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국]① 'EU 떠나는' 영국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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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국]① 'EU 떠나는' 영국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1.30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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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회 최종 비준, 11개월간 '전환기간'...노딜 브렉시트 가능성도
내년 1월1일부터는 행정절차 거쳐야 거주권 보호 
이동의 자유, 여권, 비자 등 검색어 급증 추세...불안감 반영
​2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뤠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브렉시트 협정 표결 뒤 의원들이 손을 잡고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한국 제목: 석별의 정)'을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뤠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브렉시트 협정 표결 뒤 의원들이 손을 잡고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한국 제목: 석별의 정)'을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2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스코틀랜드 전통 노래인 '올드 랭 사인'이 울려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석별의 정'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의원들은 떠나는 영국의 행복을 기원했다. 

유럽의회는 이날 영국의 EU 탈퇴협정 법안을 최종 승인했다. 브렉시트를 위한 마지막 관문까지 모두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31일 오후 11시(그리니치 표준시·GMT)를 기해 영국과 EU는 결별을 하게 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년7개월만에 영국이 EU를 떠나는 것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영국은 더이상 EU 가입국이 아니며, 영국 시민은 더이상 EU 시민이 아니다.

"사물은 변할 수 밖에 없지만, 우리의 우정은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는 파트너와 동맹국으로서 새로운 장을 시작한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영국의 EU 탈퇴 협정에 서명하면서 한 말이다. 비록 영국과 EU의 우정은 남아있을지 몰라도 사물이 변하듯 모든 것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31일 이후부터 오는 12월31일까지 11개월간은 변화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전환기간에 돌입한다.

영국과 EU는 이 기간 동안 일반 시민들에게 이전과 다름없는 '변하지 않은' 삶을 약속했다. 하지만 동시에 치열한 협상 싸움의 과정이기도 하며, 2021년 이후의 삶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인 점도 분명하다. 

영국이 EU와 이별하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과정 역시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브렉시트 이전과 이후, 영국인들과 영국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의 삶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할까. 

심오한 예외주의, 브렉시트를 이끌다

심오한 예외주의(Profound sense of exceptionalism).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브렉시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심오한 예외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였던 대영제국. 세계적이었던 영국의 과거는 오늘날 영국인들에게 '심오한 예외주의'를 심어주었다. 

영국과 유럽의 과거 경제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는 더욱 이해가 쉽다. 미국발 금융위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로존 재정위기가 불어닥쳤다. 그리스 정부는 과도한 국가부채로 인해 국가경제위기가 초래됐고, 2010년 4월 EU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같은 해 11월 아일랜드에 이어 2011년 4월 포르투갈, 2012년 6월 스페인 등 유럽국가들이 연이어 구제금융을 신청, 유로존은 순식간에 재정위기에 빠지게 됐다.

반면 영국은 예외였다. 여타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영국은 탄탄한 경제 상황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영국은 유로존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EU 회원국으로서 유로존 위기 대응에 필요한 대규모 구제 금융 지원금을 떠안게됐다. 여기에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중동 난민들이 영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을 위한 복지 지출을 단행했고, 영국 내 고용시장의 일부를 내주게 됐다.  

'심오한 예외주의'를 간직해온 영국인들 사이에서 유로존 경제 위기에 대한 영국의 부담, 난민들의 대거 유입 등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영국과 EU의 결별을 뜻하는 '브렉시트'에 대한 요구가 점차 높아졌다.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국민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가 실시되면서 근소한 차이로 찬성(51.89%)의 비율이 높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됐다. 브렉시트 찬성은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별도 힘들었지만 그 이후도 쉽지 않다

국민투표 이후에도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으나 보리스 존슨 총리가 '조기 총선'이라는 막강한 카드를 던지면서 지지부진했던 브렉시트가 일사천리에 진행됐다. 보수당이 과반을 확보하면서 브렉시트 합의안이 무사히 의회를 통과했고, 여왕의 재가를 거쳐 영국과 EU 양측이 탈퇴 협정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31일 오후 11시(그리니치표준시·GMT)를 기해 영국과 EU는 결별하게 됐다. 

