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이시스 여신을 모신 아름다운 필레 신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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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이시스 여신을 모신 아름다운 필레 신전 ②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 승인 2020.01.2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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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오피니언뉴스=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①에 이어 

이시스 여신을 모신 아름다운 필레 신전

아부심벨 코스에 1박2일을 투자한 덕에 아스완 시내투어에 주어진 시간이 우리도 많진 않았다. 그래서 차를 한 대 빌려 하루 동안 가보고 싶은 곳을 몇 곳 선택해 돌았다. 여러 볼거리 중에 필레 신전, 누비아 마을, 미완성 오벨리스크, 누비아 박물관을 택했다. 코끼리 상아가 유명했다던 엘레판티네섬의 아스완 박물관도 방문하고 싶었지만, 하루에 두 개의 박물관을 돌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해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필레 섬은 ‘이집트의 진주’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섬으로,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와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다. 이 필레 섬에 있는, 아니 있었던 신전이 바로 이시스 신전이다. 이시스는 모성과 마법, 생산의 여신이라고 하는데 나일강의 수호신, 지혜와 의술의 여신, 사랑과 미의 여신 등 역대 이집트 신 중 별명이 가장 많은 신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비교하자면 헤라, 아폴론, 아프로디테, 페르세포네, 아테나, 데메테르를 합친 대단한 분이다.

필레 신전
필레 신전

하지만 20세기 초 댐 공사로 이시스 여신의 성전인 필레 섬은 물에 잠기게 됐다. 이에 유네스코가 신전을 인근 섬 높은 지대로 이전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1972년, 하나하나 분해된 신전은 돌에 번호를 붙여가며 아길리카섬에 옮겨져 그 역사가 부활됐다.

매표소에서 필레 신전에 들어가는 입장료를 구입하면, 우선 섬으로 들어가는 보트를 탑승해야 한다. 탑승장에는 커다란 보트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입장료에 보트비용이 포함돼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통 크게 입장료만큼 보트 삯을 내주고 호수를 건너갔다. 당시에는 잘 깎았다 히히덕거리며 즐거워했지만, 카이로에 돌아와 사실을 알고서 아라비아 상인 파워와 나의 경솔함을 새삼 되새겼다.

신전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아서 여신 이시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의 돋새김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신의 얼굴이 조각돼 있는 기둥들을 지나 신전 곳곳의 상형문자와 후대 그리스도 교도들의 콥트 십자가 문자 등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수 천 년 고대 이집트 왕조부터 로마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시공간을 왔다 갔다 하는 듯 신비로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신전을 둘러싼 드넓고 짙은 호수 댐은 멋진 경관을 자랑하며 아직 그 속에 잠들어 있을 유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줬다.

석공들의 눈물이 담긴 미완성 오벨리스크

이집트에 살면서 많은 오벨리스크를 봤다.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도, 학교 앞 정문의 가짜 오벨리스크도, 나에겐 그냥 뾰족한 첨탑이었다. 이집트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작별의 인사로 화려한 크리스탈 오벨리스크가 선물되곤 하면, “가져가면 잊혀질 것” 정도로 가찮게 여겼다.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기념비인 오벨리스크는 네모나고 거대한 돌기둥으로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데, 기둥면에 상형 문자로 왕의 공적이 새겨놓았다. 현재는 룩소르 카르낙 신전의 하트셉수트 여왕이 건립한 높이 30m의 오벨리스크가 제일 크다. 아스완 채석장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역시 하트셉수트 여왕의 명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이 오벨리스크가 만약 완성되었더라면 높이 40여 미터, 무게는 1200여톤으로 가장 큰 오벨리스크가 될 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화강암을 자르다 균열이 생겨 중단됐다.

그런데 서 있는 오벨리스크와 누워있는 오벨리스크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완성된 오벨리스크는 “크군~!”하고 감탄한 뒤 뒤돌아섰지만, 커다란 화강암 바위에 붙어 누워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그 거대함과 기이함에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누어있음으로 그 존재감을 나같은 무지랭이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주는 곳이었다.

