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일본에서 번 돈, 한국에 쏟아부은 신격호 롯데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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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일본에서 번 돈, 한국에 쏟아부은 신격호 롯데명예회장
  • 변동진 기자
  • 승인 2020.01.19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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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정희 대통령 제안으로 호텔· 백화점등 한국투자 본격화
관광산업 분야 최초로 금탑산업훈장 수상...'관광 한국의 길' 제시
말년 자녀들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하늘에서 .'디지털 전환' 롯데 지켜볼것

[오피니언뉴스=변동진 기자]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4시3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유족으로 처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전날밤 신 명예회장의 병세가 악화돼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긴급입원했다. 신 명예회장의 건강상태를 보고받은 신동빈 롯데회장은 일본 출장 일정을 중단하고 귀국해, 아산병원에서 임종을 지켜봤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생전 모습. 사진= 연합뉴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생전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날 별세한 신 명예회장은 롯데를 재계5위의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힘든 말년을 보내야 했다.

지난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졌다. 이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 명예회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고 누나인 신영자 씨까지 가세했다.

불리한 입장에 있었던 신동빈 롯데회장은 일본롯데와 한국롯데를 분리할 수 없는 '원 롯데'를 강조한 반면, 신동주 부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주요 계열사의 지배권을 남매끼리 나누는 '롯데 분할'을 요구했던 것. 당시 신 명예회장은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을 정리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혼란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샀다.  

신동빈 롯데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경영권 분쟁에서 신 명예회장의 명예도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기화로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해 형식적으로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경영권 갈등 속에 정신건강 문제가 드러나고 90대 고령에 수감 위기에 처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법원은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며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특히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으나 노년에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투병 생활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젊은 시절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며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에 투자해 한국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젊은시절 모습. 사진= 롯데그룹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젊은시절 모습. 사진= 롯데그룹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했다.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2차 대전에 공장이 전소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그는 껌 사업에 뛰어들었고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롯데는 초콜릿,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 길이 열리자 그는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당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신격호 회장에게 "호텔을 지어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 신 회장이 흔쾌히 거액의 투자를 결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 건설도 신 명예회장이 1987년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일본에서 번 많은 돈을 국내 투자를 위해 들여와 한국 자본주의 발달에도 큰 공을 세웠다는 평도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롯데그룹을 한창 키울 당시, 격월로 한국과 일본을 한달씩 체류하며 경영을 챙겼으며,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갖고 오기 위해 호텔롯데, 롯데월드 등 한국 투자를 이어갔다. 사진= 롯데그룹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롯데그룹을 한창 키울 당시, 격월로 한국과 일본을 한달씩 체류하며 경영을 챙겼으며,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갖고 오기 위해 호텔롯데, 롯데월드 등 한국 투자를 이어갔다. 사진= 롯데그룹

고인은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날 영면한 신 명예회장은 한국 최대 유통그룹 롯데가 오프라인 강자에서 온라인 강자로 거듭나는 '디지털 전환(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늘에서 지켜보게 됐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를 마지막으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한국 재계의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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