당분간은 영국과 EU 시민들이 느낄만한 변화는 없다. 12월31일까지 전환기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영국 시민들은 이 기간 동안 EU 회원국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니며, 영국에 거주하는 EU 시민들도 예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게 된다. 반면 영국 정부와 EU는 힘든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12월31일 이전까지 매우 복잡하고 광범위한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항이 예상된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미 존슨 총리가 전환기간의 연장은 없다고 못박은 상황이다. 존슨 총리는 전환기간의 연장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EU의 양보를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지만, EU 지도부의 입장 역시 강경하다.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는 27일(현지시각) "영국과의 향후 무역협상에서 단일시장 접근권을 두고 절충은 절대로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절대로(Never)라는 단어를 무려 3차례나 사용했다. EU측의 양보를 내심 기대하는 영국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도 해석된다. 

만일 양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연말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게 되며, 이미 브렉시트를 단행한 영국은 아무런 협정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와 다름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브렉시트에 맞춰 영국에서 발행될 기념주화.'평화, 번영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우정(Peace, Prosperity and Friendship with all nations)'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연합뉴스
브렉시트에 맞춰 영국에서 발행될 기념주화.'모든 나라와 평화, 번영 그리고 우정을(Peace, Prosperity and Friendship with all nations)'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년 1월1일, 영국인에게 닥칠 변화

전환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1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7개 EU 회원국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인들은 행정절차를 거쳐 그들의 거주권을 보호받게 된다. 영국인들을 위해 새로운 형태의 거주권을 만들지 여부를 포함, 각종 행정적인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는 각 EU 국가들의 결정에 달려있다.

EU 27개국 국가들은 그곳에 남기를 원하는 영국 시민들에게 거주권을 보장하는 디지털 문서를 제공해야만 한다.

다만 이것은 해당 영국인이 거주하는 국가에서의 권리를 보장할 뿐 유럽연합 내에서의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영국 시민이 EU 시민들처럼 새로운 직업을 찾아 폴란드로 자유롭게 이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회는 이와 관련해 EU 국가에 거주중인 영국인들에게 자유로운 이동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영국에 거주하는 EU 시민들은 2021년 6월까지 영국에 체류할 수 있는 영국 정착 지위를 등록해야 한다. 이는 영국에서 최소 5년 이상 거주한 이들에게만 해당된다. 만일 5년 미만으로 영국에 거주한 이들은 사전정착지위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영국에서 최대 5년간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전환기간 이내에 영국으로 이주해야만 한다. 

영국에 정착을 원하는 EU 시민들은 2021년부터 비자나 취업허가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영국과 EU 양측 모두 최대 90일까지 단기체류하는 경우 비자를 면제하는 제도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U 떠나는 영국에 시민들 불안감도 증폭

연말까지 11개월간 영국과 EU 시민들은 지금과는 별반 차이없는 일상이 이어지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들의 불안감은 상당하다. AP통신은 이 과정이 영국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을 '실험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정착 지위를 신청하는 일이 쉬울 수도 있으나, 또다른 이들에게는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내 EU 시민들을 연구해온 탄자 부엘트만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시민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상당한 수치로 이미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영국 정부는 65파운드(약 85달러)만 지불하면 휴대폰으로 별다른 어려움없이 정착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미 많은 이들에게 정착지위 혹은 사전정착지위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2021년 6월말까지 정착지위를 신청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떠한 불이익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FT는 지난 30일동안 런던지역의 구글 검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민과 시민권에 대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이동의 자유'와 '여권', '비자'에 대한 문의가 급증한 것은 영국에 거주하는 EU 시민들의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존슨 총리 정부는 '이민'문제와 관련, 호주식 포인트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숙련된 근로자만 영국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턱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 문턱을 유지함으로써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차지할 우려를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이 영국 정부 측 설명이다.  

FT에 따르면, 영국이민자문위원회(MAC)의 앨런 매닝 교수는 "새로운 제도 하에서 영국으로 이주하는 자들의 수는 줄어들겠지만, 영국 경제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으며 피할 수 없는 어려운 절충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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