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트렌드] '님'으로 불리며 갑질은 이제 그만...평등한 호칭으로 수평관계 만들자
상태바
[문화트렌드] '님'으로 불리며 갑질은 이제 그만...평등한 호칭으로 수평관계 만들자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12.19 1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난지 5분만에 나이 물어보는 한국사람들...수직적 관계에 2030세대 반감느껴
직급으로, 나이로 갑질하는 시대는 이제 그만...호칭의 평등화로 수평적 관계 만들자
4050이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더니 누리려고만 하는가?
사진=unsplash
만나자마자 나이를 물어보는 한국인. 나이로 서열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사진=unsplash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얼마전 취미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개인 레슨으로 이뤄지지만 간혹 공개수업 때나 신입회원 환영모임 때 다함께 모이기도 한다. 

새로운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은 좀처럼 결심이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조심스럽다. 이번에도 커뮤니티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나이다. 그렇다고 끝끝내 비밀로 할 생각은 없지만 '나이로 대화를 이끌어가기'는 싫었다. 다행이라 해야할지 연배가 높으신 선배님들이 많이 계신 동호회지만 그래도 어영부영 나이를 밝히고 난 뒤에 서로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나이=서열' 때문이다. 맏이가 아니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손위 형제, 자매를 떠받들어아야하고 심지어 몇 분 차이로 형, 동생이 결정된다. 학교 다닐 때는 학년으로, 군대를 가면 계급으로, 직장에선 직급으로, 사회에선 나이로. 나이를 알고나면 곧 말투가 달라진다. 존댓말을 쓰다 갑자기 반말이 툭 튀어나온다. 난 윗사람, 너는 아랫사람이니까.

 

프로 바둑기사 입단이 좌절된 후, 원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장그래와 그의 주변 사람들, 직장 동료간의 갈등, 동료애를 그린 드라마. 직장문화에 대한 리얼한 묘사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진=tvN
프로 바둑기사 입단이 좌절된 후, 원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장그래와 그의 주변 사람들, 직장 동료간의 갈등, 동료애를 그린 드라마 '미생'. 직장문화에 대한 리얼한 묘사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사진=tvN

 

직급 파괴한 새로운 호칭문화, 실효성은? 

직급을 빼고 영어 이름으로 호칭하는 기업이 하나 둘 생기면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카카오에선 존칭 없이 구성원들을 모두 영어이름으로 부른다. 사장, 이사, 전무 등의 직함이 아닌 서로의 영어이름을 불러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나눈다. 영어 호칭을 도입하니 자연스레 직급은 빠졌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영어 이름이 브라이언이다. 늘 티셔츠에 편한 바지차림인 김의장은 평소 직원들과 소통을 중시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직원들은 "브라이언님께서"가 아니라 그냥 "브라이언이"로 말한다. 존칭 없이 영어 이름을 쓰면 제안을 하기도 반대의견을 내기도 더욱 수월하다고 한다. CJ그룹에선 직함 대신 '님'을 붙여 부른다.

직급, 연차가 사라진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동료간 협업에도 도움이 되며 보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창의성 강화에 도움을 주고 결과적으로는 능력 중시 문화가 조성될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영어 호칭을 사용하는 분야로는 ‘IT 기업’이 가장 많았고, ‘제조업’, ‘유통/무역’ 순이다. 

그러나 취업 플랫폼 '사람인'의 ‘기업 내 직급∙호칭파괴 제도’에 대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11.6%에 불과했고 도입을 하지 않거나, 도입을 해도 다시 직급 체계로 회귀한 기업이 88.3%였다. 실효성은 어떤가. 65.4%가 ‘호칭파괴 제도’가 효용성이 낮다고 본다. 실제로 제도를 운영중인 기업의 25%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2018.5월)

호칭파괴 제도를 도입하지않는 이유는 ‘호칭만으로 상명하복 조직문화 개선이 어려워서’ 또는 ‘조직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 같아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오히려 힘들어서’(12.2%) 등이 뒤를 이었다.

