 가볍게 이 시공을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에 적합하다. 길게 보면 종교가 그런 상상력에 도움을 주는 면도 있다. 영원불멸할 것이라는 믿음, 죽고 난 뒤의 세계의 존재, 지옥과 천국, 악과 선 그리고 사와 생의 좌우 동형 함수를 통해 인간은 벤자민 버튼이 되기도 하고 아델라인이 되기도 하고 예수나 석가가 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많지 않다. 아델라인이 사랑을 나눈 엘리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말 한 마디 해줘”라고 말하자 엘리스는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해”라고 하는 대사가 뇌리에 남는다. 곧 늙어갈 엘리스에게 함께 늙어가지 못해 결국은 비련의 주인공이 될 거를 예감하고 그와의 사랑을 오래 기억할 말을 듣고 싶어서 한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지금이 너무 황홀하다. 이 소중한 감정 “지금만을 기억하지 뭔 다른 말이 더 필요하느냐?”는 의미로 답한다.

 

가을과 맞는 영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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