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품 스토리] ⑥ 장인정신이 만든 에르메스의 '특별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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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품 스토리] ⑥ 장인정신이 만든 에르메스의 '특별한 가치'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19.12.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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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다니던 시절, 말 관련 용품을 제작한 것이 역사의 시작
최고급 가죽을 다루는 특화된 기술로 ‘켈리’와 ‘버킨’ 명품 백 탄생시켜
화려한 프린트의 스카프, 독창적 디자인의 의류와 함께 계속 성장 중
에르메스 2006년 가을 광고 캠페인
ㅠ에르메스 2006년 가을 광고 캠페인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며 18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에르메스(Hermès).

전세계 수많은 고객들이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음에도 대량 생산을 고려하지 않고 장인의 손에 제작을 맡기고 있는 에르메스는 그 결과 명품 세계에서도 최고의 품질과 독보적 가치를 인정 받으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 말 안장으로 쌓은 가죽 노하우, 명품 백으로 이어져

프랑스계 독일인 띠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1837년 마구(馬具) 작업장을 차렸다. 당시는 마차가 교통수단이던 시절, 그는 말을 끄는데 필요한 좋은 품질의 고삐와 마구 등을 만들면서 자리를 잡았다.

1880년 가업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샤를-에밀 에르메스(Charles-Émile Hermès)는 현재 에르메스 부틱이 위치하고 있는 포부르 생토노레 24번지로 매장을 이전하며 말 안장(鞍裝)을 추가로 제작했고, 안장과 여러 용품들을 함께 넣어 다닐 만한 가방도 선보였다.

샤를-에밀의 아들, 에밀-모리스 에르메스(Émile-Maurice Hermès)가 자리를 이어받을 즈음에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마구 시장의 위축을 걱정하는 대신 발 빠르게 사업방향을 전환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여행산업이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여행용 가죽 제품 개발로 눈을 돌린 것.

철저한 가죽 관리 원칙과 튼튼한 박음질 법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미국에서 들여온 지퍼 기술을 접목해 가죽 핸드백과 점퍼 등을 내놓은 에르메스는 다행히 승마가 고급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말 관련 용품의 명맥도 유지할 수 있었다.

1951년부터는 에밀-모리스의 사위인 로베르 뒤마-에르메스(Robert Dumas- Hermès)가 경영을 맡았다. 이때 브랜드 특유의 오렌지색 박스와 마차 그림의 로고가 등장했고, ‘켈리(Kelly)’ 백도 태어났다.

켈리 백은 사실 1935년에 이미 만들어졌던 모델. 하지만 1956년 할리우드 배우 출신의 모나코 대공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에르메스의 백을 앞으로 든 모습이 포착되면서, 그 백은 켈리가 되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시대변화를 겪던 중 로베르 뒤마-에르메스의 아들 장-루이 뒤마(Jean-Louis Dumas)가 뉴욕에서의 바잉 경험을 바탕으로 에르메스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고, 1978년 회장으로 선출된 후 본격적으로 브랜드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그는 가죽 제품 외에 다양한 품목들을 추가 구성했고, 프랜차이즈 대신 직매장을 늘리면서 경영 구조도 개선했다. 그리고 켈리의 인기를 위협하는 ‘버킨(Birkin)’ 백을 탄생시켰다.

프랑스의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이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뒤마 회장에게 켈리 백이 작아 불편하다는 의견을 전하자, 뒤마 회장은 1984년 켈리보다 넉넉하게 공간을 키우고 입구를 잘 벌릴 수 있도록 양쪽에 핸들을 부착시켜 버킨 백을 완성했다.

켈리, 버킨과 같은 에르메스의 대표 인기 핸드백의 경우 주문 후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핸드메이드를 고집하는 정책에 따라 장인 한 사람이 백 하나의 전 공정을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18~22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 에르메스 백에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이유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에르메스 로고, 1975년 광고, 1950년대 광고, 켈리 백 2컷, 버킨 백 2컷 (광고 외 사진=에르메스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에르메스 로고, 1975년 광고, 1950년대 광고, 켈리 백 2컷, 버킨 백 2컷 (광고 외 사진=에르메스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 에르메스에 예술적인 감각을 더해주는 아름다운 스카프

가죽 제품들이 에르메스의 뿌리라고 한다면 화려한 프린트의 실크 제품들은 에르메스의 꽃이 아닐까.

에르메스 부틱의 쇼 윈도우를 멋지게 장식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다채로운 무늬의 스카프들은 핸드백들에 비해 편안한 가격대로 만날 수 있어 고객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도가 프린트된 군인들의 손수건에서 착안해 프린트를 넣은 실크 스카프를 만들어보기로 한 3대 회장 에밀-모리스 에르메스는 브랜드 설립 100주년이던 1937년, 실크 기술공들이 모여 있는 리옹에 공장을 건립하고 스카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에르메스 스카프의 프린트 도안은 여러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개발되며, 새로운 작품과 리뉴얼 작품을 포함해 매년 20여 종이 발표된다. 에르메스의 역사가 말과 함께 출발하고, 여행 테마와 함께 발전한 만큼, 말이 등장하거나 세계 곳곳의 풍광을 담은 패턴이 주를 이루는 모습.