직급파괴 호칭은 실상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의사 결정 시스템을 투명하게 하고 성과연봉제 등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선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가부장 문화에 바탕을 둔 수직적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은 진정한 소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누구는 '도련님', 누구는 '처남'?...기울어진 가족 호칭

가정에서는 또 어떤가. 결혼을 하고 제일 어려운 것중 하나가 시댁 식구들에 대한 호칭이다. 겨우 익혀갈 무렵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남편의 남동생은 도련님, 여동생은 아가씨고, 내 남동생, 여동생은 왜 처남, 처제인가?

시동생을 부르는 ‘도련님’은 조선시대 하인이 양반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했던 말이며 ‘아가씨’ 역시 종이 주인집 아씨를 부를 때 쓰던 말이다. 또 시댁의 모든 이들에게는 ‘님’으로 끝나는 존칭이 붙는다. 그러나 처가 쪽의 호칭에선 님이 붙지않는다. 장인은 남자 노인에 대한 존칭이며 장모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배우자의 남동생은 처남, 여형제는 처형, 처제다.  

난데없이 님을 붙이며 나긋나긋하게 불러야 할 새로운 가족, 하지만 영어로 하면 '법적'(in-law) 으로만 가족인 이들이다. 영어로 시아버지나 장인어른은 'father-in-law', 사위는 'son-in-law', 며느리는 'daughter-in-law' 다. 물론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관례화된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서로의 부모에 대해서는 힘들겠지만 배우자의 형제, 자매들과는 00씨라는 호칭을 쓰는 것도 불편할 이유가 없다. 호칭에 반기를 든다고 뼈대없는(?) 집안으로 치부된다면 감수하자. 

가부장 문화에 바탕을 둔 수직적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들은 진정한 소통을 막는다. 남성 배우자의 집안을 더 높이는 호칭문화가 개선되어야 여성 배우자들의 권리도 보장될 수 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1인 가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과연 '누가' 지켜낼 수 있을까. 

 

남녀노소 같은 목표로 뛰고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019 핑크런 마라톤대회'에서 환우와 함께 힘차게 출발하고 있는 참가자들로 핑크런은 여성들의 유방건강을 위한 아모레퍼시픽 핑크리본 캠페인의 일환으로 참가비 전액을 한국유방건강재단 사업에 기부하는 마라톤대회. 사진=연합뉴스
남녀노소 같은 목표로 뛰고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019 핑크런 마라톤대회'에서 환우와 함께 힘차게 출발하고 있는 참가자들. 핑크런은 여성들의 유방건강을 위한 아모레퍼시픽 핑크리본 캠페인의 일환으로 참가비 전액을 한국유방건강재단 사업에 기부한다. 사진=연합뉴스

호칭은 수단일뿐..서로에 대한 존중 필요해

영어로 부르든 '님'으로 부르든 '00씨'로 부르든, 그 사람에게 부여된 직급, 서열, 관습적 우위 등을 제거한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그것이 바로 가장 간단한 평등의 의미구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도 사실. 다양한 시도와 문제제기는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대간의 갈등은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상호존중이다. 어떤 관계로 맺어졌던 간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소통을 이어나가야한다. 존대말의 '존(尊)'은 '높이다', '공경하다' 는 뜻도 있지만 '중히 여기다', '소중히 생각하다'는 뜻도 있다. 호칭으로 불편함을 겪을 바에는 차라리 서로 존칭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억울한 쪽이 너그럽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직급파괴 호칭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4050세대 직장인들. 아직도 '상명하복'의 기업문화에 젖어있다면 시대착오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부터 이어온 호칭 덕에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님' 대우 받으며 은연중 갑질했을 '시'댁의 구성원들 역시 이젠 법으로 가족이 된 '귀한 손님'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하철에서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니 금방 내린다며 점잖게 존댓말로 사양하시는 분을 만났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목소리가 크고 갑질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밀레니얼세대에게 4050세대 이상은 혜택받은 자들 그리고 그 혜택을 독점하려는 자들로 비춰지기도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거침없이 누리려고만 하는가. 세대의 요구에 호응해야한다. '늙은'(old) 사람들이 아니라 '잘 나이든'(well-aged) 사람들로 존중받고 싶다면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