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세상이 검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김웅 ‘검사내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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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세상이 검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김웅 ‘검사내전’을 읽고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1.24 12: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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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현실을 살아가는 검사 이야기
드라마 ‘검사내전’의 원작으로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다만 검찰 스스로의 개혁보다 사법개혁에 촛점 맞춘 비판은 아쉬워
드라마 '검사내전'의 원작은 전직검사 김웅이 쓴 '검사내전'을 바탕으로 한다. 사진=tvn
드라마 '검사내전'의 원작은 전직검사 김웅이 쓴 '검사내전'을 바탕으로 한다. 사진=tvn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나를 흠뻑 빠지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듯이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있을 법하지만 절대 벌어질 리 없는 판타지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막장’ 스토리는 몰입하기 힘들다. 대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을 탄탄한 이야기로 만든 드라마가 나를 TV 앞으로 부른다.

요즘 월요일과 화요일 밤 10시 즈음에 그런 드라마들이 몰려있다. 모두 내가 흥미를 느끼는 곳을 배경으로 한다. 자연스럽게 난 어떤 드라마를 본방 사수 할까 고민에 빠졌었다. 학교와 교사를 다룬 ‘블랙독’은 너무나 현실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병원과 의사를 다룬 ‘낭만사부2’는 갈등과 음모의 연속이라서 견디기 어려웠다.

상처받기 쉬운 나의 감수성에는 검찰과 검사를 다룬 ‘검사내전’이 그나마 제격이었다. 그런데 검사가 나오는 여느 드라마나 영화처럼 ‘나쁜 권력’을 등장시키고 그와 한 편에 서거나 반대편에 서는 검사가 나왔다면 위에 언급한 다른 드라마를 선택했을 것이다. 뉴스보다 재미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검사내전’은 검찰청도 하나의 회사이고, 검사도 검찰청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일 뿐이라는 시각을 보여준다. 드라마 속 어느 지방 검찰청 지청에 소속된 검사들은 평범한 소시민 그 자체다. 부서 간 실적 경쟁과 조직의 외부 평판에 목을 매고, 점심 메뉴 선정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 '검사내전’의 매력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검사들의 일상을 다룬 데에 있지만, 소재로 삼은 각종 사건 사고들을 다루는 시각이 따뜻한 데에도 있다. 사진=tvn
드라마 '검사내전’의 매력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검사들의 일상을 다룬 데에 있지만, 소재로 삼은 각종 사건 사고들을 다루는 시각이 따뜻한 데에도 있다. 사진=tvn

드라마 ‘검사내전’의 큰 매력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검사들의 일상을 다룬 데에 있지만, 소재로 삼은 각종 사건 사고들을 다루는 시각이 따뜻한 데에도 있다. 드라마는 노인들의 치정, 이웃 간 채권 채무, 임금체납 등 ‘뉴스’에서는 다루지 않을 사건들을 소재로 다룬다. 갈등 초기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들을 점점 키우다 결국 사건이 되어 법에 호소하고 마는 세태를 이야기한다.

드라마 ‘검사내전’은 이러한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검사들의 고뇌(?)에 찬 결단(?)을 보여준다. 그동안 경제를 흔들고 국가를 흔드는 엄청난 사건들에 작용했던 검사들의 고뇌와 결단을 주로 봐왔던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고 잔잔한 사건만 다룬 것은 아니다. 전혀 가볍지 않은 ‘학교 폭력’과 ‘일하는 엄마의 육아 전쟁’도 소재로 다뤘다. 검사 책상 맞은편에 앉은 피의자나 참고인의 문제가 아닌 검사가 직접 겪는 사례로 표현했다. 드라마 속 검사는 학교 폭력 가해자를 아들로 둔 아빠로, 육아 전쟁을 치르는 일하는 엄마로 등장한다.

그들은 검사 이전에 한 아이의 아빠로 혹은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로 그 일들을 담담히 해결해 나간다. 여기서 드라마는 검사도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는 생활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난 지난주에 나온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책에 나오는 내용이 아니란 게 생각났다. 이 지점에서 난 드라마 ‘검사내전’은 책 ‘검사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라는 부제가 붙은 '검사내전'. 부키 펴냄.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라는 부제가 붙은 '검사내전'. 부키 펴냄.

그렇다. 드라마 ‘검사내전’은 원래 원작이 있었다. ‘김웅’이라는 전 검사가 쓴 같은 제목의 책 ‘검사내전’이 그 원작이다. 마침 얼마 전 뉴스를 뜨겁게 달군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 소개는 넘어간다.

책 ‘검사내전’은 (본인 표현에 의하면) 공부를 잘해서 고시를 선택하고 어쩌다 보니 검사란 직업을 갖게 된 생활형 검사가 쓴 검찰과 검사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인 김웅 전 검사가 겪거나 목격한 사건과 그 과정에서 나온 고민을 다뤘다.