이러한 에르메스 스카프들 역시 가죽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작업을 통해 제작되고 있다.

본사로부터 프린트 도안이 전해지면 제작처는 마치 판화를 준비하듯 각 색상마다의 프린트 스크린들을 준비한다. 많은 색상들이 모여 완성된 그림을 이루기 때문에 스크린은 보통 30여개.

7만여 가지 염료 가운데 도안 속 색상과 가장 가까운 것들을 골라, 단단하게 짜인 실크 트윌 원단 위에 차례로 정확하게 색을 입히고, 스팀 건조와 세척까지 마치면 스카프의 테두리를 꼼꼼하게 손바느질로 마무리한다.

장인들의 솜씨로 탄생되는 에르메스 스카프들은 까레(Carrés, 정사각형 의미)라고 불리는데, 첫 제품부터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

까레의 기본 사이즈는 90x90cm로, 목이나 어깨, 머리에 둘러지는 것은 물론 핸드백에 묶여져 장식 효과도 내고, 허리 밴드나 홀터 탑으로 변신도 하면서, 우아하고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사랑 받고 있다.

현재 기본 까레 외에 가느다란 트윌리와 45x45cm의 가브로쉬, 140x140cm의 숄 등 다양한 실크 제품들도 함께 전개되는 중.

에르메스 스카프의 다양한 연출법 및 제작 과정 모습 (사진=에르메스 홈페이지)
에르메스 스카프의 다양한 연출법 및 제작 과정 모습 (사진=에르메스 홈페이지)

◆ 극과 극은 통한다, 핸드메이드 전통과 아방가르드 패션

가죽제품과 스카프, 타이, 의류 그리고 향수와 주얼리, 시계, 식기 등 다양한 품목으로 영역을 넓힌 에르메스.

말 안장과 승마복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현재 판매 비중은 가죽제품, 의류와 액세서리, 스카프 순이다. 의류 부문이 이처럼 성장하게 된 데엔 5대 회장 장-루이 뒤마의 역할이 컸다.

당시 상품 라인의 확대를 추진했던 그는 의류 사업도 일으키기 위해 외부 디자이너들을 적극 영입했는데, 1980년 에스모드 파리를 1등으로 졸업한 어린 에릭 베르제르(Eric Bergère)를 파격적으로 기용하면서 에르메스를 보다 젊고 경쾌한 이미지로 바꿔놓는데 성공했다.

전통에 집착하다 보면 브랜드 이미지가 고착될 위험이 따르는 법.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매 시즌 발표되는 기성복 컬렉션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 에르메스는 의상들과의 스타일링을 통해 가죽제품들까지 재조명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에르메스는 여러 디자이너들과 작업을 이어갔는데, 그 중에서도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에르메스가 패션으로 보여주어야 할 방향을 설정해준 디자이너.

상식을 깨뜨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아방가르드 패션을 대표해온 마르지엘라는 1997년 오랜 역사의 에르메스와 만나, 고급스러운 소재와 깔끔한 재단이 돋보이는 느슨한 스타일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2003년부터는 ‘패션계 악동’이라 불리던 장-폴 고티에(Jean-Paul Gaultier)가 에르메스 클래식을 위트있게 재해석해 인기를 모았고, 2010년 고티에와 헤어진 후 에르메스는 ‘라코스테(Lacoste)’의 세대교체를 이끈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를 후임자로 결정했다.

르메르는 에르메스의 의상들을 모던하고 웨어러블하게 연출하며 호평을 받았으나, 마르지엘라의 추억을 떠올렸을까. 에르메스는 다시 아방가르드 계열의 디자이너를 찾았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에서 경험을 쌓고 ‘더 로우(The Row)’에서 활동하던 나데쥬 바니 시뷸스키(Nadège Vanhee-Cybulski)를 불러들인 것.

2014년부터 그녀는 구조적인 디자인과 독특한 커팅으로 표현된 의상들에 말 안장의 스티치, 핸드백의 버클과 스트랩, 스카프의 프린트 등 브랜드 고유의 디테일들을 접목하며 에르메스에서 순항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시계 방향으로, 2019 가을 컬렉션 3컷, 2020 봄 컬렉션 4컷 (사진=에르메스 홈페이지)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시계 방향으로, 2019 가을 컬렉션 3컷, 2020 봄 컬렉션 4컷 (사진=에르메스 홈페이지)

교육과 수련으로 자격을 갖춘 장인들에게만 작업을 맡기고, 대부분의 제품들을 자국 내에서 제조하면서 프랑스 명품 기업의 자존심을 지켜가는 에르메스.

이러한 에르메스만의 특별한 가치를 다른 기업들이 욕심 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2010년경 루이 뷔통(Louis Vuitton)을 비롯한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을 거느린 LVMH그룹이 에르메스의 지분을 늘려가고 있었던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는데, 대대로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해오던 에르메스였지만 당시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전문 경영인 파트릭 토마(Patrick Thomas)가 회장직에 올라있었던 상황.

이후 에르메스는 토마 회장의 후임으로 창업자의 6대손인 악셀 뒤마(Axel Dumas)를 추대했고, 가문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결속력을 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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