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올해의 CEO]⑦ ‘고객중심 실험, 실적이 되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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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올해의 CEO]⑦ ‘고객중심 실험, 실적이 되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12.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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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부침이 많았던 올해 금융투자업계에서도 NH투자증권의 성장 가도는 끝나지 않고 있다. 올 3분기 누적 연결기준 영업이익 5070억원을 기록, 사상 최대 실적을 썼다. 지난해 같은 기간(4878억원)보다 3.9% 늘어난 수준이다.

NH투자증권의 호실적을 이끄는 건 단연 기업금융(IB) 부문이다. 주식자본시장(ECM)부문에서 올 상반기 한화시스템(4026억원), SNK(1697억원), 지누스(1692억원), 현대오토에버(1685억원) 등 대규모 공모 딜(거래)를 잇달아 주관하면서 IPO 주관순위 1위에 올랐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이 NH투자증권의 ‘독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권발행시장(DCM) 부문에서도 회사채 대표주관, 인수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MBK파트너스의 대성산업가스 리파이낸싱(8060억원)을 비롯해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 인수금융(6300억원) 등의 딜을 맡았다. 또 린데코리아, CJ헬스케어, 현대중공업터보기계, 유모멘트 등의 딜에도 NH투자증권이 참여했다.

◆Performance(성과)

이처럼 NH투자증권이 IB부문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정영채 대표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일찌감치 IB부문 ‘명가(名家)’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정통 IB맨’인 정 대표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는 1988년 지인 소개로 ‘증권 사관학교’로 통하는 대우증권에서 입사, 증권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학창 시절 금융인이 아닌 기업인을 꿈꿨던 터라 잠깐만 다닐 생각이었다고 한다.

점차 자본시장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일에 재미를 느꼈다.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1997년 33세 나이로 대우증권 자금부장에 발탁됐다. 외환위기를 온 몸으로 겪으며 암울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 공을 인정받아 대우증권에서 기획본부장을 거쳐 2005년 3월 IB 본부장에 올랐다.

돌연 본부장 승진 보름 만에 사표를 썼다. 대우증권을 떠나 향한 곳은 NH투자증권(옛 우리투자증권)이었다. 정 대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국의 IB산업 역사를 새로 쓰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NH투자증권에서는 2005년부터 13년간 IB부문 대표로 활동했다. 국내 증권사 IB사업부 책임자 중 10년 이상 자리를 지킨 유일한 인물이다. ‘IB 전설’로 남을 만하다.

지난해 3월 다소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농협금융지주 내에서 정 대표가 최연소 CEO로 뽑힌 것도 IB부문 경쟁력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대형 증권사 실적의 중심축이 브로커리지에서 IB부문으로 이동하면서 NH투자증권을 이끌 최적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대표는 이같은 기대에 실적으로 보답하고 있다. 취임 첫 해인 지난해 NH투자증권의 영업이익 5401억원, 순이익 3615억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썼다.

◆Leadership(리더십·경영철학)

정 대표의 경영 철학의 핵심은 숫자가 아닌 ‘관계(네트워크)’다. 30년 증권사 경력 중 27년을 IB부문에서 일하면서 IB의 본질이 ‘고객과의 관계’라는 걸 깨달았다. 자주 만난 소비자와 가까워지는 관계를 맺으면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을 뛰는 IB부문 직원들에게도 소비자와의 관계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그 일환으로 정 대표는 14년 전 IB부문을 처음 이끌면서 ‘개인 일정 공유’ 시스템을 도입했다. 말단 직원부터 정 대표까지 모든 임직원이 언제 누구를 만나는지 자신의 일정을 공유하도록 한 것이다. 

소비자와의 업무 내용을 공유하는 ‘콜 리포트’ 또한 정 대표가 만든 시스템이다. 소비자를 만난 임직원 모두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소비자에게 어떤 제안을 했는지 등 일종의 영업일지를 써야 한다. 제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도 상세하게 작성한다. 

초기에는 직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정 대표는 먼저 자신의 일정과 콜 리포트를 공유하면서 문화를 정착시켜 나갔다. 직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업무를 함께하는 동료, 즉 사업 파트너와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 일정공유 및 콜 리포트 시스템은 IB부문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 대표와 직원들 모두 일정 공유를 통해 동선이 중복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부서끼리 협업이 필요할 때에도 일정 조율을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또 모든 임직원이 콜 리포트를 통해 소비자의 성향을 쉽게 파악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담당 직원이 바뀌더라도 소비자 정보 부재로 애먹는 일도 없어졌다. 정 대표는 지난해 3월 취임 후 IB부문뿐 아니라 전 사업부에 콜 리포트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Episode(조직애·인재관)

정 대표의 ‘관계’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월 자산관리(WM)부문에서 임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평가지표(KPI)를 없애고 ‘고객 만족 지표’를 도입한 것이다.