아스완 채석장의 오벨리스크는 제작이 포기됨에 따라 바닥 부분이 여전히 기반암과 이어져 있는 상태다. 손바닥만한 돌덩이로 거대한 화강암 바위언덕에 작은 흠집을 낸 뒤, 거기에 물을 부어 균열을 일으키면서 오벨리스크를 제작했다고 한다. 누워있는 오벨리스크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대체 파라오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지금도 제작하기 힘든 이런 어마어마한 주문을 해댔을까, 또 이런 불가능스런 일을 돌덩이와 나무 도구만으로 이뤄낸 고대 이집트인들은 정말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하며 나만의 공상과학 영화를 한편 찍게 된다.

미완성이 됨으로써 제작 과정의 위대함을 알려준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현재 이집트에 남은 개수보다 해외로 유출된 개수가 더 많은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누비아를 체험하는 누비아 마을과 박물관

누비아 마을은 우리나라의 전주 한옥마을 정도라 생각하면 되는데, 아기자기한 거리가 너무 이뻐서 예술가 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마을에는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살던 누비안족을 이집트 정부가 이곳으로 이주시켜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이제는 관광을 위한 거주가 주인 것 같았다.

누비아 마을의 전통 게스트하우스
누비아 마을의 전통 게스트하우스

누비안족들은 누비아 전통의 생활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이를 활용해 수공예품 상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누비아 전통 공예품과 히비스커스를 비롯한 각종 차와 향신료가 즐비한 시장이 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면 여기가 이집트인지 아프리카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원색의 화려한 건물들은 누비아인들의 독특하고 남다른 예술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곳곳에 위치한 까페에 들어가면 저렴한 가격으로 차를 마시고 마을의 색채를 즐길 수 있다. 까페에는 크고 작은 악어들을 우리에 가둬놓고 사육하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 아스완 나일강에 악어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이로 박물관의 악어 미이라는 그 길이가 어마어마해서 이런 악어가 지금도 있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카페의 악어들은 그에 비해 아기와 같은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누비아 마을에 이어 누비아 박물관을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다. 누비아 박물관이 다른 박물관에 비해 작은 편이라 금새 관람을 마칠 수 있다는 평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시 2000년 된 유물쯤은 유물로도 치지 않는다는 문화대국 이집트의 박물관이었다. 아스완 촌구석의 작은(?) 박물관에 전시된 소장품들은 2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 보물전을 초라하게 만들 수준이었다.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세워진 박물관에는 약 3천 점의 유물들이 선사시대부터 파라오 시대, 로마 시대, 콥트 기독교 및 이슬람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누비아 지역의 문명과 문화의 발전상을 잘 보여준다.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조각상과 이미 기원전 4000년 전에 만들어진 대형 채색 도자기, 누비아 전사들의 모습을 담은 검은 인형, 나일강을 따라 있는 이집트 유적의 미니어쳐 모형, 누비아 전통 가옥 등도 바쁜 관람객의 시간을 사로잡는다.

누비아 박물관 내부
누비아 박물관 내부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문을 나서면, 길 앞에 누비아 여인들이 전통 장신구를 길거리에 늘어놓고 판매한다. 온통 검은색 투성이 옷을 입은 여인들이 형형색색의 화려한 장신구와 가방, 누비아 전통 목각인형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팔기 때문에 나 뿐 만 아니라 아이들도 무척 신나하며 쇼핑을 즐겼다. 그녀들은 오늘 반나절 허탕치지 않아 즐겁고, 나는 2-3만원에 양손 가득 전리품을 얻어 신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아스완 여행을 바쁘게 끝났다. 대체 누가 아스완에 가면 할 일이 없다고 했던가? 카이로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다음번 아스완 방문을 혼자서 계획해봤다. 따듯한 3~4월에 가서 한 일주일간 멋진 나일강을 배경으로 호텔 수영장에서 여유롭게 수영도 하고 펠루카 타고 유유자적 햇살을 즐기며 각종 유물들을 느긋하게 구경하고 싶다. 그러면 나도 아가사 크리스티처럼 대작들을 집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끝)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은 기자, 국회의원 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이집트에 잠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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