책을 읽으며 내가 머뭇거린 지점들이 여럿 있었다. 생활형 검사였던 저자의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김웅 전 검사는 결국 검찰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 비중 있게 다룬 사건들은 모두 책에서 나온 에피소드였다. “입에 거품 문 할머니 사기꾼”, “산 도박장에 간 여인들”과 이번 주에 다룬 “고소 왕이 된 노인” 등 드라마에서는 사건 전개를 속도감 있게 다뤘지만, 책에서는 피의자 삶 속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간다.

김웅 전 검사는 사건 이면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세태를 보여주고, 법으로 담을 수 없는 한계도 지적한다. 그리고 사법 행위만으로 사건의 본질까지는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책 ‘검사내전’이 사건들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검찰과 검사도 비중 있게 다룬다. 흔히 사람들이 ‘검찰 문화’라고 알고 있는 회식과 폭탄주, 상명하복과 검사 동일체 같은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나온다. 본인도 그런 문화가 부끄러웠는지 그런 검사들과 자기는 궤가 다르다는 것을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회의에서 높은 검사의 말에 토를 달거나 분위기 깨는 발언을 하다가 ‘당청꼴찌’ 혹은 ‘또라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는 무용담도 늘어놓는다.

비판한다는 건 그만큼 조직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이다. 김웅 전 검사는 자기가 몸담은 조직을 뒷담화 하기도 하지만 사법 개혁에 대한 의견도 책의 마지막 ‘법의 본질’이라는 챕터에서 길게 피력한다. 저자는 “법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인가”라는 의문을 가진다. 그의 의견은 “법은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질적인 개혁”을 외친다.

김웅 전 검사가 비판하는 ‘사법’ 제도의 행간을 보니 은근 ‘법원’을 비판하는 듯했다. “(평소) 서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영장전담판사 때문에 후배들의 이름을 빌려 구속영장을 청구(53)”했다거나 까다로운 사건의 영장이 통과되었을 때는 “영장전담판사가 꼼꼼하고 냉철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85)”는 식이다. “지금 우리의 판결은 들쑥날쑥하다(298)”고도 말한다.

이렇듯 김웅 전 검사는 판사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표현을 책 곳곳에서 한다. 그렇다면 검사의 판단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는 말인가. 아무튼, 그가 외치는 사법 제도 개혁은 법원으로 향한다.

 

“결국 우리나라 사법 제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법원의 개혁이 사법 제도 개혁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들보 썩어 가는데 마루만 바꾼다고 새 집 되는 건 아니다.” (350쪽)

 

옳은 말이긴 하다. 바꿔야 할 핵심이 또 있다는 걸 빠뜨리긴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옳은(?) 말을 털어놓은 저자는 얼마 전 생활의 터전이었던 검찰을 떠났다. 김웅 전 검사가 검찰을 떠나며 남긴 말들이 여러 언론을 통해서 세간으로 흘러 다녔다.

그 기사들은 인기 드라마 ‘검사내전’의 실제 주인공인 김웅 전 검사를 강조했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에게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평범한 생활인, 일을 사랑한 직업인, 피의자도 따뜻하게 바라본 인간적인 검사가 검찰 인사를 비판한 거로 비치게 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었다.

(언론에 알려진) 김웅 전 검사가 검찰을 나오며 뱉은 말들은 그도 그저 검사였다는 걸 알려줄 뿐이었다. 그 말들을 여기서 다시 언급하기는 싫다. 다만 그가 사는 세상은 검찰 중심으로 도는 거였다. 그런 시각에서 그는 검찰 중심이었던 세상이 경찰로 조금 더 기우는 것에 분노했다.

 

저자가 사는 세상은 검찰 중심으로 도는 거였다. 그런 시각에서 검찰 중심이었던 세상이 경찰로 조금 더 기우는 것에 분노했다. 사진은 대검찰청. 사진=연합뉴스
저자가 사는 세상은 검찰 중심으로 도는 거였다. 그런 시각에서 검찰 중심이었던 세상이 경찰로 조금 더 기우는 것에 분노했다. 사진은 대검찰청. 사진=연합뉴스

그에게 시민은 어떤 존재일까. 시민이 세상을 또 다른 권력에 갖다 바칠 거로 생각한 걸까. 어쩌면 김웅 전 검사는 시민을 아무것도 모르고 목소리만 큰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보던 그런 과거 권력과 같은 시각을 가진 건 아니었을까.

 

“검찰이 커지면 결국 정치인들은 그 힘을 사용하려는 욕망에 포위될 것이고, 검찰을 장악한 권력은 반드시 괴물이 될 것이다.” (323쪽)

 

그런 그가 한 이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런 괴물에게 두려움 없이 맞서는 시민 영웅들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아직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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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화 2020-01-25 16: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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