업무 목표‧과제 등을 의미하는 KPI는 금융권뿐만 아니라 기업 전반에서 널리 활용된다. 증권사의 경우 주력 금융상품 판매수·판매액·수수료율 등 실적을 KPI 기준으로 활용, 인사평가‧성과급 등에 반영한다. 영업직원이 회사 수익에 기여한 정도를 따지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고객 만족 지표’는 소비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관계를 맺는 전반적인 과정, 즉 ‘과정 가치’를 평가한다. 소비자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부터 ▲소통 횟수 ▲맞춤 서비스 제공 ▲사후 관리 등 모든 과정이 평가 기준이다. 시황이나 금융상품 등을 학습하는 노력도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이같은 평가제도는 국내 금융사 중 NH투자증권이 처음으로 시도했다.

‘과정 가치’를 평가하면 임직원들은 단기 실적보다 관계를 맺은 소비자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 소비자에게 무리하게 판매하면서 발생하는 불완전판매 가능성도 낮아진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NH투자증권은 자산관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시각이다. 장기적으로 NH투자증권의 실적 개선의 기반인 셈이다.

‘고객 만족 지표’ 도입을 앞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영업 할당량 등 숫자로 평가하는 KPI가 사라지면서 임직원들의 영업 활동이 소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는 곧 실적 악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정 대표는 “재무 손실은 CEO인 제가 책임지겠다”며 직원들을 설득했다. 정 대표의 믿음대로 NH투자증권의 자산관리수수료 수익은 올 3분기 누적 116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동기(95억원)보다 21.4% 증가했다.

정 대표가 지난해 NH투자증권의 디지털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사장 직속으로 편제한 ‘디지털 정보기술(IT)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에서도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드러난다. 지난 3월 신설된 후속 TF 중 '고객 맞춤형 상품·서비스 제공 TF'는 빅데이터·머신러닝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객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의사소통하는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Challenge(도전)

NH투자증권을 한국 IB산업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정 대표의 다음 목표는 ‘글로벌 IB’ 역량이다. 정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중국이다. 2007년 NH투자증권이 중국에 진출할 당시 내세운 “해외투자 자산의 3분의 1을 중국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

현재 정 대표는 중국 현지 기업과 합작증권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12년 전에는 IB부문 대표였지만 이제는 CEO로서 중국 진출 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사진제공=금융투자협회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사진제공=금융투자협회

농협금융 차원에서 농업 관련 대형 유통그룹인 중국 공소집단유한공사와 NH투자증권의 합장 증권사 출범을 검토 중이다. 앞서 농협금융지주는 2016년 이 그룹과 금융사업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합작 증권사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해왔다.

NH투자증권 중국 법인이 설립될 경우 정 대표의 바람대로 현지 시장 공략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공소집단유한공사가 한국의 농협중앙회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점을 고려하면 지역조합의 IPO 주관 등을 맡으며 IB산업 진출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전세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갖고 있는 곳이다. 그에 맞게 자본시장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과 상호 보완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시각이다.

◆Quotation(어록)

“‘과정가치’는 잠시 머무르는 바람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다. 만약 여러분이 고객을 만나고 돕는 과정에서 그 결과로 재무 손실이 나타나더라도 이는 CEO인 제가 책임질 문제다” (2019. 03. 22. NH투자증권 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편지)

“디지털 활용 능력이 금융업의 본질이 됐다. 금융업 패러다임을 흔들 수 있다. 디지털을 활용한 차별화된 서비스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기술(IT) 인프라가 고객 만족 수준을 결정할 것” (2019.03.27. 주주총회)

“투자 행위는 단순히 수익을 추구하는 결과 지향의 행위가 아니다. 투자를 통해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 지향의 행위가 돼야 한다” (2019.05.10. ‘투자, 문화가 되다’ 브랜드 비전 선포식)

“증권사는 ‘기업의 전략적 파트너’다. 기업의 자금 조달 니즈(needs)를 해결하고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늘 가까이서 지원하고 있다” (2019.11.22. 여의도고등학교 강연)

“금융업은 변화가 없을 때보다 변화가 절실할 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저성장·저금리 등 외부적 환경에 따라 고객의 니즈가 급변하고 있다. 금융투자사에게는 추가적으로 성장 방식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 (2019.11.11. 한중 대체투자 서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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