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귀를 기울이게 하던 이 시대의 스승, '신영복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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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귀를 기울이게 하던 이 시대의 스승, '신영복 평전'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0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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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대학교 시절 선생의 동료이자 제자인 최영묵· 김창남 교수 펴내
투옥 전 27년, 감옥에서의 20년, 출감 후 27년...선생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눠
감옥과 학교라는 세상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 꿈꾼 신영복 선생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을 맞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기자간담회를 가지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을 맞아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기자간담회를 가지던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평전’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를 말한다. 평전 주인공이 문학인이라면 작품 활동을 통해서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 또 그런 요소들이 평전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평전은 어쩌면 재미없는 글일지도 모른다. 글의 태도가 평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자가 평전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책에서 다루는 주인공에 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서점에서 ‘신영복 평전’을 집어 든 이유이다.

내가 처음 읽은 신영복 선생의 글은 1988년에 나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라는 구절이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 마음에 와닿았다고 고백한다.

타올랐던 올림픽 성화처럼 세상은 뜨거워 보였지만, 실상은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서늘한 기운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감옥에서 20년을 산 신영복 선생의 따뜻한 신념을 담은 글이 많은 독자에게 위로가 되었다. 1991년에 선생이 번역한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도 내 기억에 오래 남는 책이었다.

그러곤 잊고 지냈다. 신영복 선생이 간혹 일간지에 여행기를 연재한다든지 서예 전시회를 한다든지 하는 소식은 들렸지만 살아남느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다 2016년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다시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게 되었다. ‘담론’을 읽었고 ‘강의’를 읽었고 ‘사람아 아, 사람아!’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의 4주기에 ‘신영복 평전’을 읽었다.

 

신영복 평전. 돌베개 펴냄.
신영복 평전. 돌베개 펴냄.

 

‘신영복 평전’은 선생과 성공회 대학교에서 생활을 함께한 최영묵과 김창남이 함께 썼다. 두 저자는 신영복 선생의 동료 교수이기도 했지만 제자이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들은 책에서 선생을 아호인 ‘쇠귀’로 부른다. 책은 모두 4부로 나뉜다.

1부 ‘쇠귀의 삶’은 신영복 선생의 삶을 다룬다. 2부 ‘쇠귀의 사상’은 신영복 선생 사상의 형성과정과 주요 내용을 다룬다. 3부 ‘저술의 세계’는 그의 주요 책들의 내용과 저작 일화를 다룬다. 4부 ‘숲으로 간 나무’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신영복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룬다.

저자들은 신영복 선생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감옥에 가기 전 27년, 감옥에서의 20년, 감옥에서 나와서 27년. 이러한 신영복 선생의 삶은 학교로 상징할 수 있다고.

 

“선생은 감옥 20년을 전후로 각각 27년여의 세월을 사셨습니다. 전반 27년은 일관되게 제도권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살았고,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반 27년은 성공회대를 중심으로 ‘선생’으로 사셨습니다. 감옥도 대학이라고 하시니, 결국 평생 학교에서 사신 셈입니다.” (서문에서)

 

평생을 학생처럼 구도자처럼 산 신영복 선생은 말과 글과 삶이 일관했다. 사람들이 신영복 선생을 좋아한 이유는 선생의 말과 글에는 선생의 삶이 정직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의 말은 과장되지 않았고, 글은 군더더기 없이 담담하고 냉철하다고.

 

“많은 애독자가 선생 글쓰기의 특징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스미는 문체의 미학, 방법과 인식상의 반계몽성, 자신에서 출발해 세계로 향하는 점증법적인 메시지 등을 지적한다.” (374쪽)

 

‘신영복 평전’은 선생이 낸 책과 대학에서 한 강의를 깊게 분석한다. 동양 고전을 중심으로 한 강의와 책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일화들이 꼼꼼히 나온다. 그런 강의와 저술의 근간이 된 건 역시 20년 동안 감옥에서 관찰하고 연구한 ‘인간’과 ‘동양 고전’ 덕분이었다고.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명저를 남긴 선생은 옥살이 중에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워 출소 후 탁월한 서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사진은 서화 '처음처럼'. 사진=연합뉴스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등 명저를 남긴 선생은 옥살이 중에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워 출소 후 탁월한 서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사진은 서화 '처음처럼'. 사진=연합뉴스

신영복 선생은 감옥을 나온 후 인간 해방을 이야기하는 ‘사상가’로 자리 잡는다. 살아생전 선생의 수식어로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였다. 저자들은 신영복 선생이 왜 이 시대의 스승인지 그의 ‘사상가’적 면모를 들어 설명한다.

신영복 선생의 사상은 ‘관계론적 인간학’에서 출발한다. 선생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선생이 감옥살이 20년과 이후 삶을 통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사유 체계의 점검과 삶과 사상의 통일 문제”였다. 선생에게 “사상이란 현실에 대한 압축적 인식”이었다고.

“인간의 현실 인식 자체가 자신의 사유 작용이라는 점에서 사상은 현실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신영복 선생 사상의 근간은 ‘인간 해방’이다. 사회학자인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가 강조한 다음의 평가가 신영복 선생의 사상을 잘 설명한다.

 

“선생이 품고 있는 인간 해방 사상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현실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중략) 그것은 인간의 얼굴을 강조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경직성을 넘어서면서도, 동시에 과학적 분석을 강조하는 점에서 추상성을 아우르는 구체성을 획득한다.” (185쪽)

 

신영복 선생의 사상이 독창적이면서도 이 시대 한국과 잘 맞는 사실적이고 실용적인 사상이라는 평가다.

스승은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람이다. 주어진 수업 시간에 주어진 분량을 그냥 쏟아낸다고 해서 스승은 아니다. 그가 가진 회초리가 무서워서, 그가 내릴 평가가 두려워서 귀를 기울이는 척하게 만드는 사람은 스승이 아니다.

하지만 공포를 조장하고 증오를 일으켜서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람은 스승이라 할 수 없다. 우리와 다르니까 선을 그으라고, 받아들이지 말자고, 차별해서 마땅하다고 선동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부를 수는 없다.

우리와 다른 것에 증오가 넘치는 이 시절, 신영복 선생이 그립다. 선생과 같은 시대의 스승이 보이지 않아서 더 그립다. 비록 우파 언론으로부터 ‘좌파 이데올로그의 대부’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시대가 신영복 선생을 기억하게끔 한다. 좌든 우든 지도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을 열고 귀를 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역사의 질곡을 안고 감옥과 학교라는 세상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꾼 신영복 선생의 말과 글이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온다. 그가 떠났으니 그가 꿈꾸고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건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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